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A. 포로기(주전 587- 539년)
1. 주전 587년 이후의 유대인들의 곤경.
1).유다에서의 삶의 와해
2). 바벨론의 포로들.
3). 이집트와 그 밖의 지역의 유대인들.
2. 포로생활과 이스라엘의 신앙.
1). 위기의 본질
2). 불굴의 이스라엘 신앙.
3). 귀환의 소망
3. 바벨론 제국의 말기.
1). 느부갓네살(주전 562에 죽음)의 통치 말기.
2). 느부갓네살의 후계자들.
3).고레스(Cyrus)의 등장.
4. 해방 전야; 이스라엘의 신앙에 대한 선지자들의 재해석.
1). 한 분 하나님이며 역사의 주재자인 여호와.
2). 여호와의 미래; 그분의 통치의 보편적 승리.
3). 이스라엘의 사명과 숙명적 과업: 여호와의 종.
B.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공동체의 재건
1. 새날의 개막.
1). 바벨론의 붕괴.
2). 고레스의 정책: 재건의 칙령.
3). 제1차 귀환.
2. 재건 공동체의 초기.
1). 유대인 공동체: 역경과 좌절의 세월.
2). 공동체의 정신적 위기.
3. 성전의 완공.
1). 다리우스 1세의 등극과 이에 따른 소요들,
2). 메시아 소망의 약동: 학개와 스가랴.
1. 주전 587년 이후의 유대인들의 곤경.
1).유다에서의 삶의 와해
2). 바벨론의 포로들.
3). 이집트와 그 밖의 지역의 유대인들.
2. 포로생활과 이스라엘의 신앙.
1). 위기의 본질
2). 불굴의 이스라엘 신앙.
3). 귀환의 소망
3. 바벨론 제국의 말기.
1). 느부갓네살(주전 562에 죽음)의 통치 말기.
2). 느부갓네살의 후계자들.
3).고레스(Cyrus)의 등장.
4. 해방 전야; 이스라엘의 신앙에 대한 선지자들의 재해석.
1). 한 분 하나님이며 역사의 주재자인 여호와.
2). 여호와의 미래; 그분의 통치의 보편적 승리.
3). 이스라엘의 사명과 숙명적 과업: 여호와의 종.
B.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공동체의 재건
1. 새날의 개막.
1). 바벨론의 붕괴.
2). 고레스의 정책: 재건의 칙령.
3). 제1차 귀환.
2. 재건 공동체의 초기.
1). 유대인 공동체: 역경과 좌절의 세월.
2). 공동체의 정신적 위기.
3. 성전의 완공.
1). 다리우스 1세의 등극과 이에 따른 소요들,
2). 메시아 소망의 약동: 학개와 스가랴.
본문내용
인물(대상: 6:15절)로서 분명히 같은 시기에 유다로 돌아왔을 것이다.
2). 공동체의 정신적 위기.
유대인 공동체의 사기가 위태로울 정도로 저하되었다는 것은 학개, 스가랴, 이사야56-66장에 뚜렸이 나타나 있다. 구속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면서(61장) 사람들에게 시온을 위해 끊임없이 애쓰며 기도할 것을 촉구하였고(62장), 또한 바야흐로 나타날 하나님의 새 창조에 관해 말하면서(65:17-25) 현재의 시련은 이를 낳기 위한 진통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파하였다.
실제로 유대인 공동체는 화해하기 어려운 두 무리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선지들의 숭고한 이상에 감동되어 선조들의 신앙과 전통을 고수하고자 한 무리와 대부분 귀환한 포로들과 주변의 이교적 환경에서 많은 것들을 흡수하였기 때문에 그 신앙이 아마 순수한 형태의 여호와 신앙이라고 할 수 없었던 무리-아마 토착 주민의 상당수였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에 비추어 볼 때, 성전의 재건 공사가 진척되지 않은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나의 논지: 존브라이트의 견해와 같은 이해를 한다. 여호와의 신앙을 지키는 것은 바벨론 포로기 시대의 이스라엘인이나 현재의 우리 기독교 신앙인 에게나 유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사정의 절박함이 그들을 힘들게 했을 것이고 포로로 잡혀갔던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만이 남아 있을 것으론 생각하지 않는다. 이방인의 나라에서 많은 세월을 살았기 때문에 자연히 이방인들과의 잡혼으로 이방종교가 그들에게 접해졌을 것이고 그 속에서 자연히 '신앙과 전통을 고수하고자 하는 무리들'과 '이교적 환경에서 많은 것들을 흡수한 무리'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던 현실을 난 공감한다.
3. 성전의 완공.
바벨론에서 포로들이 최초로 돌아온 후 18년이 지났을 때, 세계적 사건들의 변화에 도움을 받아 그들은 정력과 신앙으로 백성들을 분발시켜 성전 재건 공사를 재개하는데 성공하였다.
1). 다리우스 1세의 등극과 이에 따른 소요들,
이 가우미타라는 인물은 캄비세스가 수 년 전에 비밀리에 암살한 바 있던 캄비세스의 동생 비르디야라고 스스로를 밝힌다.
2). 메시아 소망의 약동: 학개와 스가랴.
특히 학개는 여호와의 집은 폐허로 방치해 둔 채 자기들의 집에 안주하고 있는 백성들의 나태함과 무관심함을 공격하였다. 그는 유대인 공동체가 그동안 겪어온 역경의 세월은 바로 그러한 무관심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설명하였다(학1:1-11; 2:15-19).
스가랴의 설교는 상당 부분 신비적인 이상의 형태, 곧 후대에 널리 유행하게 된 묵시문학의 선구자로 볼 수 있는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3). 성취와 실망.
성전 건축은 순조롭게 진척되어 마침내 주전 515년 3월에 성전은 완공되었고 벅찬 기쁨 속에서 봉헌되어다(스6:13-18),
학개와 스사랴에 의해 설파된 소망들은 실현되지는 않았다. 다윗 왕권은 재건돼지 않았고 약속의 시대는 동터오지 않았다. 유대인 공동체는 그 소망이 고양되었다가 이내 꺽여 버리자 무참하게 실의에 빠졌을 것이다.
2). 공동체의 정신적 위기.
유대인 공동체의 사기가 위태로울 정도로 저하되었다는 것은 학개, 스가랴, 이사야56-66장에 뚜렸이 나타나 있다. 구속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면서(61장) 사람들에게 시온을 위해 끊임없이 애쓰며 기도할 것을 촉구하였고(62장), 또한 바야흐로 나타날 하나님의 새 창조에 관해 말하면서(65:17-25) 현재의 시련은 이를 낳기 위한 진통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파하였다.
실제로 유대인 공동체는 화해하기 어려운 두 무리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선지들의 숭고한 이상에 감동되어 선조들의 신앙과 전통을 고수하고자 한 무리와 대부분 귀환한 포로들과 주변의 이교적 환경에서 많은 것들을 흡수하였기 때문에 그 신앙이 아마 순수한 형태의 여호와 신앙이라고 할 수 없었던 무리-아마 토착 주민의 상당수였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에 비추어 볼 때, 성전의 재건 공사가 진척되지 않은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나의 논지: 존브라이트의 견해와 같은 이해를 한다. 여호와의 신앙을 지키는 것은 바벨론 포로기 시대의 이스라엘인이나 현재의 우리 기독교 신앙인 에게나 유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사정의 절박함이 그들을 힘들게 했을 것이고 포로로 잡혀갔던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만이 남아 있을 것으론 생각하지 않는다. 이방인의 나라에서 많은 세월을 살았기 때문에 자연히 이방인들과의 잡혼으로 이방종교가 그들에게 접해졌을 것이고 그 속에서 자연히 '신앙과 전통을 고수하고자 하는 무리들'과 '이교적 환경에서 많은 것들을 흡수한 무리'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던 현실을 난 공감한다.
3. 성전의 완공.
바벨론에서 포로들이 최초로 돌아온 후 18년이 지났을 때, 세계적 사건들의 변화에 도움을 받아 그들은 정력과 신앙으로 백성들을 분발시켜 성전 재건 공사를 재개하는데 성공하였다.
1). 다리우스 1세의 등극과 이에 따른 소요들,
이 가우미타라는 인물은 캄비세스가 수 년 전에 비밀리에 암살한 바 있던 캄비세스의 동생 비르디야라고 스스로를 밝힌다.
2). 메시아 소망의 약동: 학개와 스가랴.
특히 학개는 여호와의 집은 폐허로 방치해 둔 채 자기들의 집에 안주하고 있는 백성들의 나태함과 무관심함을 공격하였다. 그는 유대인 공동체가 그동안 겪어온 역경의 세월은 바로 그러한 무관심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설명하였다(학1:1-11; 2:15-19).
스가랴의 설교는 상당 부분 신비적인 이상의 형태, 곧 후대에 널리 유행하게 된 묵시문학의 선구자로 볼 수 있는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3). 성취와 실망.
성전 건축은 순조롭게 진척되어 마침내 주전 515년 3월에 성전은 완공되었고 벅찬 기쁨 속에서 봉헌되어다(스6:13-18),
학개와 스사랴에 의해 설파된 소망들은 실현되지는 않았다. 다윗 왕권은 재건돼지 않았고 약속의 시대는 동터오지 않았다. 유대인 공동체는 그 소망이 고양되었다가 이내 꺽여 버리자 무참하게 실의에 빠졌을 것이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