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채식주의와 열역학
본문내용
지만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기아 지역의 사람들은 경제학적으로 '수요'가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아 지역의 현지 농민들도 외국으로부터 곡물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한국 농민 계층만 하더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수입되는 외국 농산물에 대한 경각심이 심한데, 아예 무료로 곡식이 들어온다면 어떤 농민이 찬성하겠는가? 아이티의 농업이 막장이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빈곤 문제에는 단순히 경제적인 수요와 공급만이 아니라, 치안문제나 정치적 불안을 비릇한 그 밖의 많은 원인이 있다. 예를 들어 내전 등으로 인해 치안이 극도로 불안정해진 지역은 유통망이 완전히 단절되서 외부에서 잉여 곡물을 보낼수 없게 되버린다. 설사 그 지역에 재화가 있다고 해도, 극도의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식량을 수송할 사람은 매우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채식주의가 빈곤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굶어죽는 불쌍한 사람을 구하고 싶다면 기부나 자원봉사 활동, 평화유지 활동을 통해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구조를 할 필요가 있다.
5.5공격적 채식주의 #
채식주의를 이념화하여 교조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채식주의는 무조건 옳다는 태도가 그것이다. 건강상의 이유보다 윤리적 이유에서 채식주의를 행하는 사람에게서 주로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채식주의를 옹호하고 퍼트리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한다. 인간은 채식을 하도록 진화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채식이 좋다거나 육식이 좋지 않다는 연구나 주장이 나오기만 하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검증되었는지, 엄밀한 과학적 연구인지와 상관없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면 그것을 옳은 이론(또는 좋은 이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연구들은 깔끔하게 무시하는 것은 기본.
심하면 밖에서 보기에 종교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종교 지도자인 석가, 예수 등의 성인과 채식주의를 했던 유명인들을 열거하며 채식을 옹호하기도 하는데 반대로 육식을 한 성인과 유명인은 더 많이 댈 수 있다. 심지어 그들은 육식이 사람을 공격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행동을 보면 오히려 채식이 더 공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반론: 이것은 사실 채식주의가 옳거나 나쁘거나 하는 문제를 이미 떠나 있다. 이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가치관의 충돌과, 그 충돌을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모든 가치관 충돌에는 항상 이렇게 공격적인 집단이 발생한다. 종교도 그렇고, 스포츠도 그렇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에 짜증이 난 사람들이 '공격적 반채식주의자'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에게만 유리한 연구결과들을 취합하여 채식주의를 공격하게 되는데, 이 때 제시하는 여러 의견들은 열이면 열 선의의 채식주의자까지 가리지 않고 무참히 공격하여 피해를 입히기 마련이다.
공격적 채식주의자같은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행동들이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거부감을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자신이 따르는 가치관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면 그것은 도그마가 된다. 채식주의는 하나의 가치관이고 식습관의 한 종류일 뿐이다. 채식주의가 육식(잡식)보다 더 우월한 무언가가 될 수는 없다. 제레미 리프킨이 쓴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이런 채식주의자들의 주장이 어떤건지 자세히 알 수 있으니 참고해보면 좋다(채식주의자들이 떠받드는 책 중 하나다). 같은 저자가 쓴 엔트로피와 마찬가지로 비판적으로 읽는다면 나쁘지 않다.
또한 실제로 채식주의자를 남에게 권하고 싶은 사람들도 자신의 의견이 남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자기과시적이거나 설교적인 태도를 최대한 배제하면서 다가가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기아 지역의 현지 농민들도 외국으로부터 곡물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한국 농민 계층만 하더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수입되는 외국 농산물에 대한 경각심이 심한데, 아예 무료로 곡식이 들어온다면 어떤 농민이 찬성하겠는가? 아이티의 농업이 막장이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빈곤 문제에는 단순히 경제적인 수요와 공급만이 아니라, 치안문제나 정치적 불안을 비릇한 그 밖의 많은 원인이 있다. 예를 들어 내전 등으로 인해 치안이 극도로 불안정해진 지역은 유통망이 완전히 단절되서 외부에서 잉여 곡물을 보낼수 없게 되버린다. 설사 그 지역에 재화가 있다고 해도, 극도의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식량을 수송할 사람은 매우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채식주의가 빈곤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굶어죽는 불쌍한 사람을 구하고 싶다면 기부나 자원봉사 활동, 평화유지 활동을 통해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구조를 할 필요가 있다.
5.5공격적 채식주의 #
채식주의를 이념화하여 교조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채식주의는 무조건 옳다는 태도가 그것이다. 건강상의 이유보다 윤리적 이유에서 채식주의를 행하는 사람에게서 주로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채식주의를 옹호하고 퍼트리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한다. 인간은 채식을 하도록 진화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채식이 좋다거나 육식이 좋지 않다는 연구나 주장이 나오기만 하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검증되었는지, 엄밀한 과학적 연구인지와 상관없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면 그것을 옳은 이론(또는 좋은 이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연구들은 깔끔하게 무시하는 것은 기본.
심하면 밖에서 보기에 종교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종교 지도자인 석가, 예수 등의 성인과 채식주의를 했던 유명인들을 열거하며 채식을 옹호하기도 하는데 반대로 육식을 한 성인과 유명인은 더 많이 댈 수 있다. 심지어 그들은 육식이 사람을 공격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행동을 보면 오히려 채식이 더 공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반론: 이것은 사실 채식주의가 옳거나 나쁘거나 하는 문제를 이미 떠나 있다. 이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가치관의 충돌과, 그 충돌을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모든 가치관 충돌에는 항상 이렇게 공격적인 집단이 발생한다. 종교도 그렇고, 스포츠도 그렇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에 짜증이 난 사람들이 '공격적 반채식주의자'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에게만 유리한 연구결과들을 취합하여 채식주의를 공격하게 되는데, 이 때 제시하는 여러 의견들은 열이면 열 선의의 채식주의자까지 가리지 않고 무참히 공격하여 피해를 입히기 마련이다.
공격적 채식주의자같은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행동들이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거부감을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자신이 따르는 가치관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면 그것은 도그마가 된다. 채식주의는 하나의 가치관이고 식습관의 한 종류일 뿐이다. 채식주의가 육식(잡식)보다 더 우월한 무언가가 될 수는 없다. 제레미 리프킨이 쓴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이런 채식주의자들의 주장이 어떤건지 자세히 알 수 있으니 참고해보면 좋다(채식주의자들이 떠받드는 책 중 하나다). 같은 저자가 쓴 엔트로피와 마찬가지로 비판적으로 읽는다면 나쁘지 않다.
또한 실제로 채식주의자를 남에게 권하고 싶은 사람들도 자신의 의견이 남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자기과시적이거나 설교적인 태도를 최대한 배제하면서 다가가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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