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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중세의 찬송
2. 암브로시우스 성가 (Ambrosian Chant)
3. 그레고리안 성가 (Gregorian Chant)
4.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음악
5. 코랄
6. 종교적 예술음악
7. 모테트(motet)
8. 칸타타(cantata)
9. 오라토리오(oratorio)
10. 수난곡 (passion)
11. 가톨릭 교회 음악 이야기 (4 ~ 18세기)
2. 암브로시우스 성가 (Ambrosian Chant)
3. 그레고리안 성가 (Gregorian Chant)
4.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음악
5. 코랄
6. 종교적 예술음악
7. 모테트(motet)
8. 칸타타(cantata)
9. 오라토리오(oratorio)
10. 수난곡 (passion)
11. 가톨릭 교회 음악 이야기 (4 ~ 18세기)
본문내용
용어를 사용하지 아니 했다. 그것은 그가 독일인이 아니어서거나 또는 개신교적 발상인 코랄에 대한 의식적 거부였을 것으로 생각 된다. 그러나 비발디가 실제로 그의 작품 오라토리오 ‘Lauda Israel’ 과 ‘Beatus Vir’등에서 코랄의 형태에 접근하는 간결한 형식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비발디는 확실히 이태리의 바로크 음악을 고전 악파로 연결 짓는 중요한 위업을 이룩 하였으며 동시대의 바하와 핸델 등에게 협주 양식, 조성 전개 및 대위법적 방법 등 다양한 면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15. 요한 세바스챤 바하
독일 아이제나하에서 태어난 오르가니스트 작곡가 요한 세바스챤 바하(Johann Sebastian Bach ; 1685 - 1750)는 대부분의 생애를 루터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봉직했다. 그는 마니피캇(Magnificat), 성 요한 수난곡(St. John Passion), 성 마태오 수난곡(St. Mathew Passion), 성탄 오라토리오(Christmas Oratorio), 나 단조 미사곡(Mass in b minor), 198 곡의 교회 칸타타 등을 위시하여 400 여 곡이 넘는 세속 음악 작품들을 남겼으니 도합 600 여곡의 다작을 기록 했다. 198 여 곡에이르는 그의 성음악곡들의 대부분에 가장 많이 다루어진 형식은 코랄이었다. 바하는 그 안에 르네쌍스에서 바로크에 이르는 모든 기술이 조화된 종합적 기법으로 시대를 초월한 거대한 형상을 그려내는 창작 세계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용광로와 같은 것이어서 각기 이질적 특징을 가진 여러 시대, 다국적 기법들이 바하가 구사하는 마술의 손에 의해 하나의 질서 안에 잘 정돈 된 상태라고 표현 해 마땅할 것이다. 그래서 바하의 성음악 작품들은 비록 그가 개신교 작곡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전레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예술성을 지녔다고 생각 된다. 따라서 그의 음악은 점차로 가톨릭 성음악의 한 영역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16.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핸델
바로크 말기에 형성된 또 하나의 중요한 흐름은 영국을 무대로 하여 등장 했다. 그 주인공은 독일인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핸델(Georg Friedrich Handel 또는 영국명으로 George Frideric Handel ; 1685 - 1759)이었다. 할레 태생의 핸델은 처음에 법학에 투신 했으나 후에 시작한 음악에 더 매력을 느껴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이태리의 베니스에 유학하여 오페라, 오라토리오, 협주곡 및 실내악곡 등에 대한 견문을 넓혀 자신의 창작력을 굳건히 다졌다. 핸델의 창작 생활은 1710 년에 독일의 하노버 대성당에서 음악 감독을 맡으면서 그 막을 올리게 되었다. 그는 같은 해에 그곳에서 런던을 위한 오페라 ‘리날도’의 작곡을 의뢰 받아 이듬해인 1711 년에 완성하여 발표 함으로서 최초의 대성공을 걷우였다. 1712 년에 핸델은 아무런 의사 표시도 없이 하노버를 떠나 런던으로 건너 갔다. 런던에서 핸델의 활동상은 실로 눈 부신 것이었다. 그는 1712 - 1717 년에 걸쳐 해마다 셰익스피어 등 대문호의 희극을 오페라로 작곡, 발표 하여 연달아 크게 성공을 걷움으로서 죠지 I 세와 앤 여왕 등 황실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핸델에게 지급되는 급료는 날로 향상되어 그의 귀국행을 가로 막았고 그를 런던에 영주 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독일 태생의 영국 작곡가가 되었으며 이름 마저도 영국식 표기를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1717 - 1720 년 사이에 영국 황실은 핸델이 이태리어 대신 영어로 된 리블렛또에 작곡 할 것을 요청하여 그의 런던 생활을 자연스럽게 연장 시켰다.
핸델은 주로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등 극적 요소가 담긴 작품들을 많이 작곡하여 ;
1) ‘쥴리오 체사레’, ‘세르세’ 등 40 여 개의 오페라
2) ‘메씨아’,‘에짚트의 이스라엘인’,‘삼손’,’ 아치스와 갈라테아’ 등 30 여 개의 오라토리오
3) ‘성 요한’등 2 개의 수난곡
4) 수 십 편의 합창곡, 10 여 편의 성곡
5) 6 개의 각종 악기를 위한 협주곡
7) ‘수상 음악’등 십 여 개의 관현악곡
8) 그리고 10 여 개가 넘는 다양한 구성으로 된 실내악곡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남겼다.
17. 바로크 음악의 절정과 최후
안또니오 비발디를 요한 쎄바스찬 바하, 게오르그 피리드리히 핸델 등 동시대의 거장들과 비교해 보기로 한다. 바하와 핸델은 비발디 보다 3 년 앞서 1675 년에 같은 해에 태어 났으며 각 각 9 년과 18 년 이후에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각기 독일, 영국, 이태리에서 일가를 이루어 바로크 음악의 절정을 장식한 마지막 주자들이었다. 바하는 인간의 심성을 토대로, 핸델은 인간의 영혼을 달래면서, 그리고 비발디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 하면서 서로 다른 장르의 양식 즉 칸타타, 오라토리오와 오페라 등을 완성 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비발디의 경우는 다른 관점으로 조명되어 마땅하다. 그것은 이들 보다 약 한 세기 반 이전에 후기 르네쌍스 시대의 베니스 악파를 확립했던 기라성 같은 작곡가군 즉 아드리안 빌에르트, 안드레아 가브리엘리, 죠반니 가브리엘리, 하인리히 슛쯔츠 등의 위업이 비발디 음악의 근저에 큰 뿌리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블 코러스(복합창) 또는 더블 오케스트라의 편성에 의한 콘체르타토 스타일(협주양식), 그리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산울림 효과가 바로 그것이었다. 비발디는 이 기법에 잠재 해 있는 호모포니적(화성음악적) 가능성을 최대로 도출 해 냄으로서 조성 음악의 기틀을 확고하게 마련 하였고 콘체르타토 스타일의 전개 방식도 형식적 구조를 완성하여 표현의 명료성을 한 층 더 부각 시킴으로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러한 비발디의 작곡 기법은 콘체르토 그롯소의 형식 구성면에서 바하에게, 소박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대위법의 구사면에서 핸델에게 그리고 대부분의 후기 바로크 작곡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하여 이들 세작곡가들의 위업은 바로크를 완성하고 목전에 고전파의 출현이 박두한 시점에 그 생애를 마쳤던 것이다.
15. 요한 세바스챤 바하
독일 아이제나하에서 태어난 오르가니스트 작곡가 요한 세바스챤 바하(Johann Sebastian Bach ; 1685 - 1750)는 대부분의 생애를 루터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봉직했다. 그는 마니피캇(Magnificat), 성 요한 수난곡(St. John Passion), 성 마태오 수난곡(St. Mathew Passion), 성탄 오라토리오(Christmas Oratorio), 나 단조 미사곡(Mass in b minor), 198 곡의 교회 칸타타 등을 위시하여 400 여 곡이 넘는 세속 음악 작품들을 남겼으니 도합 600 여곡의 다작을 기록 했다. 198 여 곡에이르는 그의 성음악곡들의 대부분에 가장 많이 다루어진 형식은 코랄이었다. 바하는 그 안에 르네쌍스에서 바로크에 이르는 모든 기술이 조화된 종합적 기법으로 시대를 초월한 거대한 형상을 그려내는 창작 세계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용광로와 같은 것이어서 각기 이질적 특징을 가진 여러 시대, 다국적 기법들이 바하가 구사하는 마술의 손에 의해 하나의 질서 안에 잘 정돈 된 상태라고 표현 해 마땅할 것이다. 그래서 바하의 성음악 작품들은 비록 그가 개신교 작곡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전레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예술성을 지녔다고 생각 된다. 따라서 그의 음악은 점차로 가톨릭 성음악의 한 영역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16.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핸델
바로크 말기에 형성된 또 하나의 중요한 흐름은 영국을 무대로 하여 등장 했다. 그 주인공은 독일인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핸델(Georg Friedrich Handel 또는 영국명으로 George Frideric Handel ; 1685 - 1759)이었다. 할레 태생의 핸델은 처음에 법학에 투신 했으나 후에 시작한 음악에 더 매력을 느껴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이태리의 베니스에 유학하여 오페라, 오라토리오, 협주곡 및 실내악곡 등에 대한 견문을 넓혀 자신의 창작력을 굳건히 다졌다. 핸델의 창작 생활은 1710 년에 독일의 하노버 대성당에서 음악 감독을 맡으면서 그 막을 올리게 되었다. 그는 같은 해에 그곳에서 런던을 위한 오페라 ‘리날도’의 작곡을 의뢰 받아 이듬해인 1711 년에 완성하여 발표 함으로서 최초의 대성공을 걷우였다. 1712 년에 핸델은 아무런 의사 표시도 없이 하노버를 떠나 런던으로 건너 갔다. 런던에서 핸델의 활동상은 실로 눈 부신 것이었다. 그는 1712 - 1717 년에 걸쳐 해마다 셰익스피어 등 대문호의 희극을 오페라로 작곡, 발표 하여 연달아 크게 성공을 걷움으로서 죠지 I 세와 앤 여왕 등 황실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핸델에게 지급되는 급료는 날로 향상되어 그의 귀국행을 가로 막았고 그를 런던에 영주 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독일 태생의 영국 작곡가가 되었으며 이름 마저도 영국식 표기를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1717 - 1720 년 사이에 영국 황실은 핸델이 이태리어 대신 영어로 된 리블렛또에 작곡 할 것을 요청하여 그의 런던 생활을 자연스럽게 연장 시켰다.
핸델은 주로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등 극적 요소가 담긴 작품들을 많이 작곡하여 ;
1) ‘쥴리오 체사레’, ‘세르세’ 등 40 여 개의 오페라
2) ‘메씨아’,‘에짚트의 이스라엘인’,‘삼손’,’ 아치스와 갈라테아’ 등 30 여 개의 오라토리오
3) ‘성 요한’등 2 개의 수난곡
4) 수 십 편의 합창곡, 10 여 편의 성곡
5) 6 개의 각종 악기를 위한 협주곡
7) ‘수상 음악’등 십 여 개의 관현악곡
8) 그리고 10 여 개가 넘는 다양한 구성으로 된 실내악곡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남겼다.
17. 바로크 음악의 절정과 최후
안또니오 비발디를 요한 쎄바스찬 바하, 게오르그 피리드리히 핸델 등 동시대의 거장들과 비교해 보기로 한다. 바하와 핸델은 비발디 보다 3 년 앞서 1675 년에 같은 해에 태어 났으며 각 각 9 년과 18 년 이후에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각기 독일, 영국, 이태리에서 일가를 이루어 바로크 음악의 절정을 장식한 마지막 주자들이었다. 바하는 인간의 심성을 토대로, 핸델은 인간의 영혼을 달래면서, 그리고 비발디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 하면서 서로 다른 장르의 양식 즉 칸타타, 오라토리오와 오페라 등을 완성 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비발디의 경우는 다른 관점으로 조명되어 마땅하다. 그것은 이들 보다 약 한 세기 반 이전에 후기 르네쌍스 시대의 베니스 악파를 확립했던 기라성 같은 작곡가군 즉 아드리안 빌에르트, 안드레아 가브리엘리, 죠반니 가브리엘리, 하인리히 슛쯔츠 등의 위업이 비발디 음악의 근저에 큰 뿌리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블 코러스(복합창) 또는 더블 오케스트라의 편성에 의한 콘체르타토 스타일(협주양식), 그리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산울림 효과가 바로 그것이었다. 비발디는 이 기법에 잠재 해 있는 호모포니적(화성음악적) 가능성을 최대로 도출 해 냄으로서 조성 음악의 기틀을 확고하게 마련 하였고 콘체르타토 스타일의 전개 방식도 형식적 구조를 완성하여 표현의 명료성을 한 층 더 부각 시킴으로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러한 비발디의 작곡 기법은 콘체르토 그롯소의 형식 구성면에서 바하에게, 소박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대위법의 구사면에서 핸델에게 그리고 대부분의 후기 바로크 작곡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하여 이들 세작곡가들의 위업은 바로크를 완성하고 목전에 고전파의 출현이 박두한 시점에 그 생애를 마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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