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환영 - 곰브리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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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예술과 환영 - 곰브리치 지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문
서: 심리학과 양식의 수수께끼

1 유사성의 한계
1. 빛으로부터 물감으로
2. 진실과 전형

2 기능과 형식
3. 피그말리온의 힘
4. 그리스 혁명에 대한 반성
5. 공식과 경험

3 관조자의 역할
6. 구름 속에 들어 있는 형상
7. 환영의 조건
8. 삼차원의 모호성

4 고안과 발견
9. 미술에서의 시각의 분석
10. 캐리커처의 실험
11. 재현에서 표현으로

본문내용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가 사랑을 읊을 때면 그의 음성은 감미롭고 조화롭지만, 전쟁이 시의 주제가 되면 그 시구(詩句)는 격력하고 진취적이다. 이 매체는 푸생이 말한 대로 ‘열정을 그리는 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즉 베르길리우스의 시는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관습에 의존하는 표현이다. 라틴어 운문이 지닌 이와 같은 잠재력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베르길리우스가 사랑을 이야기하는 시구의 음성과 그가 전쟁을 다룰 때의 음성이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혹시 비평가가 상상으로 꾸며낸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픈 기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베르길리우스의 시구 두 편의 차이는 사랑과 전쟁의 차이와 비슷하다고 푸생이 느꼈던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가 말했던 그 ‘열정의 묘사’를 이해하는 데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347p]
- 그러나 변론가가 관찰하게 될 주된 구별은 실제로는 사회적인 구별, 즉 고귀한 것에서 천한 것까지의 음계 변화였다. 똑같은 의미라도 이러한 음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다른 언어들로 표현될 수 있다. 우리는 ‘얼굴’이라고 할 수도 있고 ‘상판’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소녀’라고 할 수도 있고 ‘계집애’라고도 할 수 있다. 웅변에 관한 대화 중 알맞은 언어 선택에 대해 토론하면서, 키케로는 평범한 양식, 중간 양식, 그리고 화려한 양식의 세 가지로 웅변양식을 규정함으로써 이러한 구분에 자상한 설명을 가해 주고 있다. “사내가 계집애를 만나다”는 비속한 문체이며, “청년이 처녀를 만나다”는 화려한 문체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때에도, 고풍이고 구식인 용어가 일상용어보다 더 고상하게 들렸다. 역점을 두는 곳이 이렇게 변화하는 것은 문체 연구가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예를 들면 흠정역성서(欽定譯聖書, Authorized Version-1611년 영국와 제임스 1세의 재가에 의해 편집된 영역 성서-역주)의 문체가 지니는 그 힘과 장중함에 경탄하기 전에, 우리는 시간의 흐름이 그 복음의 비천한 어투를 아르카이즘의 고상한 양식으로 변화시켜 주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만 한다. [348~349p]
- 언어에는 언제나 동일한 사회적 역사적 윤리적 척도로 다루고자 하는 유혹이 있어 왔는데, 예를 들면 고어(古語)는 숭고하고 절제력있는 것으로, 현대어는 비속하고 방종한 것으로 대별하려는 태도가 그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경향은 이따금씩 평범하고 비속한 문체를 좋은 것으로, 화려한 것을 과장되고, 거짓되고, 타락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에 의해 중화되곤 했다. [349p]
- 예술에서나 사회에서 좀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는 과다한 소심성과 과다한 순응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하여’ 보수주의자가 된 것이다. [353p]
- 앞에서 프로이트의 이름을 들었는데, 다음과 같은 훌륭한 이미지를 원용한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도 여기서 꼭 언급해 두고 싶다. “벌떼가 층을 이루며 서로 뒤엉켜 있을 때, 이 큰 무리가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에 발을 붙이고 있는 벌이 극히 소수인 것처럼, 우리가 사고하고 있는 대상도 마찬가지다. 즉 그 대상들은 연상(連想)의 고리들로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전체의 ‘원초적인’ 출처는 가장 최오의 것이 한 번 소유했던 그 선천적인 관심인 것이다.”[354p]
- 18세기 사람이었던 게인즈버러는, 두뇌의 소산인 상상력의 언어에 관계하는 미술가로서 실제 광경을 그냥 모방하는 일은 아무 값어치가 없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컨스터블도 그와 똑같은 어려움을 지각하고 있었으며, 그 어려움은 자기 저택의 모든 뚜렷한 특징들이 미술가의 화폭 위에 충실하게 기록되기를 바라는, 그 융통성 없는 후원자의 가혹한 요구 때문에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그에게 그 일은 어떤 모욕이 아니라 도전이었다. 위즈워스와 동시대 사람으로서 자연을 비할바 없이 사랑한 그는, 진실하면서 동시에 시정(詩情)이 풍부한 언어를 스스로 고안해냈다. 그것은 정확하기를 바라는 후원자의 요구와 시정에 대한 자신의 충동을 다 충족하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언어였다.[358p]
- 실제 생활에서 우리가 얼굴 표정이나 말소리에 보이는 반응 못지않게, 빛이나 형태가 상호작용하는 자극들에 대한 우리의 반응도, 언제나 직접적이고 전체적이며 분석될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직관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보지 않았는가. 악구(樂句)의 의미나 음성의 억양을 이해하듯이,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단지 신비주의자나 비합리주의자가 이러한 직관이 언제나 이성보다 우월하며, 절대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할 때에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거짓된 반응이 따로 있듯이, 표현의 오해라는 것도 있다. 합리적인 접근방법은, 하나의 미술작품이 그 양식과 상황의 틀 안에서 볼 때, 의미할 수 있는 한계가 무엇인가를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잘못들을 제거할 수 있다. 이렇게 오해의 영역을 좁혀 주고 나면 그것은 물러나야 한다. 왜냐하면 특수한 것은 어느 정도 풍성해지면, 스무고개 질문에서 만들어지는 그 일반적인 개념으로 짜인 엉성한 그물을 빠져 나가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물의 세계를 해쳐 나가기 위한 도구로서 창조된 우리의 언어는, 알다시피 내부세계를 분석하고 분류하고자 할 때는 정말 볼품 없고 쓸모 없는 것으로 전락해 버린다.
[359p]
- 실제로 우리가 연필을 들고 그리기 시작하자마자, 이른바 감각적 인상을 있는 그대로 수동적으로 따라 그린다는 생각 자체가 참으로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창문을 열고 바깥의 경치를 내다볼 때, 우리는 수만 가지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볼 수 있다. 그 중 과연 어던 것이 진정한 감각적 인상이란 말인가. 그러나 우리는 그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어느 하나부터 그리기 시작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길 건너의 집과 그 앞에 나무가 있는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그림을 그리든지 간에, 우리는 ‘관습적인’ 선이나 형태를 그리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 속에 있는 ‘이집트인’은 억눌려 있을지는 모르나 쫓겨난 것은 결코 아니다.“[3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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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42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1.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1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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