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는 전통적인 스타일로 미루어 완벽하지 않으면 절대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는 일념으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이러한 장인정신은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장의 생태를 따라잡지
못했다.‘완벽’이라는 그물에 걸려 적기를 놓치고 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심지어는 신생
기업들의 광고 전략에 따라가지도 못했다. IBM 회생의 시기에 루 거스너가 시장의 흐름에 주목하도록 경영혁신을 펼치는 시기에도, HP는
상품생산에 완벽을 기했다. 경영자들 역시 최고의 상품만을 추구했고, 시장에 따라가는 기업의 경박성을 한탄했다. 시장은 갈수록 변하고, 적기를
잡지 못한 기업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장인정신과 각 생산라인의 자율성을 중시한 것이 매출에 영향을 미친다면, 경영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온 것과 같다.60년 전통의 보수적인 HP가 전격 발탁한 최초의 아웃사이더 CEO에게
지워진 짐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창업자 휴렛과 팩커드가 세운 HP 방식은 시장보다는 기술을 우선으로 하여 완벽한 테크놀러지 구현에 집중해
있었고, 사업부문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기업은 경쟁력을 잃었다. HP의 전통적인 기업문화는 경영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HP 재건, CEO 칼리 피오리나의 결단2001년 9월, 피오리나는 경쟁사 중 하나인 컴팩 컴퓨터와의 인수합병을 결정했다. 당장의 수익보다는 업계 최고가 되기
위해 기업의 생존을 걸었던 것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합병계획이 발표되자, HP 주식의 수업으로 사회사업을 하고 있는 휴렛 재단과 팩커드 재단의
창업자 후손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후손 중 유일하게 HP의 이사로 있던 월터 휴렛은 주주들의 의사를 묻는 위임장경쟁을 실시하자는 의견을
내세웠다. 초기에는 이사회 역시 찬성과 반대로 각기 의사를 달리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피오리나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이사들이 늘어났다. HP
주식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두 재단(휴렛 재단, 팩커드 재단)과 월터 휴렛의 반발은 결국 위임장경쟁을 야기했고, 주주들은 피오리나와 이사회에
표를 던졌다.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월터 휴렛은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결국 월터 휴렛과 피오리나는 ‘휴렛 대 휴렛팩커드’라는
이름으로 법정에 서게 되었고, HP 재건을 위한 피오리나의 결단과 정당성에 재판정 역시 동의했다. 2002년 9월 합병은 성사되었다.
이 지식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공유해주셨습니다.
않는다는 일념으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이러한 장인정신은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장의 생태를 따라잡지
못했다.‘완벽’이라는 그물에 걸려 적기를 놓치고 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심지어는 신생
기업들의 광고 전략에 따라가지도 못했다. IBM 회생의 시기에 루 거스너가 시장의 흐름에 주목하도록 경영혁신을 펼치는 시기에도, HP는
상품생산에 완벽을 기했다. 경영자들 역시 최고의 상품만을 추구했고, 시장에 따라가는 기업의 경박성을 한탄했다. 시장은 갈수록 변하고, 적기를
잡지 못한 기업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장인정신과 각 생산라인의 자율성을 중시한 것이 매출에 영향을 미친다면, 경영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온 것과 같다.60년 전통의 보수적인 HP가 전격 발탁한 최초의 아웃사이더 CEO에게
지워진 짐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창업자 휴렛과 팩커드가 세운 HP 방식은 시장보다는 기술을 우선으로 하여 완벽한 테크놀러지 구현에 집중해
있었고, 사업부문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기업은 경쟁력을 잃었다. HP의 전통적인 기업문화는 경영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HP 재건, CEO 칼리 피오리나의 결단2001년 9월, 피오리나는 경쟁사 중 하나인 컴팩 컴퓨터와의 인수합병을 결정했다. 당장의 수익보다는 업계 최고가 되기
위해 기업의 생존을 걸었던 것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합병계획이 발표되자, HP 주식의 수업으로 사회사업을 하고 있는 휴렛 재단과 팩커드 재단의
창업자 후손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후손 중 유일하게 HP의 이사로 있던 월터 휴렛은 주주들의 의사를 묻는 위임장경쟁을 실시하자는 의견을
내세웠다. 초기에는 이사회 역시 찬성과 반대로 각기 의사를 달리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피오리나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이사들이 늘어났다. HP
주식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두 재단(휴렛 재단, 팩커드 재단)과 월터 휴렛의 반발은 결국 위임장경쟁을 야기했고, 주주들은 피오리나와 이사회에
표를 던졌다.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월터 휴렛은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결국 월터 휴렛과 피오리나는 ‘휴렛 대 휴렛팩커드’라는
이름으로 법정에 서게 되었고, HP 재건을 위한 피오리나의 결단과 정당성에 재판정 역시 동의했다. 2002년 9월 합병은 성사되었다.
이 지식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공유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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