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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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가족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의 프로젝트가 되어가고 있다. 그것은 우선 기든스적 의미에서 현재가 “영리한 사람들의 시래”이며, 따라서 대체로 미디어와 통속 학문적인 조언자들이 퍼뜨리는 전문 지식들이 우리 일상의 점점 더 많은 영역 안으로 침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보를 찾고 선별하고 처리하는 것이 일상의 법칙이 된다. 거기에 보조를 맞출 수 없는(지적 조건이 부족하거나, 외국인의 경우 언어 지식이 부족하거나 혹은 다른 할 일들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없어서) 사람은 때론 정말 말 그래도 정보에 어두운 사람이다. 보험료율, 세율, 철도 운임률 등의 혼란 속에서 능숙하게 계산하고 짜 맞추며 교묘히 곤란을 피해갈 줄 모르는 사람, 목록을 읽고 명세를 비교하며 다양한 제공자들 사이에서 융통성 있게 변화를 꾀할 줄 모르는 사람이 이에 속한다. 여기서 교육이나 출신이나 그 외의 자원 덕분에 이런 것에 더 정통한 사람은 더욱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반면, 처음부터 별로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시간은 갈수록 오히려 계속해서 잃어간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세율과 주택 저축 모델들을 놓고 정보를 검색하거나 최선의 가격-효용 관계를 파악하여 재빨리 물건을 사들이는 것 그 이상이다. 계속 진행되는 개인화의 조건에서 각 개인은 어떻게 자신의 가족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의 실험 영역에서 갑자기 피해를 입지 않도록 어떻게 앞을 내다보면서 안전 조치를 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점점 더 많이 직면하게 된다. 이것은 또한 건강과 질병 그리고 탄생, 아니 생식에서 사망까지의 영역에 특히 해당한다.
P. 150
“이러한 의학적인(산전 진단법의) 발전과 더불어 계속적인 욕망이 일깨워지고 심화된다. 건강한 아이에 대한 요구의 증가는 마지막에는 일종의 ‘장애 없는 아이에 대한 의무’로 발전되는 데까지 나아갈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해석에 따르면 그러한 요구들은 이기주의와 부모의 무절제의 산물이며 그들의 개인적인 애착, 강박관념, 노이로제의 표현이다. 그에 대해 나는 여기서 또 다른 해석을 제안하고 싶다. 나는 이러한 소망들이 시대적 경향, 즉 현대에서 부모의 신분이 겪고 있는 형태 변화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그것을 먼저 테제로서 요약하면, 새로운 부모의 의무는 “아이를 위한 최적의 출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 부모의 요구적 태도로 체험하는 것은 특히 이 법칙을 실현하려는 시도이다.
P. 152
즉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지닌 주체인 인간과 그의 의지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각 인간에게서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를 발견하려는 계몽주의 철학의 전체적 요구는 이제 아이에게도 미리 주어지는데, 그것은 적어도 앞을 내다보면서 아이로 하여금 그러한 권리를 갖게 하려는 부모의 과제로서 주어진다.” 18, 19세기의 사회사를 살펴보면, 그 사회의 사회적 구조에서 교육에 대한 이런 새로운 관심을 촉진하는 근본적인 변화 역시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시대는 전통적이면서 신분으로 규정된 사회에서 시장의 법칙으로 통제되는 산업 사회로의 점차적인 이행이 일어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로써 사회적인 지위가 좀 더 개방적이고 실현 가능하게 되며, 그 결과 교육은 점점 더 커다란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그 이유는 지위가 더 이상 단순히 세습되지 않는 곳에서는 점점 더 능력과 지식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맨 먼저 출세 지향적인 시민 계급에서(또한 나중에야 비로소 더 광범위한 주민 집단에서) 교육의 노력들이 아이에게 집중된다. 이 노력들은 교육과 육성을 전면에 내세우는데, 이것은 사회적 지위를 고수하고 몰락에 대비하며 현재의 지위를 가능한 한 더욱 개선하기 위함이다.
P. 158
“출산 전에 유전학적 진단을 받는 것은 본질적으로 건강한 아이의 탄생을 돕는다.” 이 목표에는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 틀림없다. 물론 그 언어적 표현은 결정적인 점에서 부정확하지만 말이다. 부문장에서 와서야 비로소 건강한 아이에 대한 약속이 어떻게 이행되는지 암시된다. 즉 그것은 “아이가 심각한 육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를 조기에 발견하여 임신중절을 가능케 함으로써” 이행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결정들은 부모의 사랑이라는 전통적인 개념과 상충되며, 우생학의 어두운 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간단히 말해서 그 결정들은 금기의 영역을 건드리며 그 때문에 종종 침묵, 돌려 말하기, 회피의 전략을 통해 우회적으로 이루어진다. (중략) 그러나 결국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장애아의 출산을 피하는 것이다. 그러한 태도를 “끔찍한 숙명”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새로운 책임의 표현으로 칭송하는 경향들이 이미 존재한다.
P. 162
우리에게 그러한 태도는 야만적이며 기본적인 금기의 경계를 훼손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입장과 관점을 바꾸어, 해당 나라의 가치 척도와 생활 조건을 기본 토대로 받아들인다면, 다음과 같이 논증할 수도(그리고 실제로 또한 그렇게 논증된다) 있을 것이다. 즉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기본적인 책임 의식의 결여가 아니라 그 반대로 부모의 의식적 책임의 표현이라고 말이다. 결국 그 나라의 소녀와 여성들이 더 낮은 가치 평가를 받고 있으며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것을 염두에 두면 금세 다음과 같은 결론과 의문에 도달하게 된다. 만약 아이에게 장애의 끔찍한 운명을 면제케 해주는 게 허락되고 심지어 도덕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면, 부적당한 성이라는 마찬가지로 끔찍한 운명을 피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왜 합법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P. 219
독일인과 그리스인 사이의 결혼에서는 태어난 그녀는 두 개의 여권과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의 여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둘이 함께 영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 그년느 독일 여권을 하필이면 어디다 잘못 두어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 여권을 갖고 갔다. 반면 그녀의 여동생은 독일 여권을 가지고 여행을 갔다. 다시 독일로 들어올 때 그녀의 동생은 ‘독일인’이었기 때문에 지체 없이 통과되었지만, ‘그리스인’인 그녀는 자세한 조사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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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1.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16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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