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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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부여의 역사
3. 부여와 고구려의 건국신화
4. 대소와 초기 고구려
5. 맺음말

본문내용

영을 만들고, 말 안장을 풀고 병사들을 쉬게 하여, 두려워 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부여왕이 전국의 군사를 동원하여 출전하였다. 그는 고구려가 대비하지 않는 틈을 노려 기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말을 급히 몰아 진군하다가 진흙 수렁에 빠져서 앞으로 갈수도 뒤로 갈 수도 없게 되었다. 왕이 이 때 괴유를 출동시켰다. 괴유가 칼을 뽑아 들고 고함을 지르며 공격해가니, 부여의 1만여 군졸들이 넘어지고 쓰러져서 버틸 수 없었다. 이 때 괴유가 곧바로 전진하여 부여왕(대소)을 붙잡아 목을 베었다.〉
『삼국유사』에서도 보면 至地皇三年壬午, 高麗王無恤代之, 殺王帶素, 國除
〈지황(地皇) 3년 임오(壬午)에 이르러서 고구려왕(高句麗王) 무휼(無恤)이 이를 쳐서 대소를 죽이니 이것으로 나라가 없어졌다.〉
위에 2개의 사료를 바탕으로 보면 대소가 죽음으로써 부여는 쇠퇴의 길을 걸었고, 고구려로 무게의 추가 기울어 졌다. 이는 대소가 부여에서 정치적·군사적으로 얼마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5. 맺음말
앞서 부여의 역사와, 부여와 고구려건국설화의 유사성과 다른점에 대해 알아보았다. 부여의 역사를 간략하게 알아봄으로써 초기에 부여가 고구려보다 경제적·정치적으로 얼마나 발전되었었는지 알 수 있었고, 부여와 고구려설화의 각각의 주인공인 동명(東明)의 논쟁과 대소와 부여가 한반도 역사에서 얼마나 소외되었고 과소평가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에 우리는 부여와 대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연구함으로써 동북공정과 같은 역사왜곡으로부터도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객관적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연구는 고구려사에 치중되어서 부여와 대소에 대해서는 역사적 연구가 미진하고, 관심이 결여되어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동북아역사재단이나 학계에 바라는 점은 주변국의 역사적 왜곡에 대응한다는 점은 훌륭하게 생각하지만, 고구려나 발해에 대해서만 중점적으로 두기보다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부여에 대한 연구를 함으로써 다양성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문헌
박영규, <고구려본기>, 웅진출판사, 1997년
서병국, <동이족과 부여의 역사>, 한국학술정보(주), 2005년
일연(지음), 김원중(옮김), 정진숙(펴낸이),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2002년
이중재, <고구려원전>, 고대사, 2009년
김용덕, <초기 고구려역사 연구>, 김용덕, 동북아역사재단, 2008년
  • 가격1,300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3.01.19
  • 저작시기201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28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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