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유전자 조작된 종자들을 움켜쥐고 있음으로 해서 몬산토라는 기업은 막대한 이익을 챙김과 동시에 그들이 공급하는 종자를 사용하지 않는 농부들을 망하게 한다. 이것은 경제적인 문제만을 일으키는 게 아니다. 우리는 유전자 조작된 식물이 앞으로 자연에 어떤 해악을 끼칠지를 예측할 수가 없다. 이것은 농약에 의한 오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것을 피하려면 유전자조작이 되니 않은 종자를 쓰면 되겠지만, 그랬다가는 판로가 막히고 원가도 못 건지니 결국 농부는 장사꾼들이 마을 들을 수밖에 없고, 몬산토와 같은 거대 농업기업들은 정부의 식품관련기관들마저 손에 쥐고 좌지우지하고 있으므로 얼마든지 그러한 조작들을 감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쯤 되면 한 사회집단에서 먹는 모든 음식에 대한 개인의 선택은 그 폭이 지극히 좁다는 걸 알 수 있다. 먹고 싶지 않아도 굶기 싫으면 유전자 조작된 식품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음식이 사회문제라고 했던 말이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그리고 음식을 이렇게 사회문제로 만들어버린 것은 음식물마저도 이윤을 만들어내는 도구로 전락시켜버린 기업들의 탐욕인 것이다.
기업은 이윤창출이 목표이므로 탐욕을 부린다고 비난할 수 없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여기서 생겨난다. 현대사회에서 기업은 우리 생활의 모든 측면을 지배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 인생과 온몸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이윤 창출의 대상이 된다. 기업은 계속적인 소비를 강요하면서 정부를 움직이고 반대세력을 무력화시켜서 우리의 인생전체를 기업의 식민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아무 주저 없이 ‘자본주의 기업의 전체주의’라 말할 수 있을 것이요, 이 전체주의를 움직이는 메커니즘은 바로 ‘맥도날드화’인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라 해도 정부는 원칙적으로 국민들의 뜻에 따라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은 경제체제와는 무관하게 그 체제를 민주주의라 부른다. 그런데 기업은 민주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기업의 의사결정은 최고 경영진이 알아서 하게 되어 있다. 최고 경영진은 기업의 종사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며 궁극적으로는 종사자들의 노동을 착취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기업은 철저한 독재체제이자 전체주의 시스템이다. 즉, 정치적 의사 결정과정은 가식일 뿐이고 실제로는 기업에 의한 사회지배가 실행되는 것이며, 이것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 의한 일상의 지배를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의 일상을 파고 들어와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자본주의 기업에 의한 전체주의는 말 그대로 ‘일상적 형태의 전체주의’이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를 얼마나 노예화할지 예측할 수가 없다.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기업에 취직하여 자신도 모르게 기업의 전체주의 지배를 돕고 있으나, 그것이 결국에는 우리의 목숨을 겨누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빤히 알면서도 어쩌질 못한다. 이것이 바로 ‘일상적 파시즘’의 본질적 내용이요, 그것을 우리는 ‘패스트푸드 전체주의’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이쯤 되면 한 사회집단에서 먹는 모든 음식에 대한 개인의 선택은 그 폭이 지극히 좁다는 걸 알 수 있다. 먹고 싶지 않아도 굶기 싫으면 유전자 조작된 식품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음식이 사회문제라고 했던 말이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그리고 음식을 이렇게 사회문제로 만들어버린 것은 음식물마저도 이윤을 만들어내는 도구로 전락시켜버린 기업들의 탐욕인 것이다.
기업은 이윤창출이 목표이므로 탐욕을 부린다고 비난할 수 없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여기서 생겨난다. 현대사회에서 기업은 우리 생활의 모든 측면을 지배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 인생과 온몸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이윤 창출의 대상이 된다. 기업은 계속적인 소비를 강요하면서 정부를 움직이고 반대세력을 무력화시켜서 우리의 인생전체를 기업의 식민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아무 주저 없이 ‘자본주의 기업의 전체주의’라 말할 수 있을 것이요, 이 전체주의를 움직이는 메커니즘은 바로 ‘맥도날드화’인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라 해도 정부는 원칙적으로 국민들의 뜻에 따라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은 경제체제와는 무관하게 그 체제를 민주주의라 부른다. 그런데 기업은 민주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기업의 의사결정은 최고 경영진이 알아서 하게 되어 있다. 최고 경영진은 기업의 종사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며 궁극적으로는 종사자들의 노동을 착취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기업은 철저한 독재체제이자 전체주의 시스템이다. 즉, 정치적 의사 결정과정은 가식일 뿐이고 실제로는 기업에 의한 사회지배가 실행되는 것이며, 이것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 의한 일상의 지배를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의 일상을 파고 들어와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자본주의 기업에 의한 전체주의는 말 그대로 ‘일상적 형태의 전체주의’이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를 얼마나 노예화할지 예측할 수가 없다.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기업에 취직하여 자신도 모르게 기업의 전체주의 지배를 돕고 있으나, 그것이 결국에는 우리의 목숨을 겨누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빤히 알면서도 어쩌질 못한다. 이것이 바로 ‘일상적 파시즘’의 본질적 내용이요, 그것을 우리는 ‘패스트푸드 전체주의’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