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정권의 정치과정과 몰락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이승만의 집권과 권위주의체제 심화

2. 자유당 정권 붕괴와 허정 과도정부

3. 장면정부와 군사 쿠데타

4. 이승만정부의 몰락과 미국의 역할

본문내용

이승만의 명령 하달
- 치안유지가 목적이 아닌 국회에 군대를 동원해 압력 행사가 목적
- 이종찬 총장은 미국의 압력도 있고 해서 거부
o 미국은 5.25 계엄령 선포를 위해 한국군 작전지휘권을 풀어달라는 이승만 요구 거절하고 제거를 계획함
- 이종찬을 중심으로 육군본부 참모(이용문, 박정희)들이 장면 지지계획을 구체화
- 장면, 조봉암, 그리고 이기붕 전 국방장관 등 정치인이 연대한 쿠데타 계획은 미국의 이승만 대체세력 모색과 반 이승만세력 지지분위기, 그리고 미국의 군부에 대한 기대 등에 고무되어 나타난 결과
o 미국은 공개적인 내정간섭에는 소극적
- 6.2 이승만은 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국회를 해산시킨다는 최후통첩 발표함→트루만은 친서에서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권고→국회해산 보류
- 미 국무부는 적극적 개입을 주장하는 대사관 의견과 군사적 개입의 비현실성과 부작용을 강조하는 군부 등의 반대론을 절충하여 ‘이승만의 집권 연장은 용인하되 절차 면에서 헌정질서를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판단→독재 행위를 남한 사회의 안정적 권력 확보를 위해 적절한 제한 속에서 인정
- 6.20 폭력배 고용하여 ‘반독재 호헌구국선언대회’를 강제적으로 해산시키자 미국합참은 쿠데타 입안→7.1 계엄령 하에서 국회가 개원되자 쿠데타 검토를 진행시키지 않고 이승만 지지로 급선회
■ 보안법 파동
o 이승만의 장기집권으로 파생되는 정치위기가 국가존립을 위태롭게 할 것이란 관측이 대두됨에 자유당 온건파 지지
- 평화적 정권교체가 불가능해 보였던 한국적 현실을 감안하여 1950년대 초까지 한민당과 그 후예인 민주당을 선호하는 태도에서 집권당 내 세대교체-자유당 온건파 중심-를 통해 큰 변혁 없이 반공정권 유지를 현실적으로 고려→온건파를 이용해 개혁을 달성한다면 공산화도 방지 가능을 염두. 공산화 방지는 미 외교정책의 유일 목표
o 국가보안법에 대한 미국의 생각
- 공산당에 반대한다는 명분 속에 반대파와 언론을 탄압하고 1960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이 법을 개정하는 것으로 인식
- 자유당 강경파는 민주당을 제어하고 이승만의 장기집권을 통한 반공정권 유지를 도모한데 반해 미국은 국가보안법 개정이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에 이용당해 오히려 반공국가를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함
- 다울링 대사는 미 국무부에 언론 보도를 통한 대 이승만 압력조치가 필요함을 역설하나 미국정부의 소극적 대응 속에 보안법 통과됨
o 개정안 통과 직후 미국의 개입과 이승만 반발
-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비밀친서를 통해 한국문제에 개입하였는데 외교적으로 완곡한 표현이지만 국가보안법의 법집행에 민주적 절차의 엄격성을 요구. 이승만은 이에 대해 내정간섭이라고 주장
- 국가보안법 통과 직후 미국의 적극적 개입은 이승만에 대한 지지가 명백하게 철회되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
■ 4.19와 미국의 적극적 개입
o 1959. 4 경향신문 폐간, 동년 7.31 조봉암 처형 후 이승만 체제가 더욱 권위주의 독재화되자 미국의 이승만과 절연 및 민주당 구파에 접근
- 신파 장면을 대안에서 완전 배제한 것은 아니나 1952년과 같은 적극적 고려대상은 아님. 1961년 쿠데타에서 배제당하는 장면의 운명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임
o 미국의 압력이 있기 전에는 집권고수 쪽으로 완강하다가 4.26 맥카나기 대사의 직접적 퇴진 압력을 받은 후 하야를 처음으로 표명
- 미국은 직간접 채널을 동원하여 내정에 개입했으며 하야 강권은 성공적 결과를 가져옴
4.19분수령을 이루었던 4.25 대학교수단 데모는 미국 대사관의 신분보장을 받고 이뤄짐
미국의 공작으로 한국군이 중립을 지킴으로서 4.19가 성공했음으로 ‘이승만제거 작전’이 실행에 옮겨진 것이라 볼 수 있음→참모총장 겸 서울지구 사령관 송요찬은 휘하부대에게 데모대로부터 경무대를 방어하는 행위를 하지 말 것을 명령/합참의장 백선엽도 군은 이승만정부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 통고
o 4.19라는 혁명적 방법에 의한 정권교체에 대해 미국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이용당할 가능성을 우려
- 미국은 한국에서 개혁이 달성되고 자유민주주의가 뿌리내림으로써 공산화를 방지하는 것에 귀결점을 두고 있었음
미국이 4.19혁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개량화시킨 것은 국무부의 ‘반혁명적인 개혁추진 정책’으로서 1946년 한국의 좌우합작 지원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음⇒개혁적으로 보이는 좌우합작 지원정책은 본질적으로 ‘반공정권 유지’라는 목적에 귀착되는 정책임

키워드

  • 가격9,66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2.10.17
  • 저작시기2012.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5043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