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논어,맹자에서 나오는 유교적인 삶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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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학,논어,맹자에서 나오는 유교적인 삶이란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에 의하면 그가 정형화한 천리(天理)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주희 철학의 보수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의 철학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이 자연을 바꾸어 나가는 진보적 역사철학의 자리는 있을 수 없다. 오직 하나의 교의(敎義)에 갇혀진 주관적 심리적 궁리(窮理)만이 허용될 뿐이다. 따라서 유교의 윤리론, 특히 주희의 도덕형이상학이 현대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현대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며, 동시에 그에 따른 새로운 천리(天理)의 내용 제시가 요구된다.
바로 이점에서 우리는 유교의 공동체적인 맥락 안에서 덕의 윤리, 또는 그것의 형이상학적 기반으로서의 ‘유기체적’ 도덕형이상학이 과연 -- 타인으로부터의 간섭이나 제제로부터 -- 해방하려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을 요구하는 자유주의의 강한 요구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에 대하여 반드시 진지하게 성찰해야만 한다.
17세기이래 홉스나 록크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에 의하면, 국가성립 이전의 자연상태에서는 -- “인간은 다른 인간에 대하여 (서로 갈취하는) 늑대”(homo homini lupus)라는 홉스의 말처럼 -- 개인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을 받는 극단적인 위기의 상태로 상정되었다. 따라서 독립적인 개개인들의 생명과 자유를 -- 이기적이고 적대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 타인들로부터 보장받기 위하여, 사회계약의 체결을 통한 ‘국가’라는 정치적 제도가 요청된다고 그들은 주장하였다. 요컨대, 국가나 사회의 기능은, 내가 타인을 해치지 않는 한, 나는 나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자율성과 권리의 확보를 마련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인이 만인에 대한 경쟁관계에서 --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 개개인들의 최대의 자율성을 보장받는 ‘권리’의 획득이 자유주의적인 개인주의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런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서로 경쟁관계에 서있는 개인들에게 있어서 개인의 이해관계는 언제나 사회의 그것보다 우선하는 것이요, 사회조직의 필요는 항상 개인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실천해내려는 합리적인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유교의 유기체적인 세계관에서는 -- 일찍이 데카르트가 공표했던 것처럼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같은 -- ‘추상적’이고 ‘원자적’(atomistic)인 인간존재는 있을 수가 없다. 일찍이 순자(荀子, 기원전 약 300-230)가 정의한 것처럼, 유교적인 세계관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의 의지에 따라서 사회형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천부적으로 사회적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물과 불은 기(氣)는 있어도 생명은 없고, 풀과 나무는 생명은 있어도 지각능력은 없고, 금수는 지각능력은 있어도 사회적 의(義)를 모른다. 사람은 기도 있고 생명도 있고 지각 능력도 있고, 또한 사회적 의도 가지고 있으므로 천하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이다. (그들 은) 힘이 소처럼 강하지도 못하고, 달리는 것이 말과도 같지 못하지만 소나 말이 사람 의 부림을 받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것은 사람은 모여서 ‘사회’(群)를 이루지만, 소와 말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떻게 사회를 이룰 수 있는가? 그것은 ‘분업’(分) 이 있기 때문이다.” 荀子, 王制편 참조.
이와 같이, 유교적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 바로 타인과의 사회분업적인 인간관계 속에 규정되기 때문에, 이런 사회적공동체적 맥락에서 일탈하여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서구적인 근대의 자유주의적인 인간관은 유교적 문화의식의 틀 속에서는 수용될 여지가 없다. 개개인들은 사회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각기 주어진 자기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해야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교적 윤리관에서는, 하나의 유기체적인 공동체 안에서의 ‘공공의 선’을 실현해내기 위하여, 언제나 개인적인 ‘사심’의 극복을 말하는 ‘덕’의 윤리가 높은 평가를 받는다. 요컨대, 근대적인 자유주의에서는 외부로부터의 간섭이나 침탈에 대응하려는 개인의 주체적 자율성과 권리의 제도적인 보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유교적 윤리에서는 언제나 자기 심리 안에서 한편 ‘저급한 욕구’를 따르려는 자기의 ‘사적’인 의지(즉 人心)와 ‘공공선’을 추구하려는 ‘고급 의지’(즉 道心) 사이의 갈등과 간극을 없애려는 정신적도덕적 해방이 자기 인격 완성의 최종 목표인 것이다.
이제 최고의 과학기술의 집약과 자본의 집중에 의하여 무자비하게 관철되어져 나갈 '세계화’ 체제의 실현과 발전은 오직 기술과 자본의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유지를 추구하는 끊임없는 맹목적인 무한경쟁 자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무한 경쟁의 결과는 전 인류를 한편 승리하는 소수(20%)의 지배적인 엘리트 그룹(또는 집단)들과 또 다른 한편 경쟁에서 밀려난 다수(80%)의 소외계층이라는 두 계층으로의 이분화의 심화를 의미한다. Martin/Schumann, 앞의 책, 28 쪽 참조.
그리고 동시에 ‘세계화’ 체제의 강화는 필연적으로 민족국가들의 주체적 대응역할과 능력을 상대적으로 무력화시켜나갈 것이다. 이런 엄청난 시대적 격변 속에서 우리들이 지향해야할 ‘문화적 정체성’의 지평은 과연 무엇이 되어야할 것인가? 개개인들의 경쟁적 관계에서 --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 방어적인 자유주의적인 개인주의의 실현이 우리의 동아시아의 유교적 전통을 지닌 국가들이 여전히 전력을 쏟아서 추구해 나가야할 아직도 유효한 ‘근대화-현대화’의 길인가? 아니면 우리들의 의식 속에 관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유교적 윤리론의 비판적인 계승이 우리들이 추구해야할 새로운 대안의 길인가? 만약 우리가 후자의 길을 선택한다면, 개개인들이 ‘사심’을 극복하고 ‘공공선’을 추구해내려는 높은 도덕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평등한 권리와 자유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투명한 민주주의적 제도가 실현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공론’의 사회적제도적 보장이 밑받침되지 않는 ‘온정주의적인’(paternalistic) 공동체주의는 언제나 ‘패거리주의’(cronyism)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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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5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03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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