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태도’이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프롬의 주장에 동의한다. 한 사람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와 세계에 대한 태도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신에 대한 사랑의 태도도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사랑의 태도와 분리될 수 없다는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 사랑은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의 문제이지 어떤 것을 사랑하고 어떤 것을 사랑하지 않는 문제가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이 붕괴했다는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신경증적 사랑, 우상 숭배적 사랑, 감상적 사랑, 투사, 미성숙한 신앙에 대해서 잘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신경증적 사랑이 부모님과 같은 이상형을 갈구하는 사랑이고, 우상 숭배적 사랑이 신적인 이상형을 갈구하는 사랑이라면, 또다른 이상형을 갈구하는 사랑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스승 같은 이상형을 갈구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부족한 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이상형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랑의 기술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삶 전체에서 사랑의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는 프롬의 이야기에 동의한다. 실천적인 면에서 나는 프롬에 비해 사실상 무지하므로, 사랑의 실천으로 그가 제시한 방법에 대해서는 동의나 반론을 연기하겠다. 다만 앞에서 이야기했듯, 훈련, 정신 집중, 인내, 겸손, 객관성, 이성의 발달, 긴장, 각성, 고양된 생명력의 상태가 모두 창조적인 활동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만을 짚어 보고 싶다. 사랑의 방향을 선택한 사람은 창조할 수밖에 없다. 창조는 그의 생명력, 사랑하는 능력, 인간의 타고난 힘을 표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이 붕괴했다는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신경증적 사랑, 우상 숭배적 사랑, 감상적 사랑, 투사, 미성숙한 신앙에 대해서 잘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신경증적 사랑이 부모님과 같은 이상형을 갈구하는 사랑이고, 우상 숭배적 사랑이 신적인 이상형을 갈구하는 사랑이라면, 또다른 이상형을 갈구하는 사랑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스승 같은 이상형을 갈구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부족한 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이상형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랑의 기술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삶 전체에서 사랑의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는 프롬의 이야기에 동의한다. 실천적인 면에서 나는 프롬에 비해 사실상 무지하므로, 사랑의 실천으로 그가 제시한 방법에 대해서는 동의나 반론을 연기하겠다. 다만 앞에서 이야기했듯, 훈련, 정신 집중, 인내, 겸손, 객관성, 이성의 발달, 긴장, 각성, 고양된 생명력의 상태가 모두 창조적인 활동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만을 짚어 보고 싶다. 사랑의 방향을 선택한 사람은 창조할 수밖에 없다. 창조는 그의 생명력, 사랑하는 능력, 인간의 타고난 힘을 표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