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스파르타쿠스반란의 원인
스파르타쿠스반란의 경과
스파르타쿠스반란의 결과
스파르타쿠스반란의 역사적교훈
스파르타쿠스반란의 경과
스파르타쿠스반란의 결과
스파르타쿠스반란의 역사적교훈
본문내용
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을 끌어들이고 받아들이는 포용력은 갖고 있지만, 정작 그들을 이끄는 상황에서는 의견을 하나로 묶지 못하여 세력을 둘로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진로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만다.
결국, 그는 애초의 목적이었던 고향으로 향하지만, 고향을 눈앞에 두고는 포기하는 우유부단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리저리 헤매다가 다시 남쪽에 이르러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군사적 지휘관으로서 그는 보통 정도의 수준은 된다고 여겨지지만, 역시 대단한 실력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가 상대한 적수는 대단한 군사적 역량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로마군의 주력이라고 하기도 어려웠고, 대개 노예 군은 수적으로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전술적으로 유리한 입장을 끌어내는 것도 지휘관의 역량에 따른 일이겠지만, 그러한 상황은 그가 원해서…. 그가 추구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러한 상황은 로마 측의 방심과 더불어, 천운이 따라 주었기 때문이다. 군사 지휘관으로서 그는 제대로 된 적수와 맞서지 못했다. 영화 속에서 시종일관 적수처럼 보이는 크라수스는 솔직히 장군이라고 부르기에 부끄러운 인물…. 로마군의 패전에 더 이바지할 만한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당시 노예 군의 상황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토벌군으로 파견된 로마군도 경험이 없는 예비역에 지나지 않았지만, 노예 군은 그 이상으로 군대에 대해서 잘 몰랐을 테니까…. 하지만, 오랜 경험은 노예 군을 단련시켜 주었을 것이다. 정예는 아니라고 해도 로마의 군대와 대결하여 승리한 경험은 그들을 이미 상당한 수준의 전사로 바꾸어 주었음이 틀림없다. 사실상, 크라수스와의 대결에서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군은 경험 없는 로마의 군단에 비해서 더욱 강인한 군대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바보 같은 지휘관이 이끄는 경험 없는 군대와의 대결에서 스스로 나서서 패한 이상, 우수한 전술적 역량을 가졌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만일, 이 사건이 조금 더 늦게, 혹은 조금 일찍 벌어졌더라면 어떨까? 이를테면, 불과 1년 뒤, 세르토리우스 전쟁이 종결된 72년에 벌어졌다면 말이다. 그랬다면, 에스파냐에 출정했던 로마의 정예군과 '위대한(마그누스)' 폼페이우스가 복귀할 것이고, 그만큼 천재적인 전술가는 아니지만 역시 유능한 지휘관인 메텔루스 피우스를 비롯한 유능한 장군들이 복귀하여 이 사건에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애초의 목적이었던 고향으로 향하지만, 고향을 눈앞에 두고는 포기하는 우유부단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리저리 헤매다가 다시 남쪽에 이르러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군사적 지휘관으로서 그는 보통 정도의 수준은 된다고 여겨지지만, 역시 대단한 실력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가 상대한 적수는 대단한 군사적 역량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로마군의 주력이라고 하기도 어려웠고, 대개 노예 군은 수적으로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전술적으로 유리한 입장을 끌어내는 것도 지휘관의 역량에 따른 일이겠지만, 그러한 상황은 그가 원해서…. 그가 추구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러한 상황은 로마 측의 방심과 더불어, 천운이 따라 주었기 때문이다. 군사 지휘관으로서 그는 제대로 된 적수와 맞서지 못했다. 영화 속에서 시종일관 적수처럼 보이는 크라수스는 솔직히 장군이라고 부르기에 부끄러운 인물…. 로마군의 패전에 더 이바지할 만한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당시 노예 군의 상황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토벌군으로 파견된 로마군도 경험이 없는 예비역에 지나지 않았지만, 노예 군은 그 이상으로 군대에 대해서 잘 몰랐을 테니까…. 하지만, 오랜 경험은 노예 군을 단련시켜 주었을 것이다. 정예는 아니라고 해도 로마의 군대와 대결하여 승리한 경험은 그들을 이미 상당한 수준의 전사로 바꾸어 주었음이 틀림없다. 사실상, 크라수스와의 대결에서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군은 경험 없는 로마의 군단에 비해서 더욱 강인한 군대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바보 같은 지휘관이 이끄는 경험 없는 군대와의 대결에서 스스로 나서서 패한 이상, 우수한 전술적 역량을 가졌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만일, 이 사건이 조금 더 늦게, 혹은 조금 일찍 벌어졌더라면 어떨까? 이를테면, 불과 1년 뒤, 세르토리우스 전쟁이 종결된 72년에 벌어졌다면 말이다. 그랬다면, 에스파냐에 출정했던 로마의 정예군과 '위대한(마그누스)' 폼페이우스가 복귀할 것이고, 그만큼 천재적인 전술가는 아니지만 역시 유능한 지휘관인 메텔루스 피우스를 비롯한 유능한 장군들이 복귀하여 이 사건에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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