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과 언약(행위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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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에덴동산과 언약(행위언약)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에덴동산과 언약(행위언약)

본문내용

속에 이 약속은 함축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살지 못하는 것은 죽는 것이요, 죽지 않는 것은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약속된 생명은 경고된 죽음과 짝을 이룹니다. "먹는 날에는 정령 죽으리라"(창2:17)는 경고 속에 나타나는 죽음의 개념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 부터 분리되는 영적 죽음을 의미할 뿐 아니라,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육신의 죽음도 내포합니다. 그 뿐 아니라 죽음은 전인에 대한 영원한 형벌로서의 영원한 사망에서 그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사망과 대조를 이루는 생명의 약속에서 그 생명도 단지 인간의 자연적 존재가 지속되는 것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끝없는 복과 영광의 최상상태까지 올려지리라는 약속입니다. 아담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도덕적 중립의 상태로 지음받은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거룩하고 의롭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지음받은 원래의 상태는 선하였고, 아직 사망의 법칙에 메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지는 못하였었습니다.
3. 언약의 조건 - 순종
약속된 생명을 얻는 일은 조건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조건에 대한 순종은 무조건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다만 완전한 순종이 요구될 뿐입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말라는 명령은 순전히 인간에 대한 순종의 시험이었습니다. 선악과 자체가 도덕적으로 선하다든지 악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뜻에 조건 없이 순종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을 시험하는 일에 관심의 촛점이 놓여 있습니다.
인간은 이 명령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명령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통찰력을 따라 행할 것인가? 순간적인 선택은 영원한 운명은 결정합니다.
행위언약에 있어서 조건으로서의 순종이 영구적으로 요구된 것인가? 아니면 일정한 시련의 기간 동안에만 국한된 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물론 율법이 요구하는 순종은 영구적입니다. 그러나 영생의 조건으로서 행위언약에서 요구된 순종은 시련의 기간 동안 국한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만일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의 명령에 신실하게 순종하였다면, 인생은 완전한 상태로 고정되어 다시는 타락의 위험에 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4. 언약의 형벌 - 사망
불순종할 경우 예시된 형벌은 분명히 육신적 죽음(전12:7)과 영적인 죽음(마8:22,엡2:1,딤전5:6,계3:1) 그리고 영원한 죽음(계20:6-14)을 내포하는 넓은 의미의 사망이었습니다. 성경에 사망이란 말이 범죄의 결과로 사용될 때 그 의미하는 바는 매우 넓습니다. 형벌로 말미암아 인간이 당하는 모든 수난의 비참한 상태와 모든 악을 내포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의 근본 개념은 단순히 인간 존재가 멸절되는 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근본되신 하나님으로 부터 분리되는 것과 그로 말미암아 초래되는 모든 비참함과 괴로움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없는 상태를 죽음으로 묘사합니다(계3:1, 엡2:1-5, 롬6:13, 11:15, 요5:24, 6:47).
5. 언약의 증표 - 생명나무
하나님은 자신의 신실하심을 드러내는 증거로서 표적을 세우십니다. 무지개는 노아와 맺으신 언약의 상징이었고(창9:12-13), 할례는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증표였습니다(창17:9-11, 롬4:11). 그러면 행위언약의 증표는 과연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 그리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두개나 세개 혹은 그 이상의 상징들을 말하고 있으나 가장 보편적인 견해에 의하면 생명나무가 그 유일한 증표였다고 합니다.
이 견해는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생명나무를 행위언약의 증표로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생명의 유형적인 표상이기 때문입니다(창2:9, 3:22,24, 계2:7,22:2-14). 생명은 행위언약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생명은 회복됩니다(롬5:14, 고전15:22,45). 이와 같이 생명나무는 생명의 상징이요, 행위언약의 보증이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는 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생명나무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생명나무의 실과 그 자체가 생명을 부여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나무 자체가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특별히 칼빈은 두번째 견해를 지지하면서 생명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합니다. 아담은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께만 달려있음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을 때 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칼빈의 해석은 결국 생명나무 자체는 단지 외형적인 상징 뿐이요, 그 자체가 영생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입니다. 이와 같은 해석에 여러 신학자들이 동의합니다.
결국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써 생명을 얻는 일은 마치 오늘날 신자들이 성찬에 참여함으로 은혜를 받아 누리는 것과 유사한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자마자 생명나무로 부터 격리(창3:22-24)된 사실은 오늘날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성찬으로 부터 격리되는 것(고전11:17-34)과 같은 원리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자가 단지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영생을 얻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생명나무 실과에 대해 우리는 그 자체 속에 어떤 마술적인 효능이 내재해 있는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어거스틴과 칼빈을 비롯한 여러 신학자들은 생명나무를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으로보았습니다. 사실 계시록 22장의 생명나무는 창세기 3장의 생명나무와 사상적으로 연결됩니다. 아담이 행위언약을 어기고 실패한 후 그리스도는 그를 대신하여 행위언약을 지켜 주심으로써 인생에게 영생이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생명나무는 영생을 제공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이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영생은 그리스도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만일 분리될 수 있다면 그리스도 밖에도 영생이 있다는 의미가 되고 말며 이는 결국 성경의 교훈과 상충됩니다.

키워드

에덴,   언약,   행위
  • 가격2,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9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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