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기초적 게임이론의 이해
전략적 사고의 정책과정에서의 응용
전략적 사고의 정책과정에서의 응용
본문내용
상황에서 전개되었다. 무엇보다도 전쟁명분이 불확실하고, 전략도 치밀하지 았았다. 당초의 미국은 최신 하이테크병기를 사용하면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단시일 내에 공습만으로 유고를 항복시켜 코소보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공습 1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공습만으로 전쟁을 종결시킬 수 없다는 미국방부측의 판단과 함께 지상군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고, 클린턴 행정부는 난관에 빠졌다. 전쟁이 당초 예상했던 목표대로 수행되지 않자, 걸프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콜린 파월(전 합참의장)조차도 미국의 군사개입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콜린 파월은 미국이 군사개입할 수 있는 조건으로서 ① 국가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때, ②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을 때, ③ 절대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을 때, ④ 명확한 철수전략이 준비되어 있을 때 등의 네 가지(파월독트린)를 들었다. 그리고 미국은 이 네 가지 조건을 전부 무시하고 군사개입하였다고 비난하였다. 유감스럽게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토군의 유고공격의 전략목표는 처음부터 명확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세르비아계의 알바니아계주민의 반인도주의적 ‘인종청소’ 중지인지, 강경노선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축출인지, 아니면 나토에 대한 미국의 리더십 강화인지 불분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 국제 정치적경제적, 전략적인 측면에서 사전 정보수집도 불충분하였다. 또한 군사개입 이전에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고, 또 회원국가의 전폭적인 동의도 얻지 못했다. 더욱이 러시아는 유고의 밀로셰비치 대통령을 군사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공언하고 나섰고, 나중에 유고중국대사관의 오폭도 있었지만 중국은 처음부터 반대하였다.
결국, 미국을 주축으로 한 나토군의 유고공격은 6월 9일 유고가 코소보 주둔 세르비아군의 철수 및 국제평화유지군(KFOR) 주둔, 난민 귀환 등의 조건에 서명함으로써 장장 78일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전쟁이 남긴 경제적, 정신적, 사회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추산에 따르면 1만 5천명 이상의 인명 피해와 10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하였고, 공습으로 파괴된 유고의 사회간접자본은 200조원이 넘어 국가경제는 20년 전으로 후퇴하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민족간, 국가간의 갈등은 오히려 더욱 예민해졌다. 이를테면, 코소보로 귀환한 알바니아계 코소보해방군이 이번에는 세르비아계 주민을 상대로 살인, 약탈, 방화 등 ‘역인종청소’를 저지르는 악순환을 겪었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인해 소련 및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국을 주축으로 한 나토군의 유고공습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 전략목표는 달성되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4).
참고자료
1) 淸水江一, 위의 책, pp. 34-36 참조.
2) 淸水江一, 위의 책, pp. 38-40 참조.
3) 淸水江一, 위의 책, pp. 40-42 참조.
4) 동아일보 1999년 4월 6일, 11일. 조선일보 1999년 6월 29일 참조.
결국, 미국을 주축으로 한 나토군의 유고공격은 6월 9일 유고가 코소보 주둔 세르비아군의 철수 및 국제평화유지군(KFOR) 주둔, 난민 귀환 등의 조건에 서명함으로써 장장 78일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전쟁이 남긴 경제적, 정신적, 사회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추산에 따르면 1만 5천명 이상의 인명 피해와 10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하였고, 공습으로 파괴된 유고의 사회간접자본은 200조원이 넘어 국가경제는 20년 전으로 후퇴하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민족간, 국가간의 갈등은 오히려 더욱 예민해졌다. 이를테면, 코소보로 귀환한 알바니아계 코소보해방군이 이번에는 세르비아계 주민을 상대로 살인, 약탈, 방화 등 ‘역인종청소’를 저지르는 악순환을 겪었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인해 소련 및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국을 주축으로 한 나토군의 유고공습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 전략목표는 달성되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4).
참고자료
1) 淸水江一, 위의 책, pp. 34-36 참조.
2) 淸水江一, 위의 책, pp. 38-40 참조.
3) 淸水江一, 위의 책, pp. 40-42 참조.
4) 동아일보 1999년 4월 6일, 11일. 조선일보 1999년 6월 29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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