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민화와 한・일간의 민화 비교
민화
민화의 개념
민화의 유형
한국민화의 특징
일본
한국 민화와의 주요 특징 비교
한국과 일본 풍속화 간 작품 비교분석
민화
민화의 개념
민화의 유형
한국민화의 특징
일본
한국 민화와의 주요 특징 비교
한국과 일본 풍속화 간 작품 비교분석
본문내용
수준 높은 회화 표현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3.2 풍경화 비교
<한국의 풍경화>
김홍도 「단원도」(1784), 종이 바탕에 수묵담채. 세로 135.3㎝, 가로 78.5㎝. 개인 소장.
김홍도가 39세에 그린 「단원도」는 시적인 정취와 가락을 발산하는 변화의 단초를 연 작품이다. 이 작품은 1784년 찰방에 근무하거나 아니면 다시 도화서로 돌아와서 화원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781년 어느 봄날, 김홍도 집 사랑방 들마루에서 진솔회 질소하며 예절에 거리끼지 않는 술자리 모임이라는 뜻
를 연 모습을 묘사하였다. 들마루 무릎 위 거문고를 올려놓은 이가 김홍도이며 부채질하면서 거문고 소리를 감상하는 이가 강희언, 그 옆에 장단에 맞춰 시를 읊는 이가 정란이다.
그림에서 집 위의 작은 돌담 모습에서 은은한 기품을 느낄 수 있으며 주변의 조경과 분위기를 우키요에처럼 화려하고 섬세한 색채로 표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타내었다. 배경은 은은한 먹으로 강조하였으며, 농담기법을 활용하였다. 그는 어느 특정 풍경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매우 사실적인 표현을 하였다. 즉, 채색의 농담을 잘 활용하여 한국적인 풍토 감각을 훌륭히 표현한 작품이다.
<일본의 풍경화>
우타가와 히로시게 「오하시아타케의 소나기」(1857), 니시키에판화, 33.5x21.8cm, 기메 국립 아시아 미술관 소장.
고흐도 사랑한 일본의 대표적인 풍경화가로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작품이다. 왼쪽은 그의 명소 에도 100경 中 「오하시아타케의 소나기」(1857)라는 작품이며, 오른쪽은 빈센트 반 고흐의「일본충: 빗속의 다리」(1887)로 자포니즘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후 히로시게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에 내재한 불가사의한 힘을 표현하는 것처럼 기괴한 풍경을 그림으로 담았으며, 원근법을 철저히 지키지 않고 교란하는 등 극단적 구도를 취하기도 하였다. 1856년부터 『명소 에도 100경』 히로시게가 정열을 쏟아부은 최대의 걸작이나 완성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을 제작하였는데 그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는 단색조의 배경이 아닌 섬세한 색채와 우아한 선들이 조화와 대비를 이루는 실내외 풍경을 배경으로 시적인 느낌으로 회화를 살렸다. 그는 비, 바람, 안개, 눈 등 각기 다른 자연의 변화를 서정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즉, 그의 작품에서 전통적인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
3.3 축수도 비교
한국의 축수도
「까치 호랑이」조선후기, 지본채색,55.5x84.5cm.
이것은 17~18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며 작자는 미상이나 우리나라 축수도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속에 내재된 예술적·사상적·신화적 의미가 상당하다는 점에서 한국의 미와 예술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설화의 내용을 상징하기도 하며, 신탁의 전령사로 길조를 의미하는 까치와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전능의 신 서냥신의 사자(使者) 호랑이를 함께 그려 신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당시 호랑이는 악귀를 내쫓고 복을 가져오는 대표적인 상징적 동물로 당시 집 대문에 붙여놓을 정도로 영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정월초하루에 호랑이를 벽이나 문에 붙이는데 그렇게 하면서 액을 막기 위함이다. 이를 ‘호축삼재’라고 하여 삼재를 막아준다는 전통의 믿음이 있었다.
이러한 믿음은 조선시대에 나타난 가장 서민적이며 소박한 의식으로 예술과도 무관하지 않으며 실용화로서의 예술로 이해할 수 있다.
독특한 점은 이 그림의 호랑이는 포악하지 않고 화면을 채우는 무게감과 표현의 익살스러움 즉,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발톱을 보면 일본이나 중국의 호랑이는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이것에서 한국의 민족성을 찾기도 한다. 무서운 상대에도 푸근하고 정감있는 표현을 함으로 공포를 극복하는 아이러니함이다.
보통 호랑이와 함께 까치도 같이 등장하는데 까치는 민초를 대변하는 것으로, 권리를 남용하는 탐관오리를 대변한 호랑이와 대조된다. 어쩌면 까치가 호랑이를 비웃는 듯한 상황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데 민중의 의식을 예술을 통해 승화시킨 것이다.
이처럼 민화가 어떤 상업적 목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민간 생활을 그대로 반영한 것임을 볼 때, 어떤 화파(畵派)를 형성하며 가부키라는 흥행극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우키요에와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같은 대중회화, 서민 향유의 그림이라해도 두 장르의 성격은 이토록 다른 것이다.
<일본의 축수도>
왼쪽부터 조선 민화에 등장한 익살스러운 호랑이, 육중하고 웅장한 중국 호랑이, 사납고 강압적인 일본 메이지 시대의 호랑이 그림이다. 동시대 3국의 호랑이 그림은 모두 작자 미상이라는 점에서 민화의 익명적인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상징적인 측면은 인문·지리적 차이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중국은 호랑이를 힘과 기상, 성스러움의 상징으로 주로 등장시켰다. 반면 일본에서 호랑이는 상상의 성수(聖獸)로 권력을 상징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어령, 『십이지신 호랑이』, 생각의나무, 2009, p.324.
오히려 한국의 호작도는 주술적 실용성이 강조된 서민회화로 소박하고 순진한 느낌이다. 반면 일본의 호작도는 장식성이 강조되었으며 화려하고 강렬한 느낌이며, 오히려 털이나 눈·입 등을 세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차이에서도 알 수 있듯 같은 소재의 민화라 하더라도 시대적·문화적·사상적 배경에 따라 표현방식이 다름을 알 수 있으며, 이처럼 다른 국가와 미술작품을 비교하는 것도 한국의 미적 특징을 간파하는데 유용하다.
<참고문헌>
김애경, 「비교문화관점에서의 민화와 우키요에」, 한국일본어문학회, 2009.
고바야시 다다시(이세경 옮김), 『우키요에의 美』, 이다미디어, 2004.
안휘준, 『청출어람의 한국미술』, 사회평론, 2010.
윤열수,『민화이야기』,디자인하우스,1995.
이어령, 『십이지신 호랑이』, 생각의나무, 2009.
하수경,「한국민화의 조형원리 찾기」,비교민속학회, 2002.
하수경,「제작동기로 보는 한국민화의 특성」, 비교민속학회, 2000.
한정희, 배진달, 한동수, 주경미,『동양미술사』, 미진사, 2007.
3.2 풍경화 비교
<한국의 풍경화>
김홍도 「단원도」(1784), 종이 바탕에 수묵담채. 세로 135.3㎝, 가로 78.5㎝. 개인 소장.
김홍도가 39세에 그린 「단원도」는 시적인 정취와 가락을 발산하는 변화의 단초를 연 작품이다. 이 작품은 1784년 찰방에 근무하거나 아니면 다시 도화서로 돌아와서 화원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781년 어느 봄날, 김홍도 집 사랑방 들마루에서 진솔회 질소하며 예절에 거리끼지 않는 술자리 모임이라는 뜻
를 연 모습을 묘사하였다. 들마루 무릎 위 거문고를 올려놓은 이가 김홍도이며 부채질하면서 거문고 소리를 감상하는 이가 강희언, 그 옆에 장단에 맞춰 시를 읊는 이가 정란이다.
그림에서 집 위의 작은 돌담 모습에서 은은한 기품을 느낄 수 있으며 주변의 조경과 분위기를 우키요에처럼 화려하고 섬세한 색채로 표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타내었다. 배경은 은은한 먹으로 강조하였으며, 농담기법을 활용하였다. 그는 어느 특정 풍경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매우 사실적인 표현을 하였다. 즉, 채색의 농담을 잘 활용하여 한국적인 풍토 감각을 훌륭히 표현한 작품이다.
<일본의 풍경화>
우타가와 히로시게 「오하시아타케의 소나기」(1857), 니시키에판화, 33.5x21.8cm, 기메 국립 아시아 미술관 소장.
고흐도 사랑한 일본의 대표적인 풍경화가로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작품이다. 왼쪽은 그의 명소 에도 100경 中 「오하시아타케의 소나기」(1857)라는 작품이며, 오른쪽은 빈센트 반 고흐의「일본충: 빗속의 다리」(1887)로 자포니즘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후 히로시게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에 내재한 불가사의한 힘을 표현하는 것처럼 기괴한 풍경을 그림으로 담았으며, 원근법을 철저히 지키지 않고 교란하는 등 극단적 구도를 취하기도 하였다. 1856년부터 『명소 에도 100경』 히로시게가 정열을 쏟아부은 최대의 걸작이나 완성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을 제작하였는데 그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는 단색조의 배경이 아닌 섬세한 색채와 우아한 선들이 조화와 대비를 이루는 실내외 풍경을 배경으로 시적인 느낌으로 회화를 살렸다. 그는 비, 바람, 안개, 눈 등 각기 다른 자연의 변화를 서정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즉, 그의 작품에서 전통적인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
3.3 축수도 비교
한국의 축수도
「까치 호랑이」조선후기, 지본채색,55.5x84.5cm.
이것은 17~18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며 작자는 미상이나 우리나라 축수도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속에 내재된 예술적·사상적·신화적 의미가 상당하다는 점에서 한국의 미와 예술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설화의 내용을 상징하기도 하며, 신탁의 전령사로 길조를 의미하는 까치와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전능의 신 서냥신의 사자(使者) 호랑이를 함께 그려 신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당시 호랑이는 악귀를 내쫓고 복을 가져오는 대표적인 상징적 동물로 당시 집 대문에 붙여놓을 정도로 영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정월초하루에 호랑이를 벽이나 문에 붙이는데 그렇게 하면서 액을 막기 위함이다. 이를 ‘호축삼재’라고 하여 삼재를 막아준다는 전통의 믿음이 있었다.
이러한 믿음은 조선시대에 나타난 가장 서민적이며 소박한 의식으로 예술과도 무관하지 않으며 실용화로서의 예술로 이해할 수 있다.
독특한 점은 이 그림의 호랑이는 포악하지 않고 화면을 채우는 무게감과 표현의 익살스러움 즉,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발톱을 보면 일본이나 중국의 호랑이는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이것에서 한국의 민족성을 찾기도 한다. 무서운 상대에도 푸근하고 정감있는 표현을 함으로 공포를 극복하는 아이러니함이다.
보통 호랑이와 함께 까치도 같이 등장하는데 까치는 민초를 대변하는 것으로, 권리를 남용하는 탐관오리를 대변한 호랑이와 대조된다. 어쩌면 까치가 호랑이를 비웃는 듯한 상황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데 민중의 의식을 예술을 통해 승화시킨 것이다.
이처럼 민화가 어떤 상업적 목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민간 생활을 그대로 반영한 것임을 볼 때, 어떤 화파(畵派)를 형성하며 가부키라는 흥행극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우키요에와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같은 대중회화, 서민 향유의 그림이라해도 두 장르의 성격은 이토록 다른 것이다.
<일본의 축수도>
왼쪽부터 조선 민화에 등장한 익살스러운 호랑이, 육중하고 웅장한 중국 호랑이, 사납고 강압적인 일본 메이지 시대의 호랑이 그림이다. 동시대 3국의 호랑이 그림은 모두 작자 미상이라는 점에서 민화의 익명적인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상징적인 측면은 인문·지리적 차이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중국은 호랑이를 힘과 기상, 성스러움의 상징으로 주로 등장시켰다. 반면 일본에서 호랑이는 상상의 성수(聖獸)로 권력을 상징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어령, 『십이지신 호랑이』, 생각의나무, 2009, p.324.
오히려 한국의 호작도는 주술적 실용성이 강조된 서민회화로 소박하고 순진한 느낌이다. 반면 일본의 호작도는 장식성이 강조되었으며 화려하고 강렬한 느낌이며, 오히려 털이나 눈·입 등을 세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차이에서도 알 수 있듯 같은 소재의 민화라 하더라도 시대적·문화적·사상적 배경에 따라 표현방식이 다름을 알 수 있으며, 이처럼 다른 국가와 미술작품을 비교하는 것도 한국의 미적 특징을 간파하는데 유용하다.
<참고문헌>
김애경, 「비교문화관점에서의 민화와 우키요에」, 한국일본어문학회, 2009.
고바야시 다다시(이세경 옮김), 『우키요에의 美』, 이다미디어, 2004.
안휘준, 『청출어람의 한국미술』, 사회평론, 2010.
윤열수,『민화이야기』,디자인하우스,1995.
이어령, 『십이지신 호랑이』, 생각의나무, 2009.
하수경,「한국민화의 조형원리 찾기」,비교민속학회, 2002.
하수경,「제작동기로 보는 한국민화의 특성」, 비교민속학회, 2000.
한정희, 배진달, 한동수, 주경미,『동양미술사』, 미진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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