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학문과 러시아 교육, 대학, 문제점 지적, 특징, 현황, 관리, 역할, 기법, 시사점, 나의견해, 조사분석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Ⅰ. 러시아 학문
 1. 개괄
 2. 각 분야별 접근
  (1) 철학
  (2) 역사학
  (3) 사회학
  (4) 정치학

Ⅱ. 러시아 교육과 대학
 1. 교육제도
    (1) 개괄
(2) 문제점지적
 2. 대학
  (1)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2)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출신 노벨수상자>

본문내용

시작되었다.
현재 모스크바 국립대학은 19개의 학부와 27개의 단과대학, 344개의 전공분야가 있다. 그리고 2만 6천명의 학부학생과 7천명의 박사과정, 천여명의 정교수, 3천여명의 부교수 이하 선생님, 그리고 약 5천명의 연구자들과 2만 2천명에 육박하는 교직원이 있다. 3천여명은 97개의 세계각국에서 온 유학생과 연구원들이고 매년 158개국의 천오백여명의 외국학생들이 어학연수 등의 목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학교도서관에는 8백만여권의 전문서적과 학위논문이 보관되어 있으며 모스크바 국립대학 산하 연구소는 450여개나 있고 대학내 박물관도 3개를 운영하고 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은 명실공이 러시아 최고의 대학으로서 러시아의 선진화를 위한 핵심두뇌들이 양성되고 있는 상아탑의 산실이다.
(2)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은 초기 아카데미 사이언스와 문법학교 두개로 구성되었으며 최초 문헌상 공식화된 것은 1747년 엘리자베타 여제의 승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초대 총장은 저명한 민족지학자이자 역사학자였던 가랄드 프레더리치 밀러(Gerard Frederich Miller)였다. (상트페레르부르크 대학 홈페이지 http://www.spbu.ru/e history 영문 참조)
1758년에서부터 1765년까지 아카데미 대학과 문법학교는 미하일 로모노소프가 주도했다. 그의 사후 아카데미 대학과 문법학교는 아카데미 학교로 다시 조직된다.
1819년 2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은 알랙산더 1세에 의해 새로이 정비되는데 교육단체가 대학으로 변모되었고 처음 3개의 학부로 구성되었다. 철학과 어문학부, 철학과 법학부, 과학과 수학부가 바로 그것이다. 1854년 동양학부가 첨가되었고 이러한 학부구성은 1918년까지 지속되었다.
1838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은 트레찌니에 의해 디자인된 18세기 건축의 상징이었던 정부공공기관 건물을 니콜라스 1세의 칙령에 의해 분배받았으며 이것은 러시아에 있어 고등교육의 상징적인 것이 되었다.
1863년 새로운 법규가 적용됨에 따라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은 대학 자치를 위한 아카데미 위원회를 조직하였고 그 위원회는 대학총장을 선출하고 지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1878년 몇몇 교수들은 베스투제프(러시아 시인) 고등교육이라고 알려진 여성을 위한 개방교육에도 참석하였고 1918년 여성학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 편입되게 된다.
1924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레닌그라드로 변경됨에 따라 교명을 레닌그라드대학(정식 명칭은A.A.즈다노프 기념 국립 레닌그라드대학:Leningradskii gosudarstvennyi universitet imeni A.A.Zhdanov)으로 개칭하였다가 1991년 다시 원래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1920-30년대에는 기존의 학부들이 쪼개지거나 새로운 학부들이 생겨났는데 지리학학부, 생물학 학부 등에서 시작하여 1934년 역사학부 1937년 어문학부 1939년 경제학부 1940년 경제학부 등이 생겼다.
1941년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또한 피난길에 올랐는데, 이 시기에는 많은 교수와 학자들이 병으로 혹은 기아로 사망하였다. 그러다가 1944년에 학업이 다시 시작될 수 있었다.
1960년 심리학, 저널리즘학 등 새로운 학부가 더 설립되었고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은 유럽과 미국, 그리고 아시아의 중요한 대학들과 교류를 맺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은 지금까지 저명한 인사들을 많이 배출했는데 대학출신 중 8명, 파블로브(1904), 메치니코프(1908), 세묘노프(1956), 란다우(1962), 프로호로프(1964), 레몬티예프(1973), 칸토로비치(1975), 브로드스키(1987)이 노벨상을 수상하였고 현재 러시아연방 대통령인 푸틴 또한 이 대학 출신이다.
현재 푸틴 대통령과 관련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출신은 정치정계에서도 하나의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데 푸틴의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전 국방장관과 크렘린궁의 행정실장, 제1부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드미트리 코자크 부실장도 전 KGB출신이자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출신이다.(슬라브연구 학술지 제21권 1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정치엘리트연구 참조) 최근 출범한 수사위원회(SK)의 수장 또한 푸틴대통령과 동창인 알렉산드르 바스트리킨 전 법무부 차관도 이 대학 출신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출신 노벨수상자>
1. 파블로프 - 실험용 개 실험을 통해 뇌의 조건반사를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연구, 1904년 노벨생리 ·의학상을 수상하였다.
2. 메치니코프 - 1883년 메시나에서 극피동물을 연구하는 도중 식세포작용을 발견하고, 이를 발전시켜 면역설을 제창하게 되었다. 1908년 면역에 관한 연구로 P.에를리히와 함께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3. 세묘노프 - 1927년 혼합기계 폭발한계의 존재를 발견했고, 또한 폭발과정에서의 연쇄매커니즘이론을 주장했다. 1956년 힌셜우드와 함께 노벨화학상 수상
4. 란다우 - 1946년 플라스마 진동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여 ‘란다우감쇠’라는 용어를 만들어내었고, 1950년 초전도이론을 연구하였다. 1956~1958년 페르미양자유체(量子流體)의 일반론을 전개하여 3He의 여러 현상을 설명하였는데, 여기에는 제로음파의 존재도 들어 있다. 196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5. 프로호로프 - 초단파분광학을 추진하여 분자발진기의 착상을 얻었으며, 얼마 후 암모니아 메이저의 제작에 성공하였다. 메이저 및 레이저를 발명한 공로로 196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6. 레몬티예프 - 계량경제학 분야인 '투입-산출 분석'(input-output analysis)의 시조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97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7. 칸토로비치 - 희소 자원의 최적 배분에 대한 연구로 타일링 코프만스와 함께 197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8. 브로드스키 - 1987년 중요한 서정적 비가(悲歌)들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출처 - 인터넷 http://preview.britannica.co.kr/spotlights/nobel/npw/winners.html 참조

추천자료

  • 가격2,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2.07.18
  • 저작시기2012.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6548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