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삶에서의 불혹 (不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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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삶에서의 불혹 (不惑)

본문내용

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다. 공자의 처지가 그랬다. 공자는 학문과 수양을 통해 갈고 닦은 자신의 일신을 바쳐 이 세상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조급해진 공자는 무리수를 두려고까지 했다.
공자가 42세 되던 해 노나라 소공이 망명지인 정나라의 변경에서 숨을 거두었다. 노나라에서는 그의 아들 정공定公을 군주로 옹립했다. 정공 5년(기원전 505), 소공을 몰아내는데 앞장섰던 계평자도 죽고 그의 아들 계환자季桓子가 뒤를 이었다. 그 틈을 타 계씨 가문의 가신 양호陽虎가 자신의 세를 넓혀 나갔다. 기원전 502년 양호는 계씨의 또 다른 가신인 공산불뉴公山不와 손을 잡고 노나라의 실권을 장악하려 들었다. 그는 권력을 쟁취해 가는 과정에서 상전인 환자를 감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양호는 제나라로 도망가고 공산불뉴는 비성費城을 점거한 채 계씨 가문과 대치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자를 자신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인물이라 보고 추파를 던졌다.
공산불뉴가 비읍費邑에서 반란을 일으켜 공자를 부르자 공자는 그에게 가려했다. 자로가 아뢰었다.
“가지 마시죠. 하필 공산씨에게로 가시려 하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부르는 자가 어찌 헛되이 그러겠느냐. 나를 써 주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곳을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 것이다."〈양화〉
삼십대 중반에 제나라에 갔다가 정치적 실연을 당하고 돌아온 이후 공자는 사학에 전념하며 자신의 이상을 펼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하지만 노나라의 정국이 갈수록 혼란한 상황으로 빠져들면서 공자에게 그럴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않던 공산불뉴 쪽에서 자신을 초청한 것이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자신을 알아주니 우선은 기뻤을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기꺼이 그 부름에 응할 참이었다. 하지만 무인 출신의 우직하고 강직한 제자 자로는 어떻게 그런 자에게 갈 수 있냐며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자 공자는 자신이 등용되기만 하면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겠다는 명분 하에 제자의 반대를 일축했다.
공산불뉴가 꾀한 반란은 전횡을 일삼던 계씨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노나라 입장에서 보면 공산뷸뉴는 충신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공자는 기꺼이 공산불뉴의 초청에 응하려 했고 그의 힘을 이용해 노나라의 개혁을 도모하려 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주나라가 풍豊과 호鎬라는 작은 땅에서 시작했듯이 비費를 기반으로 그 영화를 재현하고 싶다는 공자의 말에서 현실정치에 참여하여 자신의 이상을 펼쳐 보고 싶어하는 심중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공자는 결국 비읍으로 가지 않았다.
공자는 깊은 회한에 잠겼다. 그의 나이는 이미 오십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학문에 뜻을 두고 정진한지 어느덧 삼십 년이 흘렀다. 세상에 올바른 도를 펼칠 각오와 준비는 다 되었건만 아직도 기회는 오지 않았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그렇다. 자신의 뜻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늘의 뜻에 달린 것이다.

키워드

공자,   불혹,   40세,   ,   군자,   인자
  • 가격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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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6.14
  • 저작시기2012.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53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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