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트케의 아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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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트케의 아이이야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서론

II. 남자와 아내

III. 남자와 어머니

IV. 남자와 아이

V. 결론 : 운명에 대한 인식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었지만, 아이에게서는 어느 경우에나 절망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리고 희망을 잃은 아이를 보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다. 남자는 자기의 보호 하에 있는 아이를 학교에서 빼내는 것이 절박하게 느껴졌다.
남자는 새로운 학교에서 느끼는 아이의 낯설음이 공립이라는 점 때문이 아니라 아이에게 맞지 않았던 담임선생님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 교사의 열성 없고 거짓에 찬 친절이 아이에게 악의 같은 것으로, 미움을 산 것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남자는 담임을 면담한 후 아이를 그 학교에서 자퇴시키고 기독교 학교로 옮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남자는 아이에게 맞는 학교를 찾고, 독일어 쓰는 외국인으로 프랑스 말을 익히게 된다. 남자는 천천히 낯선 언어에 친숙해졌던 반면 아이는 그 언어를 토박이 아이들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만큼 배웠으나 그저 마지못해 그 언어를 썼다. 2개의 국어사용이란 재산이기도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 고통스런 괴리감을 체험하게 했다.
이처럼『아이 이야기』에서 한트케가 주인공들을 3인칭으로 객관화시키고 있는 것과는 달리 1973년 딸과 함께 파리로 이사한 후, 여기서 1975년 11월부터 1977년 3월까지 삼백 쪽이 넘는 일기체 작품『세계의 무게』를 쓰는데, 이 일기에서 그는 딸 아미나와 단 둘이 사는 모습을 50번도 넘게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이 중1976년 파리에서 학교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딸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부분들을 볼 수 있다.
[1976년 9월20일] A.의 눈 밑이 빨갛다. 학교에 가는 첫 날 울지 않으려고 몹시 비벼댔기 때문이다. [1976년 9월21일] A.는 내 허리께에서 조용히 울음을 참으며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로 말했다. “난 정말 학교 같은 건 싫어.” [1976년 9월 23일] A.의학교에 가야 하는 괴로움. 그녀는 울음을 터트리지 않으려고 학교에 가기 전 벌써부터 가슴을 쭉 펴고 숨을 쉬며 연습을 했다. 그럴 때 나를 엄습하는 무력감, 그것은 이내 실제의 신체적 무력감이 되었다. 절망적인 아이를 바라보며 - “내 피붙이!” [1976년 9월24일] A.가 말했다. “오늘 저녁은 멋져!” 그리고 그 이유를 다음날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데에서 찾는다. 하늘에 떠있는 밝고 조그만 구름덩이들. 그것들을 그녀는 보았다. 왜냐하면 내일은 쉬는 날이기 때문에 (아이를 매일 학교로 떠밀어 보낸다는 것에 대한 떨쳐 버릴 수 없는 죄의식). [1977년 2월] 내 사랑하는 동반자 - 잠자는 아이
아이는 우여곡절 끝에 자신에게 알맞은 학교를 다니게 된다.『아이 이야기』는 해가 지나 갈수록 점점 무거워지는 책가방을 멘 아이를 보며, “칸틸레네 - 사랑과 열정적인 행복이 영원하길.”이라는 괴테의 작품 ‘격언과 명상’에서 가져온 한 구절로 끝을 맺고 있다.
V. 결론 : 운명에 대한 인식
부인과 별거하게 된 후 아이는 혼자 사는 남자의 생활에서 사랑을 기울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 아이는 그의 일상생활에서 때로는 생명력이자 위안이었으며 때로는 슬픔이자 죄의식을 느끼게도 한다. 남자는 자신의 존재에서 아버지로서는 아이를 키운다는 어려운 과제를, 작가로서는 글 쓰는 작업의 어려움을 깊게 체험한다. 그가 목표로 삼았던 것도 아니고 어떤 종교적이거나 철학적 감정도 없이 1971년부터 시작된,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사는 일은 70년대의 그의 인생에서 운명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산 이6년- 그에 적합한 말로 내게 떠오르는 것은- 나는 이제 운명을 가졌다는 것이다.
운명이란 “인간의 생애를 이끄는 힘”을 가리킨다.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사는 고생스러운 생활을 하기 전부터 그는 자신이 “이야깃거리 없는 가정 출신의 이야깃거리 없는 사람
” 페터 한트케, <세계의 무대>, Ein Journal, 1977년 p.182
이라는 것과, 그래서 자신의 운명이 하찮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괴로워했었다. 더욱이 시간이 흐르면서 오늘날 대개의 부부들이 필레몬과 바우치스(그리스의 전설에 나오는 다정하고 성실한 부부) 부부와 비교해 볼 때 한 쌍의 결합이라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식을 갖게 된다. 오늘날 한 쌍이 되는 것은 전혀 위대한 일이 아니다.
한트케 역시 역사적으로 본다면 그와 그의 세대가 바로 운명이 없는 시대에 산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이렇게 운명이 없다는 생각을[] 오십이 채 못 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 어떻게 우리의 운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물론 운명을 얻기 위해 파국이나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다.” 결국 한트케는 오랜 세월 아내 없이 혼자 아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또 한편 작가로서의 작업도 성실히 수행한다. 괴롭고 어려웠지만 이처럼 자신의 삶을 방종으로 이끌지 않고 극복하면서 부끄럽지 않는 자신의 운명을 만들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심지어는 그 일에 자부심까지 느낀다. 그는 이 감정을『세계의 무게』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 나의 위대함 : 혼자 사는 일
-혼자 산다는 것이 난 너무도 자랑스럽다
-나는 운명을 가졌다! 그리고 나는 그 운명을 지배하고 있다는 감정
-의기양양한 생각-나는 이야깃거리를 가졌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이야깃거리를 가질 것이다!
한트케가 자신의 위대함을 결정한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한 혼자 사는 일은 다른 삶의 형식에 현혹되거나 부부가 함께 사는 행복으로 대치될 수 없는 그의 분명한 삶의 형식이 된다.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이러한 운명에 한트케는 긍지를 느끼고 자신도 이제는 이야깃거리를 가졌다는 승리감을 갖는다. 또한 그는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산다는 위대한 감정” 에 강한 자부심을 갖는다. 이러한 운명에 관한 삶의 이야기는 계속해서『잘못된 움직임』,『진정한 감성의 시간』, 그리고『왼손잡이 부인』과 같은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참 고 문 헌
박광자 옮김, <페터 한트케 내부 세계>, 충남대 교수 독문학
윤용호 옮김, <페터 한트케>, 민음사, 2002
윤용호, <페터 한트케 연구>,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5
윤용호 옮김, 페터 한트케 : 세계의 무게 - Ein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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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9.27
  • 저작시기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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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69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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