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서 론
II. 본론 -미디어의 이해 요약
1.미디어는 메시지다.
2. 뜨거운 미디어와 차가운 미디어
3. 과열된 미디어의 반전
4. 기계 장치 애호가 - ‘나르코시스’로서의 나르시스
5. 혼성 에너지 - 위험한 결합
6. 도전과 붕괴 - 창조성과 보복
7. 문어 - 귀 대신 눈
8. 도로와 종이의 루트
9. 화폐 - 빈 자의 신용 카드
10. 시계 - 시간의 향기
11. 인쇄 -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2. 인쇄된 말 - 내셔널리즘의 건축가
13. 바퀴, 자전거, 비행기
14. 사진 - 벽 없는 매음굴
15. 신문 - 누설(漏泄)에 의한 정치
16. 자동차 - 기계의 신부(新婦)
17. 광고 - 이웃에게 안 지려는 허세
18. 게임 - 인간의 확장
19. 전신 - 사회적 호르몬
20. 타자기 - 철(鐵)의 변덕 시대로
21. 전화 - 울려 퍼지는 금관악기인가, 아니면 따르릉 울리는 상징인가?
22. 라디오 - 원시 부족의 북
23. 텔레비전 - 소심한 거인
24. 자동화 - 생활 배우기
III. 미디어의 이해 독후감
II. 본론 -미디어의 이해 요약
1.미디어는 메시지다.
2. 뜨거운 미디어와 차가운 미디어
3. 과열된 미디어의 반전
4. 기계 장치 애호가 - ‘나르코시스’로서의 나르시스
5. 혼성 에너지 - 위험한 결합
6. 도전과 붕괴 - 창조성과 보복
7. 문어 - 귀 대신 눈
8. 도로와 종이의 루트
9. 화폐 - 빈 자의 신용 카드
10. 시계 - 시간의 향기
11. 인쇄 -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2. 인쇄된 말 - 내셔널리즘의 건축가
13. 바퀴, 자전거, 비행기
14. 사진 - 벽 없는 매음굴
15. 신문 - 누설(漏泄)에 의한 정치
16. 자동차 - 기계의 신부(新婦)
17. 광고 - 이웃에게 안 지려는 허세
18. 게임 - 인간의 확장
19. 전신 - 사회적 호르몬
20. 타자기 - 철(鐵)의 변덕 시대로
21. 전화 - 울려 퍼지는 금관악기인가, 아니면 따르릉 울리는 상징인가?
22. 라디오 - 원시 부족의 북
23. 텔레비전 - 소심한 거인
24. 자동화 - 생활 배우기
III. 미디어의 이해 독후감
본문내용
요한 사실은 표면상으로 개인 대 개인의 사적이고 친근한 직접적인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라디오가 먼 옛날의, 잊혀진 심금을 울리는 마술적 힘을 가진 잠재 의식의 공명실(共鳴室)이라는 것이다.
라디오로 인해 정보의 속도가 빨라졌는데, 이는 다른 미디어를 가속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분명히 라디오는 세계를 촌락 규모로 압축하고, 쑥덕공론, 소문, 개인적인 원한 같은 질리지 않는 촌락적 기호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라디오가 세계를 촌락의 차원으로 압축하긴 하지만 촌락화된 지역을 동질화하는 영향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라디오는 고대의 기억, 힘, 증오를 강력하게 일깨울 뿐만 아니라, 모든 전기적 힘과 미디어의 경우와 같이 분산화, 다원화한다.
23. 텔레비전 - 소심한 거인
텔레비전은 날카로운 개성을 거부하고 완제품보다는 과정을 제공하는 것을 좋아하는 미디어이다. 텔레비전이 뜨거운 문제를 다룰 수 없는 것은 엄청난 정도까지 텔레비전이 시청자를 참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상황에 깊이 관여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견해의 충돌에 관심을 가지는 뜨거운 신문 미디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러한 텔레비전의 행태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히틀러 집권 시대에 텔레비전이 대규모로 보급되었다면, 히틀러는 일찍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히틀러보다 텔레비전이 일찍 등장했더라면, 히틀러는 결코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정치에서 (투표 때 단결하는) 의원 연합 투표 시대는 끝났다. 의원 연합 대신 우리는 포괄적 이미지, 즉 아이콘적 이미지를 가진다. 그리고 하나의 정치적인 견해나 정책 대신 포괄적인 정치 자세 또는 입장을 가진다.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을 가진다. 겉모습에서 역할과 지위가 뚜렷이 드러나는 사람은 텔레비전에 어울리지 않는다. 동시에 여러 가지 전부로 보이는 사람이 텔레비전에 어울린다. 얼굴만 보아도 어떤 인물인지 분명히 분류해 낼 수 있는 닉슨 같은 사람에게는 텔레비전 시청자가 상상력으로 채워 넣을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24. 자동화 - 생활 배우기
교육에서, 그리고 데이터를 정리, 배열하는 데에서 오랫동안 전문화가 강조되어 왔지만, 전기의 힘으로 즉시 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된 현대에는 전문화가 다시 없어지게 된다. 자동화는 정보이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의 세계에서 직능을 없애 버릴 뿐 아니라, 학습의 세계에서 교과목을 없애 버린다. 그러나 그것이 학습의 세계를 없애지는 않는다. 미래의 노동은 자동화 시대의 ‘생활 배우기’를 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자동화로 인해 일반 교양 교육이 꼭 필요해진다. 서보(자동 제어) 기구의 전기 시대는 갑자기 사람들을 앞선 기계 시대의 기계적, 전문가적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킨다. 우리는 그 해방에 대한 대가로, 내부의 자원을 이용해 스스로 고용을 창출해 내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사회에 참여해야 하는 부담스런 위협을 받게 되었다.
III. 미디어의 이해 독후감
저자 마셜 맥루한은 1960년대에 주목을 받기 시작한 캐나다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이다. 그 이론을 바탕으로 역사와 문명의 변화를 설명해 낸 중요한 현대 사상가이기도 하다. 고정관념을 뒤집는 새로운 발상법으로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역사의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을 구축해 냈는데 ‘미디어의 이해’는 그 같은 미디어 결정론의 대표작이다.
1960년대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는 사람을 설득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당연히 메시지의 힘이라고 보았다. 미디어는 그저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용기(用器)일 뿐. 그런데 맥루한은 세상을 바꾸는 것은 메시지가 아닌 미디어의 힘이라고 ‘어이없는’ 주장을 한 것이다. 쇠붙이 같은 물질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미디어가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일까?
맥루한은 기술이 인간 몸의 다양한 기관과 기능의 연장(延長)이라는 지적에서 출발한다. 그 성능을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높여 주고 강화시켜 주는 것이 도구이며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술의 변화는 모든 사회적, 문화적 변동을 이끈다. 기술 중에서도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기술은 인류 사회 변화의 지배적 요인이다. 왜 그런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는 인간의 감각기관의 연장이어서 세상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방법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책은 시각의 연장이요, 라디오는 청각의 연장, TV는 시각과 청각, 그리고 촉각을 동시에 연장시켜 주는 미디어이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지각한다.
그러므로 한 사회 혹은 한 시대가 지배적 의사소통 수단으로 어떤 미디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대상에 대한 지각이나 인식은 달라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생각하는 체계, 사회관계, 문화도 바뀌게 된다.
예컨대 TV라는 전자 매체는 거의 모든 감각기관의 연장이어서 시각 위주였던 문자시대의 과도한 분석적 사고, 개인주의, 합리주의의 병폐에서 벗어나 총체적인 사고능력을 가진 균형 잡힌 인간형으로 유도한다.
게다가 우리의 감각기관을 즉각적인 주변 환경만이 아니라 전 세계, 우주 공간의 구석구석까지 연장시켜 주어 지구 차원의 연대의식이 가능한 지구촌 사회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미디어는 메시지이다.
TV 이후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 DVD, DMB, MP3 등 새로운 미디어는 과연 우리 자신과 역사와 문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 ‘미디어의 이해’에 이어서 맥루한의 사후에 발표된 ‘미디어의 법칙’이라는 책을 읽으면 그 답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 책의 핵심은 다음의 4가지 문제 풀이이다.
새 미디어가 확장시켜 주는 것은 무엇인가?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회복시켜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의 사용이 고도화되어 한계에 달할 때 어떤 반전의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게 될 것인가?
이 두 책의 도움으로 새로운 미디어를 대입시켜 문제 풀이를 해 본다면 아마도 21세기가 어떤 역사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 맥루한 식으로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미디어의 이해는 현재 진행형이라 생각한다.
라디오로 인해 정보의 속도가 빨라졌는데, 이는 다른 미디어를 가속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분명히 라디오는 세계를 촌락 규모로 압축하고, 쑥덕공론, 소문, 개인적인 원한 같은 질리지 않는 촌락적 기호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라디오가 세계를 촌락의 차원으로 압축하긴 하지만 촌락화된 지역을 동질화하는 영향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라디오는 고대의 기억, 힘, 증오를 강력하게 일깨울 뿐만 아니라, 모든 전기적 힘과 미디어의 경우와 같이 분산화, 다원화한다.
23. 텔레비전 - 소심한 거인
텔레비전은 날카로운 개성을 거부하고 완제품보다는 과정을 제공하는 것을 좋아하는 미디어이다. 텔레비전이 뜨거운 문제를 다룰 수 없는 것은 엄청난 정도까지 텔레비전이 시청자를 참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상황에 깊이 관여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견해의 충돌에 관심을 가지는 뜨거운 신문 미디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러한 텔레비전의 행태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히틀러 집권 시대에 텔레비전이 대규모로 보급되었다면, 히틀러는 일찍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히틀러보다 텔레비전이 일찍 등장했더라면, 히틀러는 결코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정치에서 (투표 때 단결하는) 의원 연합 투표 시대는 끝났다. 의원 연합 대신 우리는 포괄적 이미지, 즉 아이콘적 이미지를 가진다. 그리고 하나의 정치적인 견해나 정책 대신 포괄적인 정치 자세 또는 입장을 가진다.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을 가진다. 겉모습에서 역할과 지위가 뚜렷이 드러나는 사람은 텔레비전에 어울리지 않는다. 동시에 여러 가지 전부로 보이는 사람이 텔레비전에 어울린다. 얼굴만 보아도 어떤 인물인지 분명히 분류해 낼 수 있는 닉슨 같은 사람에게는 텔레비전 시청자가 상상력으로 채워 넣을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24. 자동화 - 생활 배우기
교육에서, 그리고 데이터를 정리, 배열하는 데에서 오랫동안 전문화가 강조되어 왔지만, 전기의 힘으로 즉시 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된 현대에는 전문화가 다시 없어지게 된다. 자동화는 정보이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의 세계에서 직능을 없애 버릴 뿐 아니라, 학습의 세계에서 교과목을 없애 버린다. 그러나 그것이 학습의 세계를 없애지는 않는다. 미래의 노동은 자동화 시대의 ‘생활 배우기’를 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자동화로 인해 일반 교양 교육이 꼭 필요해진다. 서보(자동 제어) 기구의 전기 시대는 갑자기 사람들을 앞선 기계 시대의 기계적, 전문가적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킨다. 우리는 그 해방에 대한 대가로, 내부의 자원을 이용해 스스로 고용을 창출해 내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사회에 참여해야 하는 부담스런 위협을 받게 되었다.
III. 미디어의 이해 독후감
저자 마셜 맥루한은 1960년대에 주목을 받기 시작한 캐나다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이다. 그 이론을 바탕으로 역사와 문명의 변화를 설명해 낸 중요한 현대 사상가이기도 하다. 고정관념을 뒤집는 새로운 발상법으로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역사의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을 구축해 냈는데 ‘미디어의 이해’는 그 같은 미디어 결정론의 대표작이다.
1960년대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는 사람을 설득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당연히 메시지의 힘이라고 보았다. 미디어는 그저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용기(用器)일 뿐. 그런데 맥루한은 세상을 바꾸는 것은 메시지가 아닌 미디어의 힘이라고 ‘어이없는’ 주장을 한 것이다. 쇠붙이 같은 물질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미디어가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일까?
맥루한은 기술이 인간 몸의 다양한 기관과 기능의 연장(延長)이라는 지적에서 출발한다. 그 성능을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높여 주고 강화시켜 주는 것이 도구이며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술의 변화는 모든 사회적, 문화적 변동을 이끈다. 기술 중에서도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기술은 인류 사회 변화의 지배적 요인이다. 왜 그런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는 인간의 감각기관의 연장이어서 세상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방법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책은 시각의 연장이요, 라디오는 청각의 연장, TV는 시각과 청각, 그리고 촉각을 동시에 연장시켜 주는 미디어이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지각한다.
그러므로 한 사회 혹은 한 시대가 지배적 의사소통 수단으로 어떤 미디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대상에 대한 지각이나 인식은 달라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생각하는 체계, 사회관계, 문화도 바뀌게 된다.
예컨대 TV라는 전자 매체는 거의 모든 감각기관의 연장이어서 시각 위주였던 문자시대의 과도한 분석적 사고, 개인주의, 합리주의의 병폐에서 벗어나 총체적인 사고능력을 가진 균형 잡힌 인간형으로 유도한다.
게다가 우리의 감각기관을 즉각적인 주변 환경만이 아니라 전 세계, 우주 공간의 구석구석까지 연장시켜 주어 지구 차원의 연대의식이 가능한 지구촌 사회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미디어는 메시지이다.
TV 이후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 DVD, DMB, MP3 등 새로운 미디어는 과연 우리 자신과 역사와 문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 ‘미디어의 이해’에 이어서 맥루한의 사후에 발표된 ‘미디어의 법칙’이라는 책을 읽으면 그 답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 책의 핵심은 다음의 4가지 문제 풀이이다.
새 미디어가 확장시켜 주는 것은 무엇인가?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회복시켜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의 사용이 고도화되어 한계에 달할 때 어떤 반전의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게 될 것인가?
이 두 책의 도움으로 새로운 미디어를 대입시켜 문제 풀이를 해 본다면 아마도 21세기가 어떤 역사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 맥루한 식으로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미디어의 이해는 현재 진행형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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