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해방전후」읽기..
1. 「해방전후」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2. 「해방전후」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3. 「해방전후」의 가치와 한계는 무엇인가.
1. 「해방전후」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2. 「해방전후」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3. 「해방전후」의 가치와 한계는 무엇인가.
본문내용
지기에는 시대적 정세가 지나치게 암울하였다. 그 후 그는 창작에만 전념하면서 일제의 능동적으로 저항하지 못한 채 친일적인 글에 손을 댄다. 그러나 상허는 곧 자신의 매문 행위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1943년 고향인 철원으로 내려가 낚시로 소일하다가 1945년 8월 16일에야 해방의 소식을 듣는다. 을유년 해방과 더불어 귀경한 상허는 임화, 김남천 등 카프계열 작가와 어울리게 된다. 당시의 심정과 주변상황은 작품『해방전후』에 소상히 나와 있거니와 그는 1946년 돌연히 월북했다. 『이태준 소설연구』,장영우, 태학사, 1996. pp.37~44
「해방전후」는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두 인물을 내세워 자신의 심경적 변화를 고백한 작품이며, 따라서 주로 인물의 심리 분석에 치중하였다. 즉 현과 김직원 사이의 사상적 대립과 갈등을 작가 자신의 내적 갈등과 사상 변화에 대한 작가의 적극적인 해명인 것이다. 여기에서 이태준이 「해방전후」보여준 자기 반성적 태도는 비교적 솔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첫째 일제 말 특수한 상황 속에서 부일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지식인들의 삶을 읽을 수 있다는 것, 둘째 이태준 개인의 변신과정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해방전후」를 통해 지식인들이 어떻게 현실에 대응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고백 또는 변명의 성격이 잇지만 한 시대의 작가들, 말을 바꾸면 지식인들의 양심과 삶을 조명하는데 의의가 있다 『국어국문학논총』, 「해방 후(1945.8~1950.6)의 문학」, 김영화, 한국문학도서관, 2007,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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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이태준은 문학과 정치를 동일한 범주에서 이해하려 하였고, 그러한 자신의 신념을 실제 행동으로 나타내 보였다. 그러나 문학이 곧 생활이며 정치라는 그의 정치관은 너무 소박하고 비논리적이어서 스스로 논리의 파탄과정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오히려 식민지 시대부터 6·25때 까지 이태준의 사상적 바탕을 이룬 것은 소박한 의미의 민족주의이며, 그것이 해방 후 사회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굴절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문협>에 가담하면서 스스로 다짐했던 계급보다 민족을 우선하겠다는 각오는 이념과 계급적 투쟁을 강조하는 북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었고, 이태준이 종전 후 미국의 앞잡이로 몰려 숙청당한 것은 따라서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겠다 앞의 책,「해방 후 이태준 소설 연구」,장영우, 태학사 pp.297~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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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후」는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두 인물을 내세워 자신의 심경적 변화를 고백한 작품이며, 따라서 주로 인물의 심리 분석에 치중하였다. 즉 현과 김직원 사이의 사상적 대립과 갈등을 작가 자신의 내적 갈등과 사상 변화에 대한 작가의 적극적인 해명인 것이다. 여기에서 이태준이 「해방전후」보여준 자기 반성적 태도는 비교적 솔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첫째 일제 말 특수한 상황 속에서 부일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지식인들의 삶을 읽을 수 있다는 것, 둘째 이태준 개인의 변신과정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해방전후」를 통해 지식인들이 어떻게 현실에 대응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고백 또는 변명의 성격이 잇지만 한 시대의 작가들, 말을 바꾸면 지식인들의 양심과 삶을 조명하는데 의의가 있다 『국어국문학논총』, 「해방 후(1945.8~1950.6)의 문학」, 김영화, 한국문학도서관, 2007,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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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이태준은 문학과 정치를 동일한 범주에서 이해하려 하였고, 그러한 자신의 신념을 실제 행동으로 나타내 보였다. 그러나 문학이 곧 생활이며 정치라는 그의 정치관은 너무 소박하고 비논리적이어서 스스로 논리의 파탄과정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오히려 식민지 시대부터 6·25때 까지 이태준의 사상적 바탕을 이룬 것은 소박한 의미의 민족주의이며, 그것이 해방 후 사회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굴절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문협>에 가담하면서 스스로 다짐했던 계급보다 민족을 우선하겠다는 각오는 이념과 계급적 투쟁을 강조하는 북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었고, 이태준이 종전 후 미국의 앞잡이로 몰려 숙청당한 것은 따라서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겠다 앞의 책,「해방 후 이태준 소설 연구」,장영우, 태학사 pp.297~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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