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무도실천철학중 색즉시공과 공즉시색의 철학
무도실천철학중 오륜서의 독행도의 의미
무도수련의 신비주의에 따른 실천철학
무도실천철학중 오륜서의 독행도의 의미
무도수련의 신비주의에 따른 실천철학
본문내용
근원 = 空 太虛氣 法身
後天氣 존재가 현상으로 드러나면서 갖는 힘 = 色 化身
무명을 깨치게 되면 색은 무상 무아다. 자기 정체성 동일성이 없는 무아임을 깊이 인식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색들은 다른 데서 빌려온 것이다. 첫째 모든 색은 상관적인 관계에서 이뤄진다. 칠판도 분필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한다. 또 강사가 없어도 칠판은 아무 필요가 없다. 칠판 자체도 전부 상관적 관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의타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지 자생적으로 스스로 생긴 것이 아니다. 칠판을 만드는 장인도 이미 관념적으로 칠판과 분필과의 관계성 속에서 만들기 때문에 상관성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으므로 사용된 것이다 빌려온 것이라 볼 수 있다.
모든 色은 心이고 物이므로 오온의 집합이다. 만물도 오온의 집합이다. 결국 색 즉 자기 스스로가 갖는 것이 없고 색수상행식 5가지의 기능에 의해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이 말씀하신 색은 언제나 덧없고 자기 것이 없는 무아다 하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의 색즉시공의 뜻은 모든 색을 존재자 또는 소유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소유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라는 말이다. 존재자적인 사고방식 소유론적인 사고방식을 끊고 거기서 해방되라는 하이데거의 말과 마찬가지다.
色卽是空은 나와 너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는 無碍<집착이나 걸림이 없는>의 진리다.
色卽是空은 무애로 인도해 주는 진리의 말이다. 만약에 색을 존재자 혹은 소유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면 공을 허무로 오해하기 때문에 색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 색즉시공이 먼저 설명됐다. 서양철학의 결정적 오류는 공과 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들은 존재하는 것들을 모두 소유의 대상으로 봤다. 경제 기술적 혹은 사회 도덕적인 소유의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에 철저히 무와 공을 배제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전통적 신학에 의하면 무란 존재의 결핍이라 해서 악으로 보았다. 신은 이 세상을 창조했기 때문에 이 세상을 전부 존재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만약 무라는 것이 있다면 그 것은 신의 전지전능한 능력에 대해 거부하는 것이다. 때문에 악으로 보고 무를 적극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봤다. 그러므로 서양의 그림을 봐도 모든 하늘을 존재자로 가득 채운다. 동양화처럼 여백이 없고 모두 색으로 채운다. 서양은 공과 무를 단지 허무로 보았다. 색즉시공은 결국 자유란 진리인데 자유란 말은 해탈을 말한다.
空卽是色은 색즉시공과 이면 관계로 아주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공은 허무가 아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무를 거의 같은 것으로 보았다. 무가 허무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연기관계 사이의 차이가 없으면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 차이를 알려주는 사이의 공이 중요한 것으로 공이 존재의 근거와 같은 것으로 말한다. 예로 무한정은 써도 써도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고갈은 공이나 무를 쓰지 않고는 달리 쓸 방법이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든 것은 유한하고 제한적이고 생멸하기 때문에 이런 눈에 보이는 모든 유한한 것을 벗어나 고갈도 안 되고 생멸도 없고 영원히 지속한다 할 때 그 것은 공 이외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길이 없다.
화담은 공을 기로 보았다. 무량무수 끝도 없고 한도 없는 그런 색들이 생멸하고 일어나는 것을 다 가늠케 해주는 근거는 공이라 말할 수 밖에 없다. 공은 무한한 그릇이며 동시에 무한한 힘도 되는 2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원효는 공을 무한한 그릇으로 보았고 무한한 힘으로서의 공을 不空으로 보았다. 공이 불공이다. 공과 불공은 같은 뜻으로의 양면성을 말하지 공과 불공은 서로 다른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다. 무한한 힘으로 보면 능동적이고 무한한 것을 저장하고 담고 있는 면으로 보면 수동적이다.
空而不空<원효 617-686> - 공은 색에 대한 집착과 이분법을 깨기 위해 세운 개념이며 공에 대한 집착을 깨기 위해 다시 불공을 말하지만 사실 공과 불공은 무한한 기운을 가진 그릇으로 둘이 아니다.
그래서 空은 無盡藏이다. 퍼도 퍼도 끝이 없이 저장돼 있다. 무진장은 다함이 없는 창고로 공이다. 무진은 또한 잘 융화되어 서로 방해함이 없는 원융무애한 상태를 말한다. 서양은 무진장한 힘을 신으로 보았지만 우리는 그 것을 공으로 보았다. 공도 힘이기 때문에 무한한 에너지를 우주에 표현하고 싶어한다. 모든 색의 파도는 망상의 파도가 돼 마음을 끄달리게 만든다. 끄달리니 마음이 급해져 헉헉거린다. 색즉시공에서 보면 파도는 망상의 상징인데 공즉시색에서 보면 모든 존재는 무진장한 공에서부터
後天氣 존재가 현상으로 드러나면서 갖는 힘 = 色 化身
무명을 깨치게 되면 색은 무상 무아다. 자기 정체성 동일성이 없는 무아임을 깊이 인식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색들은 다른 데서 빌려온 것이다. 첫째 모든 색은 상관적인 관계에서 이뤄진다. 칠판도 분필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한다. 또 강사가 없어도 칠판은 아무 필요가 없다. 칠판 자체도 전부 상관적 관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의타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지 자생적으로 스스로 생긴 것이 아니다. 칠판을 만드는 장인도 이미 관념적으로 칠판과 분필과의 관계성 속에서 만들기 때문에 상관성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으므로 사용된 것이다 빌려온 것이라 볼 수 있다.
모든 色은 心이고 物이므로 오온의 집합이다. 만물도 오온의 집합이다. 결국 색 즉 자기 스스로가 갖는 것이 없고 색수상행식 5가지의 기능에 의해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이 말씀하신 색은 언제나 덧없고 자기 것이 없는 무아다 하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의 색즉시공의 뜻은 모든 색을 존재자 또는 소유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소유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라는 말이다. 존재자적인 사고방식 소유론적인 사고방식을 끊고 거기서 해방되라는 하이데거의 말과 마찬가지다.
色卽是空은 나와 너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는 無碍<집착이나 걸림이 없는>의 진리다.
色卽是空은 무애로 인도해 주는 진리의 말이다. 만약에 색을 존재자 혹은 소유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면 공을 허무로 오해하기 때문에 색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 색즉시공이 먼저 설명됐다. 서양철학의 결정적 오류는 공과 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들은 존재하는 것들을 모두 소유의 대상으로 봤다. 경제 기술적 혹은 사회 도덕적인 소유의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에 철저히 무와 공을 배제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전통적 신학에 의하면 무란 존재의 결핍이라 해서 악으로 보았다. 신은 이 세상을 창조했기 때문에 이 세상을 전부 존재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만약 무라는 것이 있다면 그 것은 신의 전지전능한 능력에 대해 거부하는 것이다. 때문에 악으로 보고 무를 적극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봤다. 그러므로 서양의 그림을 봐도 모든 하늘을 존재자로 가득 채운다. 동양화처럼 여백이 없고 모두 색으로 채운다. 서양은 공과 무를 단지 허무로 보았다. 색즉시공은 결국 자유란 진리인데 자유란 말은 해탈을 말한다.
空卽是色은 색즉시공과 이면 관계로 아주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공은 허무가 아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무를 거의 같은 것으로 보았다. 무가 허무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연기관계 사이의 차이가 없으면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 차이를 알려주는 사이의 공이 중요한 것으로 공이 존재의 근거와 같은 것으로 말한다. 예로 무한정은 써도 써도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고갈은 공이나 무를 쓰지 않고는 달리 쓸 방법이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든 것은 유한하고 제한적이고 생멸하기 때문에 이런 눈에 보이는 모든 유한한 것을 벗어나 고갈도 안 되고 생멸도 없고 영원히 지속한다 할 때 그 것은 공 이외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길이 없다.
화담은 공을 기로 보았다. 무량무수 끝도 없고 한도 없는 그런 색들이 생멸하고 일어나는 것을 다 가늠케 해주는 근거는 공이라 말할 수 밖에 없다. 공은 무한한 그릇이며 동시에 무한한 힘도 되는 2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원효는 공을 무한한 그릇으로 보았고 무한한 힘으로서의 공을 不空으로 보았다. 공이 불공이다. 공과 불공은 같은 뜻으로의 양면성을 말하지 공과 불공은 서로 다른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다. 무한한 힘으로 보면 능동적이고 무한한 것을 저장하고 담고 있는 면으로 보면 수동적이다.
空而不空<원효 617-686> - 공은 색에 대한 집착과 이분법을 깨기 위해 세운 개념이며 공에 대한 집착을 깨기 위해 다시 불공을 말하지만 사실 공과 불공은 무한한 기운을 가진 그릇으로 둘이 아니다.
그래서 空은 無盡藏이다. 퍼도 퍼도 끝이 없이 저장돼 있다. 무진장은 다함이 없는 창고로 공이다. 무진은 또한 잘 융화되어 서로 방해함이 없는 원융무애한 상태를 말한다. 서양은 무진장한 힘을 신으로 보았지만 우리는 그 것을 공으로 보았다. 공도 힘이기 때문에 무한한 에너지를 우주에 표현하고 싶어한다. 모든 색의 파도는 망상의 파도가 돼 마음을 끄달리게 만든다. 끄달리니 마음이 급해져 헉헉거린다. 색즉시공에서 보면 파도는 망상의 상징인데 공즉시색에서 보면 모든 존재는 무진장한 공에서부터
추천자료
북한선교와 통일선교전략
마하지관과 천태지의사상
홍대용의 의산문답
[환경보건]동아시아 자연관에 비추어 본 우리민족 고유의 생명사상
[한국사상] 이율곡의 핵심사상은 무엇인가
[연암 박지원][박지원][문체반정][박지원의 문학관][호질][양반전][실학사상][실학파]연암 박...
외암 이간과 남당한원진의 인물성동이론은 통한 현실 긍정 이론
정치학과 관련하여 본 정부혁신과 정책학
[주리론][주리철학][주리론(주리철학) 이론][주리론(주리철학) 종경정신][전거수사]주리론(주...
[원불교 교화][교리][의식교화][가정교화][교도중심교화]원불교 교화의 교리, 원불교 교화의 ...
[루소 사회계약론][일반의지][주권][대의원][선거]루소 사회계약론과 일반의지, 루소 사회계...
[불교 선(禪), 선종, 원각경, 초의, 회화사상, 위빠사나, 성품오득]불교 선(禪)과 선종, 불교...
허균(許筠) - 허균에 대한 통설 비판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