목차
I. 들어가는 말
Ⅱ. 본회퍼의 생애
1. 신학적 훈련(1906-32)
2. 신학적 행동(1933-39)
3. 고난과 죽음(1940-45)
Ⅲ. 본회퍼의 영성의 배경
1. 루터교 신학 전통
2. 자유주의 신학
3. 변증법적 신학
Ⅳ. 부정의 영성 (인간이 되고, 십자가에 처형, 부활하신 유일한 분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
1. 자기 부정
2. 값싼 은혜를 부정하는 값비싼 은혜
3. 부정의 길
Ⅴ. 공동체적 영성
1. 초기 작품들의 공동체 개념 : 공동체로서 존재하시는 그리스도
2.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귐의 공동체
3. 공동체 내에서의 영적 생활들
(1) 남과 더불어 사는 하루
(2) 홀로 있는 날
(3) 섬김
(4) 죄의 고백과 성만찬
Ⅵ. 긍정의 영성
1. 부정의 영성과 긍정의 영성의 연속성
2. 긍정의 영성의 근거 : 그리스도의 현실
3. 비종교적 그리스도교의 영성
(1) 종교비판
(2) 성숙된 세상
(3) 비종교적 그리스교의 삶
Ⅶ. 감상
Ⅱ. 본회퍼의 생애
1. 신학적 훈련(1906-32)
2. 신학적 행동(1933-39)
3. 고난과 죽음(1940-45)
Ⅲ. 본회퍼의 영성의 배경
1. 루터교 신학 전통
2. 자유주의 신학
3. 변증법적 신학
Ⅳ. 부정의 영성 (인간이 되고, 십자가에 처형, 부활하신 유일한 분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
1. 자기 부정
2. 값싼 은혜를 부정하는 값비싼 은혜
3. 부정의 길
Ⅴ. 공동체적 영성
1. 초기 작품들의 공동체 개념 : 공동체로서 존재하시는 그리스도
2.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귐의 공동체
3. 공동체 내에서의 영적 생활들
(1) 남과 더불어 사는 하루
(2) 홀로 있는 날
(3) 섬김
(4) 죄의 고백과 성만찬
Ⅵ. 긍정의 영성
1. 부정의 영성과 긍정의 영성의 연속성
2. 긍정의 영성의 근거 : 그리스도의 현실
3. 비종교적 그리스도교의 영성
(1) 종교비판
(2) 성숙된 세상
(3) 비종교적 그리스교의 삶
Ⅶ. 감상
본문내용
두 하기에 세상을 버리고 이웃을 필요들을 잃어버린다.), ‘형이상학적’(성서적 신앙의 왜곡), ‘국부적’(종교적인 것을 보유하는 영토를 만든다.), ‘문제의 해결책’(무신을 경건과 종교로 덮음), ‘특권’으로 타락했음을 비판한다. ‘성서적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 속에서 해명하려고 했다.
(2) 성숙된 세상
종교부재의 현실을 “성숙된 세상”이라고 정의하고, “신 앞에서 신과 함께 신 없이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회퍼는 “내가 말하는 세상성은 죽음과 부활의 인식이 현재하는 심오한 현세성이다”고 언급하며 그리스도교 신앙과 결합한다. 삶의 충분한 현세성에서 비로소 신앙을 배울수 있고, 성숙한 세상은 미성숙한 세상보다 더 무신론적이기에 하나님과 가깝다.
(3) 비종교적 그리스교의 삶
예수 그리스도는 성숙된 세계에 사는 인간의 현상태를 긍정하여, 거기서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성숙된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과 만나도록 성숙된 세계를 자신의 현실로 만드시므로 본회퍼는 성숙된 세상을 그리스도의 현실 안으로 받아들인다. 그리스도의 현실이 이원론적인 종교 현실을 극복하고 세상을 하나님의 현실 안에 있게 하듯이, 세계의 성인성으로의 발전이 앞에서 말한 5가지의 그릇된 신 관념을 일소하고, 이 세계에서의 신의 무력함에 의해서 능력과 장소를 획득하는 성서의 신을 볼 수 있도록 그 눈을 해방한다고 한다. 그릇된 신 관념을 무력화, 일깨워 주는 성숙된 세계를 긍정하는 것으로부터 ‘세속적’(비종교적) 해석이 요청되는 것이다.
성숙된 세계에서 신앙이란 종교적인 신 없이 타자를 위한 인간인 예수의 존재에 참여하는 새로운 생명인 것이다. 이웃을 위하여 타자를 위한 존재로 자신을 초월하여 고난당하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그리스도인이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인간 전존재의 새로운 경험이다. 이처럼 성숙된 세계는 하나님과 더 가깝게 살 기회를 제공하기에 그리스도는 자신이 타자를 위하여 성숙된 세상에서 고난받고 부활하신 것처럼 비종교적으로 타자를 위한 삶을 사는 고난에로 그리스도인을 부른다. 본회퍼의 ‘비종교적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성숙된 세계를 긍정하는 ‘긍정의 영성’이고 ‘비종교적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종교적 신 없이 신과 함께 신 앞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여 타자를 위한 삶을 사는 ’비종교적 그리스도교의 삶‘을 통하여 실현된다.
Ⅶ. 감상
작년 이맘때 쯤에 ‘영성훈련’ 수업을 김광률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던 때가 기억이 난다. 교수님은 오늘은 무슨 날인지 아냐고 물어 보셨다. 나를 비롯한 1학년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고, 교수님은 오늘이 바로 본회퍼가 게슈타포에 의해 잡혀서 교수형을 당한 날이라고 하셨다. 교수님이 이 날을 인상깊게 기억하시는 이유는 장신대에 처음 입학하셨을 당시에 한 교수님도 이렇게 물으셨고, 그때도 학생들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몰라했다고 하셨다. 그러자 그 교수님은 앞으로 신학할 사람들이 어떻게 본회퍼 같은 거장을 모를 수 가 있냐고 하시면서 본회퍼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고 하셨다. 김광률 교수님은 창문을 바라보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시던 은사 교수님을 잊을 수 없다고 하셨다.
김광률 교수님 수업과 조직신학개론, 교회사 수업에서 ‘미친 버스 운전기사’를 언급하면서 다시 독일로 돌아온 본회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본회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본회퍼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성훈련 수업 시간에 영성에 대한 설명을 언급하시면서 『본회퍼의 영성』책을 김광률 교수님께서 보여주시면서 이 책에 나온 영성의 정의를 알려 주셨던 적이 있기 때문에 책이 참 낯익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완독을 하게 된 것이 지금이라는 사실이 내가 정말 학구열이 있긴 하는 건가 하는 반성이 든다.
‘긍정의 영성’에서 자칫하면 단어의 뜻에서 오는 해석의 오해 때문에 본회퍼가 무신적이거나 혹은 교회 비판적인가 하는 생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비종교적 그리스도 해석에서 긴장하면서 읽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무지에서 오는 불안이었다. 비종교화된 성숙된 세계는 잘못된 신에 대한 이해를 말소시키는 순기능을 한다. 성숙된 세계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종교가 아니라 세상의 사건들 속에 존재하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를 신이 없어서도 타자를 위하여 살아가는, 적극적으로 사회윤리를 실현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장으로 긍정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어려운 개념을 이해하고 나니 마치 내가 객관적인 신학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본회퍼의 영성에 나의 영성을 적용을 하자면 우선 ‘부정의 영성’의 적용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는 명제에 과하게 입각한 신앙생활을 반성하고 항상 그리스도께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는 구원과 균형을 맞추어야 겠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은 있는데 그에 충만하여서 십자가는 나몰라라하고 쫄래쫄래 예수님 따라가는 척 하는 것은 진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을 값싼 은혜로 만듦을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없고 오직 예수로 살아야 겠다.
‘공동체적 영성’의 적용은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을 하나의 지체로 부르셨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지체의 신음에 민감하지 못했다. 새신자가 와도 따뜻한 인사 한번 건넨 적이 별로 없고, 셀모임에서의 삶의 나눔을 부담스러워 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를 통한 교회 공동체 모두를 예수님의 몸처럼 소중히 여기고 신앙의 동역자로 ‘함께’ 예배하고 훈련받고 삶을 나누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야 겠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다는 것은 결코 피상적인 표현이 아니기에 구체적으로 시간과 마음을 드려서 동참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해 공급받은 내 안의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하게 흘러 넘치도록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돕고 섬겨야 겠다. 내가 능히 못하지만, 날마다 그러기를 기도해야 겠다.
‘긍정의 영성’의 적용은 교회와 세상에 대해서 둘 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곳이라는 데에 학습되어 왔기에 머리로는 긍정하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잘 서술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데에는 미숙한 점수를 보였다. 그리스도가 만연해 계시는 모든 사건들 속에서 어떤 삶을 살든지 ‘코람데오’의 자세로 감당해야 겠다. 내 안에 윤리성이 확립 되도록!
(2) 성숙된 세상
종교부재의 현실을 “성숙된 세상”이라고 정의하고, “신 앞에서 신과 함께 신 없이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회퍼는 “내가 말하는 세상성은 죽음과 부활의 인식이 현재하는 심오한 현세성이다”고 언급하며 그리스도교 신앙과 결합한다. 삶의 충분한 현세성에서 비로소 신앙을 배울수 있고, 성숙한 세상은 미성숙한 세상보다 더 무신론적이기에 하나님과 가깝다.
(3) 비종교적 그리스교의 삶
예수 그리스도는 성숙된 세계에 사는 인간의 현상태를 긍정하여, 거기서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성숙된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과 만나도록 성숙된 세계를 자신의 현실로 만드시므로 본회퍼는 성숙된 세상을 그리스도의 현실 안으로 받아들인다. 그리스도의 현실이 이원론적인 종교 현실을 극복하고 세상을 하나님의 현실 안에 있게 하듯이, 세계의 성인성으로의 발전이 앞에서 말한 5가지의 그릇된 신 관념을 일소하고, 이 세계에서의 신의 무력함에 의해서 능력과 장소를 획득하는 성서의 신을 볼 수 있도록 그 눈을 해방한다고 한다. 그릇된 신 관념을 무력화, 일깨워 주는 성숙된 세계를 긍정하는 것으로부터 ‘세속적’(비종교적) 해석이 요청되는 것이다.
성숙된 세계에서 신앙이란 종교적인 신 없이 타자를 위한 인간인 예수의 존재에 참여하는 새로운 생명인 것이다. 이웃을 위하여 타자를 위한 존재로 자신을 초월하여 고난당하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그리스도인이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인간 전존재의 새로운 경험이다. 이처럼 성숙된 세계는 하나님과 더 가깝게 살 기회를 제공하기에 그리스도는 자신이 타자를 위하여 성숙된 세상에서 고난받고 부활하신 것처럼 비종교적으로 타자를 위한 삶을 사는 고난에로 그리스도인을 부른다. 본회퍼의 ‘비종교적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성숙된 세계를 긍정하는 ‘긍정의 영성’이고 ‘비종교적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종교적 신 없이 신과 함께 신 앞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여 타자를 위한 삶을 사는 ’비종교적 그리스도교의 삶‘을 통하여 실현된다.
Ⅶ. 감상
작년 이맘때 쯤에 ‘영성훈련’ 수업을 김광률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던 때가 기억이 난다. 교수님은 오늘은 무슨 날인지 아냐고 물어 보셨다. 나를 비롯한 1학년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고, 교수님은 오늘이 바로 본회퍼가 게슈타포에 의해 잡혀서 교수형을 당한 날이라고 하셨다. 교수님이 이 날을 인상깊게 기억하시는 이유는 장신대에 처음 입학하셨을 당시에 한 교수님도 이렇게 물으셨고, 그때도 학생들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몰라했다고 하셨다. 그러자 그 교수님은 앞으로 신학할 사람들이 어떻게 본회퍼 같은 거장을 모를 수 가 있냐고 하시면서 본회퍼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고 하셨다. 김광률 교수님은 창문을 바라보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시던 은사 교수님을 잊을 수 없다고 하셨다.
김광률 교수님 수업과 조직신학개론, 교회사 수업에서 ‘미친 버스 운전기사’를 언급하면서 다시 독일로 돌아온 본회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본회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본회퍼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성훈련 수업 시간에 영성에 대한 설명을 언급하시면서 『본회퍼의 영성』책을 김광률 교수님께서 보여주시면서 이 책에 나온 영성의 정의를 알려 주셨던 적이 있기 때문에 책이 참 낯익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완독을 하게 된 것이 지금이라는 사실이 내가 정말 학구열이 있긴 하는 건가 하는 반성이 든다.
‘긍정의 영성’에서 자칫하면 단어의 뜻에서 오는 해석의 오해 때문에 본회퍼가 무신적이거나 혹은 교회 비판적인가 하는 생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비종교적 그리스도 해석에서 긴장하면서 읽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무지에서 오는 불안이었다. 비종교화된 성숙된 세계는 잘못된 신에 대한 이해를 말소시키는 순기능을 한다. 성숙된 세계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종교가 아니라 세상의 사건들 속에 존재하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를 신이 없어서도 타자를 위하여 살아가는, 적극적으로 사회윤리를 실현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장으로 긍정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어려운 개념을 이해하고 나니 마치 내가 객관적인 신학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본회퍼의 영성에 나의 영성을 적용을 하자면 우선 ‘부정의 영성’의 적용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는 명제에 과하게 입각한 신앙생활을 반성하고 항상 그리스도께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는 구원과 균형을 맞추어야 겠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은 있는데 그에 충만하여서 십자가는 나몰라라하고 쫄래쫄래 예수님 따라가는 척 하는 것은 진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을 값싼 은혜로 만듦을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없고 오직 예수로 살아야 겠다.
‘공동체적 영성’의 적용은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을 하나의 지체로 부르셨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지체의 신음에 민감하지 못했다. 새신자가 와도 따뜻한 인사 한번 건넨 적이 별로 없고, 셀모임에서의 삶의 나눔을 부담스러워 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를 통한 교회 공동체 모두를 예수님의 몸처럼 소중히 여기고 신앙의 동역자로 ‘함께’ 예배하고 훈련받고 삶을 나누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야 겠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다는 것은 결코 피상적인 표현이 아니기에 구체적으로 시간과 마음을 드려서 동참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해 공급받은 내 안의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하게 흘러 넘치도록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돕고 섬겨야 겠다. 내가 능히 못하지만, 날마다 그러기를 기도해야 겠다.
‘긍정의 영성’의 적용은 교회와 세상에 대해서 둘 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곳이라는 데에 학습되어 왔기에 머리로는 긍정하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잘 서술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데에는 미숙한 점수를 보였다. 그리스도가 만연해 계시는 모든 사건들 속에서 어떤 삶을 살든지 ‘코람데오’의 자세로 감당해야 겠다. 내 안에 윤리성이 확립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