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유아세례관 (유아세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바와 일치함, 그리고 그 표징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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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는 글

A. 재세례파의 대한 칼빈의 문제제기
 1. 영혼수면설
 2. 성례론적 문제가 아닌 교회론적 문제
  1) 세례의 집례자의 문제
  2) 세례의 조건(유아세례 VS 성인세례)

B.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칼빈의 유아세례
 1. 세례 의미
 2. 세례와 할례
  1) 언약사상
  2) 유사와 차이
 3. 유아세례
  1) 유아세례에 대한 공격에 대하여
  2) 유아세례의 정당성(할례대신 세례를 통한 확증)
  3) 믿음의 원칙으로 간주(그리스도와 어린아이, 그리고 여자)
  4) 유아세례가 주는 유익
  5) 유아세례의 성서적 근거
 4. 유아세례에 대한 반대 주장의 반론
  1) 표징과 이해의 관계
  2) 중생에 관하여
  3) 성만찬과 관련하여

나가는 글

기독교강요의 유아세례 목차

본문내용

생각하여 잘못 속아 넘어가고 있다고 한다. 칼빈은 성령께서 신실한 심령들을 물로써 깨끗케 하심으로써 물의 기능을 발휘하신다고 본다. 그러므로 칼빈은 ‘물과 성령’을 그저 ‘물이신 성령’으로 이해한다. 존 칼빈, 「기독교 강요(하)」, 420.
그리고 마태복음 3장에 나타나는 말씀과도 일치한다. 마 3:11절에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라고 하는데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푼다는 것이 중생에서 불의 기능과 본질을 발휘하는 성령을 부어 준다는 뜻인 것처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마치 물에 육체에게 하는 역할을 영혼에게 행하는 그러한 성령의 권능을 받는 다는 뜻이다.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자들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세례가 의미하는 신비-영적중생-을 아직 이해할 수 없고, 그렇기에 영적중생은 어린나이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ibid, 409.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적절한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아담의 자손으로만 여겨야 한다는 결론을 짓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하나님의 진리와 정면으로 배치되고그 아이들은 죽음 가운데 버려지는 것이 된다. 그러나 칼빈은 비록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이해와 한계를 넘어서므로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의 역사하심은 유효하다는 것이다. 구원을 받게 될 유아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데려오라고 명하시기에 생명의 주님과 함께 하기에 거듭나고 생명을 얻는다.
칼빈은 세례요한을 예로 들면서 그는 이미 어머니 태안에 있을 때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ibid, 411.
김문기, “제세례파와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유아세례에 대한 소고”, 27.
3) 성만찬과 관련하여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이들은 성경이 모든 면에서 둘 사이의 차이를 명백히 말함에도 불구하고 세례역시 성찬의 경우와 다를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성찬은 유아기를 지나 딱딱한 음식을 취할 수 있는 성인시기에 베풀어지는 것으로서 두 성례전은 차이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런 구분은 성경 고전 11:28절 (고전 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에서 분명하게 구분한다. 세례는 분명한 연령을 제시하지 않는 반면 성찬은 모든 사람이 참여할 것이 아니고 오직 주의 몸과 피를 분별하고, 자기 자신의 양심을 살피며,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하며, 그 죽으심의 능력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들만 참여할 것으로 말한다. 그렇기에 명백한 차이를 말하고 있다.
칼빈은 세례와 일치하는 할례는 어린아이들을 위하여 지정되었지만, 성찬으로 대체된 구약시대의 유월절(출12:26) (출 12:26)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들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은 모든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참여시킨 것이 아니라 그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며 의미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는 사람만 참여하게 되었다고 본다.
나가는 글
성경의 해석이 결국 신앙의 형태를 만들어 낸다. 우리의 신앙의 근간으로 삼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형태가 달라짐도 볼 수 있다.
구약과 신약의 연계성을 통하여 해석하느냐 아니면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신학은 달라진다. 무리하게 우의적이거나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있지만 반대로 너무 문자적으로만 해석함도 무리가 있다.
칼빈은 유아세례론을 지지하면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또한 공의로움을 말하고 있다. 재세례파들이 주장한 것처럼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들을 만하다. 또한 말씀중심이 아닌 유추로 인한 해석일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유아세례론을 보면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또한 유아들에 대한 배려에 대해서 볼 수 있었다. 아담의 자손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고 유아세례를 통해 언약의 자손이 된다는 것은 큰 위로와 확신으로 믿음의 성장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자치 이것이 이중예정처럼 선민사상에서 발생하는 병폐의 원인이 될 수 있음도 본다. 믿는 부모를 통하여 아이의 신앙이 보증되고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인침받아 사는 것은 맞지만 반대로 모태신앙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 살고 단 한 번도 신앙고백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문제로 인해 믿는 자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맞지만 그러나 유아들이 사망하여 아담의 자손으로만 머물러 있다가 심판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부당하고 끔찍하여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것을 감안한다면 솔직히 오늘날 자녀를 둔 부모로서는 유아세례의 논리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유아세례가 구원의 필수조건이 아닌 표징인 이상 부모의 신앙에 의해 유아세례를 받고 믿음의 고백을 할 나이에 이르러 견진례를 통하여 믿음을 강화하는 것도 좋은 신앙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강요의 유아세례 목차
1 유아세례에 대한 공격
2 세례의 의미
3 세례와 할례의 관계
4 세례와 할례의 차이는 외형적인 의식의 차이뿐임
5 유아세례의 정당성
6 방식은 다르나 동일하게 언약의 말씀
7 그리스도와 어린아이들
8 유아세례는 믿음의 원칙으로 보아야 함
9 유아세례가 주는 유익
10 세례와 할례가 다르다는 재세례파의 주장
11 할례의 약속은 영적인 약속이었음
12 육체적 자녀와 영적자녀
13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임
14 유대인들의 특권
15 약속의 문자적 성취
16 세례와 할례의 차이에 대한 주장을 반박함
17 유아도 그리스도 안의 생명을 누려야 함
18 그리스도의 모범에 근거한 논지
19 유아에게는 지식이 없다는 반론
20 유아에게는 회개나 믿음의 능력이 없다는 반론
21 세례의 표징이 그것에 대한 이해보다 앞선다
22 유아세례를 공격하는 나머지 논리들
23 사도행전의 증거에 근거한 반론
24 아브라함과 이삭의 경유에 근거한 논지
25 세례와 중생을 연관지는 반론
26 세례가 구원에 필수조건이라는 반론
27 세례에 대한 말씀을 근거로한 반론
28 막 16:16에 근거한 논지에 대한 반론
29 예수님의 수세에 근거한 논지에 대한 반론
30 세례와 성찬
31 세르베투스의 반론
32 유아를 향한 하나님의 배려에 대한 우리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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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11.08
  • 저작시기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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