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용의 역사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한국 미용의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고조선, 삼한시대
2. 삼국시대
1) 신라시대(B.C 57~ A.D 668)
2) 백제시대(B.C ~A.D 663)
3) 고구려시대(B.C 37~A.D 668)
3. 통일신라
4. 고려시대
5. 조선시대
6. 1900~1910년대
7. 1920년대
8. 1930년대
9. 1940년대
10. 1950년대
11. 1960년대
12. 1970년대
13. 1980년대
Ⅲ. 결론

본문내용

들은 앞다투어 줄을 섰다고 한다. 이 시기 우리 나라의 젊은 여성들은 외국 영화 배우들을 따라하기를 좋아하여 머리를 어깨위의 길이로 웨이브를 주어 흘러내리게 했고 앞머리나 옆머리에는 헤어 액세서리를 이용하였으며 뒷머리를 길고 느슨하게 연출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1930년대는 대중성과 실용성에 있어서 누구에게나 무난히 어울리는 롱헤어 패턴과 짧게 자른 단발 스타일이 공존해서 유행했던 시기이다.
9. 1940년대
광복이후 일제말에 금지되었던 퍼머너트가 다시 등장하고, 묶는 머리가 평범한 가미머리에 익숙해있던 이반 여성들도 퍼머나 세팅 또는 아이론으로 웨이브를 만들어 멋을 부렸다. 그 당시 미용기술로는 머리 전체에 웨이브를 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기술이었기 때문에 뒷머리는 적당히 빗고 앞머리에 웨이브를 자잘히 내어 멋을 부리는 아라이 아이론이 유행하였다. 또한 머리에 싱을 집어넣고 머리 뒤를 부풀게 하는 도르마키라는 스타일이 멋쟁이 유한부인들 사이에 유행하였다. 최담을 걷는 여성이라든가, 영화배우 요정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링고 스타일은 한복이나 양장차림에도 잘 어울려서 일제시대부터 광복후까지 애용되었다.
10. 1950년대
한국 전쟁이후 패션의 풍속도가 새롭게 전개되었는데 유엔군의 참전으로 유행의 판도가 달라졌다. 6.25전까지는 주로 전기 퍼머였으나 전쟁후, 전력공급이 중단되어 불퍼머를 개발하게 되었다. 당시 불퍼머는 지금의 번개탄과 비슷한 손가락 크기의 가봉이라는 펌기기에 불을 붙여 퍼머 집게의 양쪽에 두개씩 넣어 은박지를 대고 머리를 말아서 퍼머를 하였는데, 이때 가봉의 재가 떨어지고 불똥이 튀어 옷에 구멍이 나고 화상을 입는 불편함에도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전쟁 후, 개발된 불퍼머의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퍼머 머리가 유행되고 미군 부대 근처의 양색시들의 강한 컬의 콜드펌과 미국잡지나 영화의 유입으로 헤어스타일은 점점 더 서구화되고 급속도로 확사되었다. 미국잡지와 영화의 영향으로 오드리헵번이 주연한 로마의 휴일이 상영되자 그녀의 이탈리안 보이란 헤어스타일이 헵번 스타일이라 불리며 점차 여성들 사이에서 짧은 머리형이 늘어났다. 50년대 후반에는 퍼머약이 처음으로 판매되어 헤어스타일이 급격히 다양해졌다.
11.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초에는 앞머리의 부위와 귀 양옆에 높이를 준 헤어스타일이 유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스타일을 바가지 스타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64년 업스타일과 함께 보브 스타일이 유행하였고, 65년경부터는 가발 붐이 일기 시작해서 머리모양을 개성 있게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세련된 멋을 냈다. 68년에는 보브 스타일이 가수 윤복희씨에 의해 소개되어, 간편하고 손질하기 쉽기 때문에 직장 여성이나 학구파 신여성에게 유행하였다. 또한 양장이나 한복을 입고 올림머리를 함으로써 고데기를 사용해서 머리형을 살리고 장식적인 컬과 가발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현대 드라이어의 시초가 되었다
12. 1970년대
1970년에는 긴 머리를 그냥 자른다는 개념에서 모발을 각도에 의해 나누어 기하학적으로 자른다는 개념이 완전히 정립된 시기이다. 1970년대 전반기는 컷트의 절정을 이루었고, 쉐기 컷트라는 일명 거지 컷트가 유행하였고 앞머리를 변형한 계단식과 젊은 여성들의 간결하고 생동감 나는 상고머리 스타일이 유행하였다. 이제까지 아이론과 셋트에 의한 단단한 웨이브 구성은 사라지고 가벼운 웨이브 스타일이 나왔는데, 재미교포 미용가 홍계남씨에 의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13. 1980년대
80년대 초에는 여대생이나 직장여성을 중심으로 바리캉과 레이저를 변형한 컷트오 펑크헤어 또는 디스코머리와 같은 중성적인 헤어스타일이 유행하였다. 80년대말에는 긴 머리의 굵은 퍼머 스타일과 스트레이트와 더불어 머리장식이 유행하였다. 1982년에는 세계미용연맹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Ⅲ. 결론
미용은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는 미의 척도로써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앞에서 한국 미용의 문화사를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우리 나라의 미용 문화와 여성미 변천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었다. 또한 이를 통해 다가올 21세기 미용 경향도 예상해 볼 수 있었다. 비록 역사에서 나타난 향장품들과 미용술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시대가 추구하는 미의 기준을 통해 한국의 향장사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미용술의 역사 속에 그 시대의 정신과 철학이 들어있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은 인간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미용은 고도의 기술 집약 산업으로 자원이 부족한 국내의 상황에서 고도의 기술 개발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수출 전략 핵심품목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미용과 화장은 피부 손질의 수준이 아닌 피부 노화 방지와 세포 부활, 미백 및 자외선 차단 등의 적극적인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화장품법의 시행과 기능성 화장품의 명문화로 화장품의 연구 개발 및 제조 기술의 발전에 박차가 가해지고 있다.
현대 사회 속에서 드러나는 미용은 현대인의 주체성을 통해 내적 자아를 표출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미용의 가치는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소비자의 관심과 범위 또한 하루가 다르게 확장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 속에서 드러난 향장문화를 되돌아보고 이를 계승 발전시켜서 미용문화를 보다 개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참 고 문 헌 】
1. 김덕록 (1997). 화장과 화장품. 서울 : 도서출판 답게
2. 김두한 (2003). 멋진 피부 멋진 인생. 서울 : 도서출판 무한
3. 신인섭 (2002). 광고로 보는 한국 화장의 문화사. 서울 : 김영사
4. 데이코산업연구소 (2001). 기능성 화장품 시장의 현황. 서울 : 데이코산업연구소
5. 노선옥 (1998). 20세기 메이크업 아트 연구. 서울 : 관동대학교 교육대학원
6. 이나경 (1999). 현대 여성의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서울 : 관동대학교 교육대학원
7. 전완길 (2000). 한국화장문화. 서울 : 열화당
8. 김희숙 (2000). 化粧文化史 .서울 : 청구문화사
  • 가격2,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8.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79566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