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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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머리말


Ⅱ.본문

1.한니발은 과연 누구인가?

2.성장배경과 어린 시절

3.제2차 포에니 전쟁

4.그의 전술을 따라한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


Ⅲ.맺음말

※참고자료

본문내용

그냥 주저앉아 있는형세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로마의 최대의 골칫거리였다. 이길수도 없고 물러나게 할 수도 없는 존재로 이탈리아 반도에 존재해 있었던 것이다.
로마의 굴욕이었다.세계 최강 로마군대를 맞이하여 연전연승을 벌인 한니발의 용병술은 한마디로 천재의 그것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던 것이다.아래는 그의 전투지역이었다.
칸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한니발은 기원전 215년 마케도니아의 필립왕과 동맹을 맺는 성과를 가져오기는 했다.마케도니아의 필립왕은 로마의 패전에 고무받아 한니발과 동맹을 맺고 214년에 제 1차마케도니아 전쟁을 일으켰다.기원전 211년 스페인 남쪽 베티스 강 상류에서 카르타고 군은 스키피오 형제가 이끄는 로마군을 2번의 전투에서 격퇴를 하였다. 이로 인해 그런 시도도 물거품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그럴 즈음로마의 명장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Scipio Africanus)가 등장을 하였다. 그는기원전 206년 한니발의 근거지인 이베리아반도를 치고 들어가서 그곳을 완전히 평정하여 보급로를 차단하였고, 시실리아를 공격하여 해상보급로도 차단하였으며, 그 여세를 몰아 카르타고의 본거지를 직접 공격하였다.
4.그의 전술을 따라한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
불패의 군대를 회군하였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한니발의 군대는 대항하는 로마인들을 격파하였다.
카르타고는 스키피오에게 항복 진전에 한니발이 구세주처럼 이탈리아에서 카르타고 남동쪽 100마일 지점의 함마메트만에 2만 4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상륙하자 다시금 자신감을 회복하고 항복협상을 중단해 버렸다. 한니발의 동생 마고는 형 한니발의 군대를 맞이하기 위해 오다가 중도에 죽었지만 그의 군대인 1만 2천명의 부대는 결국 한니발의 군대에 합류했다. 또한 티케이우스가 지휘하는 누미디언 왕국 출신의 기병 2천명과 아프리카 출신의 새병력과 마케도니아의필립 왕이 보낸 마케도니아군 4천명도 한니발의 군대에 합류했다.

이에 군사력의 차이를 느낀 스키피오는 자신에게 유리한 지역을 선점하기 위해서 바그라다스 계곡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스키피오는 그곳의 도시와 주민들을 공격하고 식량을 탈취하고 주민들을 노예로 팔았다. 스키피오는 마시니사의 기병 부대와 5천명이 로마군대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고 있었다.그러자 카르타고 원로원은 한니발에게 빨리 가서 바그라다스 계곡의 파괴와 약탈을 종식시키는 한편 스키피오의 로마 군대를 섬멸하라고 재촉을 하였다. 이로써 한니발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스키피오의 군대를 추격하게 되었다.
그곳은 함마메트만 서쪽 70마일 지점의 잠마였다. 이미 스키피오는 그곳에서 싸움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곧이어 마시니사가 6천명의보병과 4천명의 강력한 기병을 데리고 합류했다. 이로써 스키피오의 군대는 3만 6천명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스키피오 군대를 추격하여 오는 한니발의 군대는 5만명이었다.한니발은 코끼리 경무장 부대 바로 뒤에 리구리아인과 고울인 그리고 무어인 용병들로 구성된 1만 1천명의 중보병을 선두에 배치를 하였다.
둘째 열에는 역시 1만 1천명의 카르타고 군대와 아프리카 징집병과 마케도니아 군대를 배치시켰고 마지막 열에는 2만 4천명의 막강한 예비대를 두었고 다른 열에는 200야드 정도 뒤에 배치를 했던 것이다. 양 날개에는 4천명의 기병을 포진시켰다. 오른쪽에는 카르타고 기병을 배치시켰고 왼쪽에는 누미디언 동맹군을 배치시켰다.

여기에 맞서는 천재적인 군사전략가인 스키피오는 중앙에 그의 중무장한 로마 군단을 배치하였고 왼쪽에는 라일리우스가 지휘하는 이탈리아 기병을 두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마시니사의 누미디언 기병을 배치하였고 후방에는 예비 부대로 마시니사의 경보병을 두었다.이렇게 하여 자마(Zama)에서 역사적인 결전이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이 운명을 건 결전(기원전 201년)을 벌였으나 뜻밖에 스키피오의 기발한 전투수행에 그만 노련한 천하의 한니발은 어이없는 참패를 당하게 된다.
그 서막은 한니발이 코끼리 부대로 쓸어버리는 유명한 전술에 맞서 스키피오는 즉시 트럼펫과 코넷을 불어 코끼리를 놀라게 했다. 놀란 코끼리는 오히려 한니발 군대로 달려가 버렸다. 그러자 한니발의 최고 기병인 누미디언 기병이 타격을 받고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혼란을 틈타 로마군의 마시니사 기병이 즉각적인 반격을 하기 시작했고 누미디언 기병은 한니발의 왼쪽 날개를 노출시키면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마시니사는 전투장을 떠나서 도망가는 누미디언의 군대를 추격하였다.라일리우스 기병대도 카르타고 기병대를 공격했고 결국 카르타고 기병대는 혼란속에 역시 도망치기 시작했다.이제 전면전은 보병들끼리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양측은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그러나숫적인 열세인 스키피오는 일시 후퇴를 명령을 했고 전열을 정비한 후열의 로마군대가 대신 백병전을 벌이게 되었다.행운은 스키피오에게 돌아왔다. 누미디언 기병과 카르타고 기병을추격하다가 전장으로 다시 돌아오는 마시니사의 기병과 라일리우스 기병대는 카르타고의 한니발 군대를 뒤에서 덮치게 되었다.
이로써 한니발의 군대는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서 살육이 되고 말았다.이 예기치 않은 전투에서 한니발의 군대는 2만명의 전사자와 또한 전사자와 비슷한 숫자가 포로로 잡히게 되었다. 한니발과 다른 생존자는 겨우 전투장을 탈출 할 수 있었다.스키피오의 로마군은 2천명을 잃은 대승이었다. 이로써제 2차 포에니전쟁도 로마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스키피오는 관대한 조건으로 카르타고의 항복을 받아주었다.
Ⅲ.맺음말
내가 한니발을 선택한 이유는 그의 전술이 매우 신기하고 멋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료를 검색해 보고 자세히 읽어보니 한니발은 정말 멋있는 장군였던 것 같다. 어떻게 초승달대형과 같은 것을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 나도 한니발이 전쟁에서 교묘하게 상대방의 성격을 파악해 뒤에서 쳤던 것처럼, 상대를 잘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참고문헌
영화 ‘한니발 라이징’
토머스 해리스지음/ 이창식 옮김. 「한니발1」(1999). 창해
토머스 해리스지음/ 이창식 옮김. 「한니발2」(1999). 창해
파트리크 지라르지음/ 전미연 옮김. 「명장 한니발 이야기」(2001). 한길사

키워드

역사,   문명,   한니발
  • 가격2,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2.11.13
  • 저작시기201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75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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