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통일과정 및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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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독일 개괄

주민

민족 구성

언어

종교

인구통계

역사

독일의 통일

배경

화합

영향

독일통일의 문제점

경제

정치

국민갈등

끝으로

자료출처

본문내용

다 더 높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동독 지역 편입으로 독일의 내수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도 깨졌다. 독일은 지난해 7천310억유로어치를 수출해 세계최대의 수출국이 됐다. 올해도 8천억유로 이상 수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내수 부진으로 경제성장률은 예상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독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IMF는 독일 경제가 올해는 당초 예상치보다 0.2% 포인트 낮은 0.8%의 성장률을 보이고 내년에는 전망치에 비해 0.1% 포인트 적은 1.2%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원인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로 동서독 경제 통합의 시발점인 통화통합 과정에서 너무 성급했다는 것이다.
동서독 화폐 교환비율에 따라 서독인들은 재정적 부담을 감수해야 했으며 동독인들은 통일 독일에서의 생활수준이 결정되는 중요한 문제였다.
당시 헬무트 콜 총리 정부는 동서독 통합 과정을 가속화하고 동독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동독인들에게 매우 유리한 교환 비율을 책정했다. 동독인들의 임금과 연금은 서독 마르크에 대해 1대 1로 교환해 주었으며 동독인의 현금 자산과 예금은 2대 1로 교환해 주었다. 이에 더해 자산액중 6천마르크까지는 1대1로 교환해 주었다.
이는 동서독 화폐의 구매력이 약 10배의 차이가 나는 점을 고려할 때 동독인들에게는 엄청난 횡재를 가져다는 주는 것이었다.
헬무트 콜 총리 정부의 선심성 정책으로 단행된 통화통합은 당장은 동독인들에게 경화를 안겨주는 기쁨을 주었으나 이는 과잉평가된 동독 산업의 기반이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통일 비용을 증가시킨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동서 간의 통화환율을 1대 1로 정한 것은 평등주의를 상징한 것이었으나 동독 통화가치를 과대평가한 결과 동독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무너뜨려 동독산업에 치명적 타격을 주는 결과가 되었다. 그 결과 서독은 자신의 경제발전모델인 사회시장경제 구축을 목표로 1990~2000년 사이에 동독으로 약 1조달러의 재정이전을 했으나
동서 지역 간의 격차는 크다 할 수 있다,
둘째로 통일 직후 동독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매각 작업을 담당한 신탁청은 동독 기업들의 낮은 생산성 때문에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동독 기업을 대부분 헐값에 처분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에 따라 수많은 동독 기업이 문을 닫았고 통일 이후 동독 지역은 산업 공동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으며 막대한 사회간접 자본 투자에도 불구하고 동독 지역의 경제는 살아나지 않는 원인이 되었다.
정치
통일 이후 독일 정부의 동독 경제 통합 노력이 성과를 보이지 않음으로써 정치적인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달 실시된 조기 총선에서 높은 실업률과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동독 지역은 서독 지역과 판이한 투표 행태를 보였다.
동독 지역에서 보수 야당인 기민-기사당 연합이 철저히 외면당했다. 야당의 총 리 후보인 앙겔라 메르켈 기민당 당수가 동독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기민-기사당 연합은 동독 지역에서 지난 2002년 총선보다 3% 포인트 낮은 25.3%의 지지율을 얻는데 그쳐 사민당(30.5%), 좌파연합(25.4%)에 이어 제 3당으로 전락했다.
구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과 사민당을 탈당한 좌파 정치인들이 통합한 좌 파연합은 동독 지역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제 2당으로 부상했으며 전체적으로도 8.7% 의 득표로 54석을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좌파연합은 서독지역에서는 4.9% 의 낮은 득표율을 보였다.
동독 지역의 주의회 선거에서도 민사당과 극우파 정당들이 약진함으로써 기존의 정치 질서를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갈등
‘오시(Ossi·게으르고 불평만 늘어놓는 동독놈)’ ‘베시(Wessi·거드름 피우며 잘난 척하는 서독놈)’.잘 알려진 대로 독일에서 동·서독 출신 주민이 서로를 비아냥댈 때 쓰는 말이다. 오시라는 경멸적 단어에는 “왜 우리가 동독 사람들을 먹여 살리느냐”는 서독인들의 불만이 짙게 깔려 있다. 베시라는 말에서는 “우리를 2등 인간 취급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동독인들의 좌절을 느낄 수 있다. 작년 9월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테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독일 국민의 21%가 ‘장벽의 부활을 원한다’고 나타났다. 동독 국민들의 통일 이전의 문화를 무시한 성급한 서독화 정책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통일은 올바른 결정이며 돌이킬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을 동독 지역 사람들도 인정하고 있다. 어쨌든 동독 주민들은 독일 사회보장제도에 편입돼 혜택을 보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통일 이전보다 생활 수준이 향상됐다.
토론.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하여 통일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통일당시 서독과 동독의 인구비는 2:1 경제력은 3:1수준
2005년 인구 남한 4700만 북한 2200만 경제규묘 33:1
독일 통일은 정치 경제적 통일에 집착한 나머지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결과독일의 경우 통일 전부터 통신, 방문이 가능 했으며 양국의 TV방송이 전부 시청 가능하였고
통일이후 동독 국민에 대한 집중적 교육이 이루어졌었다.
국민 감정대립이라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대안은 있을까요?
끝으로
29년의 문화적 격차가 만들어낸 지금의 독일의 모습은 분단 60년의 우리에게 험난한 내일을
보여주는 것 같다. 같은 역사를 가지고 수천년을 지나온 민족이 수십년의 단절 속에서 다른 문화를 가지는 모습에서 적이 되어 서로를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진다. 사실 우리는
통일을 바라지 않는 것이 아닐까?
자료출처
영상자료

서적
박이도,<독일통일과 통일독일의 이해>
이해영,<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다.>,2000
통일부,<독일 통일 백서>, 2000년
,1999년
,1995년~1997년
통일부, <북한이해>, 2006년
통일연수원, <통일문제의 이해>, 1994
사이트
네이버 백과사전
http://ko.wikipedia.org
http://blog.naver.com/7pooh7pooh7/80027347501
http://www.dorrazi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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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2.05.22
  • 저작시기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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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48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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