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신앙강고백서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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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웨스트민스터신앙강고백서강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확실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여전히 사람의 마음에 만족을 주지 못한다. 덕(도덕적 기초)이 없는 지식은 죄가 사용하는 도구가 된다.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아름다움의 창시자이자 예술가들에게 온갖 일들을 하게 하시는 분(출31:3,35:31)으로서 예술이란 우선 무엇을 행하고 만드는 능력이 사람에게 있다는 증거이며, 영적인 성격을 지니며, 높은 것에 대한 열렬한 갈망 등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이 드러내는 아름다움을 누리는 것은 다만 상상에 속한 것이다. 에술은 그 비전의 저기 너머(yonder)를 우리의 현 세상의 여기(here)로 만들 수가 없다.
문화, 문명, 인도주의, 사회적 삶도 마찬가지다.
일종의 진전인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인류에 대한 섬김의 삶과 이웃 사랑의 삶이 하나님의 법에 뿌리박고 있지 않으며, 그 힘과 성격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본성적으로 나오는 자기 입증(self-vindicating)이 아니다. 따라서 굉장한 의지력을 요하며, 자기 걱정과 이익을 추구하는 힘을 제치고 유지되어야 한다. 더욱이 그 사랑의 당사자인 이웃 자신에게서도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사랑할 만하지 못하다. 힘겨운 싸움이 필요하며, 법력(法力)과 함께 열심이 부어지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사람은 진리를 사모하는 동시에 본성적으로 거짓되다. 그는 영구하고 영원한 복락을 사모하면서도 순간의 쾌락에 사로잡힌다. 과학으로는 사람에게 있는 이런 모순을 설명할 수 없다. 과학은 오로지 사람의 위대함에만 관심을 둘 뿐, 사람의 비참함은 안중에도 없고, 아니면 사람의 비참함에만 관심을 둘 뿐 그의 위대함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사람은 오로지 하나님 안에서만 풀 수 있는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제2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이 사람의 최고선이라는 성경적 증언


창조 :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현재의 계시 :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재창조 : 새 예루살렘의 거민들이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며 그 이름을 이마에 새김

하나님의 말씀이 그 계시의 시작, 원리, 씨앗이며, 그 씨앗이 충만히 실현되게 되는 것이 계시의 행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에는 그 말씀을 하신 순간부터 내가 너희 하나님이라는 성취가 내포되어 있다.
교회의 응답은 곧 믿음의 선언이었다 : 과학적인 교리도, 계속 반복되는 연합의 형식도 아니요, 오히려 깊이 느낀 현실의 고백,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현실에 대한 확신의 고백을 하였다.
→ 체험의 순전함과 깊이는 하나님에 대해 표현된 언어에 잘 드러난다 : 왕, 주(主), 용사, 대장, 목자, 구주, 구속자, 도우시는 자, 의원, 아버지, 태양, 방패, 빛과 불... 그 고백의 단어에는 긴장이 전혀 없다.


시편16:2 → 다윗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KJV Psalm 16:2O my soul, thou hast said unto the LORD, Thou art my Lord: my goodness extendeth not to thee;


시편73:25,26 → 아삽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KJV Psalm 73:25 Whom have I in heaven but thee? and there is none upon earth that I desire beside thee.
KJV Psalm 73:26 My flesh and my heart faileth: but God is the strength of my heart, and my portion for ever.


→ 하나님의 자녀들의 체험 : 하나님께서 친히 그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자기 자신을 즐거워 하도록 내어주셨기 때문
→ 영생, 즉 구원의 총체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또한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 있다고 말씀하심(요17:3)

앎, 지식 → 사람의 지식과의 차이는 정도(程道)의 차이를 넘어 원리와 본질의 차이
1. 기원의 차이 :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의존함

2. 대상의 차이
※ 자연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 신격에 대한 계시가 있으나, 이는 미약, 희미, 오류와 뒤섞여 있고 큰 가치 없어...
※ 세계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계시이면서 동시에 은혜이다(롬1:20~23)
※ 사물을 기원과 본질과 목적까지 다 아는 그런 지식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특유한 본질을 가진다
진정한 앎이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정보가 아니라, 인격적인 관심의 요소와 개입(介入)과 마음의 활동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씀하실 때에는, 자기 자신이 소유하시는 지식과 종류가 유사한 그런 지식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것이다. 진리를 아는 그의 지식은 모두가 진리를 행하는 그의 실천과 항상 함께 하는 것이었다. 지식과 사랑이 함께 온 것이다. → 믿음의 지식, 믿음의 산물

지식은 힘이다. 그러나 삶이 되는 지식은 어떤 것인가? 인간의 삶은 가장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의 삶이 가장 풍성한 삶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정도의 차이에 지나지 않고, 삶 그 자체가 지식으로 인하여 변하지를 않는다. 여전히 죽음의 한계와 세상의 제한된 공급원으로부터만 양식을 얻는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아는 지식이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야 삶에 얼마나 더한 것을 주겠는가? 효과만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 자체가 곧바로 새롭고 영원하며 복된 삶이다.

칼빈의 제네바 요리문답: 첫 질문을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인가?”로 잡고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대답한다.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그 질문에 대해서 간단하면서도 풍성하게 답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 가격3,000
  • 페이지수75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8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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