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교회사 상권 요약 김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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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야기교회사 상권 요약 김기홍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배웠고 그리스도의 고난, 죽음, 부활, 승천 등을 보았다. 그들에겐 온 세상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도 주어졌다. 그들이 성령을 받아 예수의 가르침을 설교와 글로 전파했다. 그들은 한마디로 예수의 지상 삶의 연장이었다. 교회의 연합과 행정은 그들의 권위로 이루어졌다.
사도들의 죽음 후 거짓 가르침이 교회를 내부적으로 좀먹어 들어가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단 종파가 기독교 신앙인 양 신자들을 유혹하였다. 어떻게 바른 복음이 이들의 것과 다름을 밝혀 주겠는가? 많은 문제에 사도적인 권위로서 객관적인 진리로 해답이 주어져야 했다. 그 해답은 세 가지의 방법으로 주어졌다.
1) 목회자의 권위, 2) 신약성경의 정경화, 3) 사도신경, 목회자는 사도권을 계승하고 정경은 사도의 글을 그리고 사도신경은 사도의 가르침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것으로 교회는 이단들과 싸우고 박해 속에 단합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교회는 계속해서 성장해 갔다.
삼위일체 논쟁
313년 이후 기독교는 로마제국에서 활개를 펴게 되었다. 전에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모든 불이익을 당하였으나 이제는 기독교인이어야 출세할 가능성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기도교인들의 질도 전과는 달라졌다.
특히 콘스탄틴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달랐다. 예수는 하나님과 완전히 같은 존재인가? 아들이라고 하니까 조금 못한 존재가 아닌가? 하나님과 예수는 서로 생각과 마음이 다르면서 어떻게 하나가 되는가?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논쟁이었고 여러 가지의 주장들이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라는 교리는 여기 나타나는 삼위일체 교리의 형성을 통해서 확언된다.
오랜 논쟁 끝에 니케아 회의는 신앙고백을 만들어 냈다. 삼위일체 논쟁은 한 위대한 신학자를 부각시키게 되었으니 그의 이름은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더 감독이었다. 수행원으로 온 아타나시우스는 비록 젊고 작았지만 통찰력에 있어서 이미 미래의 정통주의 신학자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스승인 알렉산더가 니케아 신조를 바로 만들도록 도와주었고 그의 남은여생을 그것을 옹호하는 데 보냈다. 신학자요 행정가로서 그는 탁월한 인물이었다.
수도원의 이상
수도원 제도는 교회의 기강이 흐려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소도사들은 처음에 세상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고 거기서 피하려고 하였다. 그들의 첫째 목적은 자신의 구원이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전체 신자들을 두 무리로 나누었다. 즉 완전을 갈망하는 무리들과 세상에 타협하는 무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행동은 많은 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거룩한 삶을 실천하려고 무진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수도원의 시작
본래부터 신약성경의 높은 삶의 수준은 성령의 도움으로만 가능한 것임에도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보려고 애를 썼다. 많은 신자들은 청빈한 삶과 금욕, 독신 등의 삶을 오랫동안 존중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한 사람들을 존경하였다. 신약의 이상적인 삶을 동경하는 이들에게는 이 세상의 어떠한 삶도 만족할 수 없었다. 또한 세상에 머물러 살면서는 이러한 삶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수도원이 시작된다. 수도의 방법은 주로 고행이 핵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극단적인 고행자들과는 다르게 공동체를 이루면서 육신을 훈련시키려는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이러한 수도원의 활동들은 비록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국가와 타협하여 세속화된 유럽의 교회에는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교회의 부흥이 일어날 때는 믿음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바치려는 열렬한 신자들이 수도원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이 사회에 영향을 주었고 교회를 변화시켰으며 이들이 복음을 전했고 거룩한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스도 논쟁
그리스도가 사람인가 아닌가? 사람이라면 보통 사람들과 완전히 같은 존재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것을 기독논쟁이라고 부른다. 이 논쟁은 오랜 시간을 끌었다. 그러다가 451년 칼케톤 회의에서 신앙고백이 만들어진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려면 완전한 하나님인 것처럼 또한 완전한 사람이어야만 했다. 이 신조의 뼈대를 잡은 이가 로마의 감독 레오였다.
로마제국의 멸망
476년 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소년 로무루스 아우구스트루스가 야만족의 장군에 의해서 밀려나기까지 로마는 계속적인 전란에 시달리며 서서히 무너져 내려갔다. 유럽전체와 북아프리카, 그리고 소아시아를 흡수해서 금빛 찬란한 대제국을 이룩했던 로마도 하나님이 홀을 옮기자 맥없이 넘어지고 말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통곡 속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지켜보았는가? 그러나 아름다운 로마는 재위에 쓰러졌다. 제국의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물론 서로마제국이 당한 게르만족의 공격이었다.
기독교인들이 한 일
313년 이후 기독교는 믿음의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얼마 못가서 기독교는 국교가 되었다. 그러나 기도교가 국교가 되었어도 나라는 망했다.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타락을 방지하지 못했는가? 하나님께 기도해 나라가 망하는 것을 막지 못했는가?
망해가는 조국 로마를 바라보면서 제롬은 신자들을 향해 울부짖는다. “기독교인들이여 부끄러운 줄을 알라! 온 세상이 잿더미로 변해가는데 우리는 아직도 죄 가운데 있다. 이 난리통에도 우리 마음은 돈 버느라 분주하기만 하다. 내일은 죽을테니 오늘이라도 잘 살자.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좋은 집들을 지었다. 벽들은 금빛으로 번쩍였고 천장 기둥도 모두 금빛으로 찬란했다. 집 앞에 버림받은 인간들을 보면서도 신나게 돈을 모을 동안 그리스도는 그들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결국 기독교인들은 박해받던 시절의 열정과 순수함을 잃었고 세상과 같아져 버렸던 것이다. 기독교가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 반드시 세상이 기독교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로마와 함께 타락해 갔다. 그리고 그들이 가졌던 모든 특권들은 제국이 잿더미에 넘어질 때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 당시 불신자와 신자 사이의 차이점은 단지 교회에 출석하는지 않는지에만 달려있다. 이 점은 오늘날 교인들과 너무나 흡사하다. 로마 말기의 상황과 너무나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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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08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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