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1980년대의 의식, 1980년대의 민중운동, 1980년대의 시위운동, 1980년대의 사회운동, 1980년대의 노동운동, 1980년대의 연대운동, 1980년대의 학생운동, 1980년대의 변혁운동, 1980년대의 근대화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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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80년대]1980년대의 의식, 1980년대의 민중운동, 1980년대의 시위운동, 1980년대의 사회운동, 1980년대의 노동운동, 1980년대의 연대운동, 1980년대의 학생운동, 1980년대의 변혁운동, 1980년대의 근대화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1980년대의 의식

Ⅱ. 1980년대의 민중운동

Ⅲ. 1980년대의 시위운동

Ⅳ. 1980년대의 사회운동

Ⅴ. 1980년대의 노동운동

Ⅵ. 1980년대의 연대운동

Ⅶ. 1980년대의 학생운동

Ⅷ. 1980년대의 변혁운동

Ⅸ. 1980년대의 근대화

참고문헌

본문내용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운동은 정권의 전복을 목표로 하였으며 여타의 온건한 노선은 거의 입지를 가질 수가 없었다.
제5공화국은 정치적으로는 매우 억압적이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70년대 말의 경제위기를 과감한 시장개방과 국내 산업구조 조정을 통해 극복한 5공 정권은 사회적 차원에서의 일련의 개방적인 조치와 경제잉여를 통해 중간층을 체제내로 통합시켜 내는 전략을 구사한다. 특히 도시 신중간층은 80년 ‘민주화의 봄’에서도 그러했지만, 80년대 전반기 기간 동안 수동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스스로의 계급대표 기구를 갖지 않은 한국의 중간층은 4.19 이래로 정치 변화가 가시권에 들어오거나 저항의 비용(cost)이 크게 저하되지 않으면 선거행위를 제외하고는 직접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행동을 하더라도 직접 시위에 참가하기 보다는 뒤에서 응원하는 정도에 그쳤는데, 80년이나 초반기에도 이러한 태도를 드러내었다. 이들의 정치적 태도는 다른 계층, 계급과 별로 구별되지 않았다.
정치적 공간은 운동이 생존하고 확장되기 가장 일차적인 조건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간이 열리지 않을 경우 사회적 모순에 저항을 하는 운동세력은 반드시 과격한 시위나 폭동, 본능적인 저항, 음모적인 조직의 형태를 지닐 수밖에 없다. 1980년 말에서 87년 까지 한국의 지배체제는 이러한 방식의 대응을 조건 지었다. 당시에는 합리적인 고려와 전술상의 선택을 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사회 정의 혹은 민주주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제5공화국은 하나의 전쟁의 상황이었다. 따라서 강한 도덕적 분노 및 인권과 생존을 위한 본능적 몸부림이 운동의 주요한 자원이 된다. 이 경우 집합행동은 제도화된 조직의 형태로 발전하기 보다는 단발적인 물리적인 충돌의 향상을 지니게 된다. 80년 말에서 84년 이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음모적 조직 외에 대중적인 집합행동이 나타날 수 없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통상적 의미의 집합행동이 본격화된 것은 1984년의 이른바 유화국면 이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Ⅸ. 1980년대의 근대화
우리에게 근대는 어떤 의미인가? 한 축에서는 미완성의 뒤틀린 근대를, 다른 한 측에서는 이제 넘어서야 할 탈근대 내지 반근대를 운위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 다룰 80년대에 근대란 넘어서야 할 대상이었으며, 이를 넘어서서 가야 할 목적은 분명했다. 1980년대 운동진영에서 근대를 넘어서는 사회의 전망은 사회주의로 총칭될 수 있는 대안적 사회의 패러다임이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의 뒷면에 존재했던 대중의식의 이면은 반드시 사회주의나 총체적 변혁 프로그램과 일치하지 않았다. 의식, 현상 그리고 구조란 각 차원에서 근대와 전근대(pre-modern)는 뒤섞여서 공존했으며, 이를 자로 재듯이 구분해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의식을 담지한 근대적 주체는 토대라는 사회관계의 조건으로부터 즉자적으로 환원될 수 없는 대상이며, 주체를 둘러싼 조건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응함으로써 형성되고, 파괴되며 다시 재형성되는 일련의 궤적과 과정을 거친다.
우선 우리에게 근대란 어떤 것인지, 우리가 품어 나아가야 할 근대의 실체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 먼저 전제되어야 할 사실은 근대와 전근대는 1대1로 대응하는, 혹은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자연사적으로 이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전근대라고 통칭하는 사회는 농경사회로 대표되는, 시간과 생활의 불규칙성과 계절성, 신분적 위계질서,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관계 그리고 무질서로 특징 지워 진다. 반면, 근대의 경우,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사회로 대표되며, 규칙성, 시간성, 비인격성, 경제적 지위에 따른 위계질서, 시민권, 질서화된 사회 체계 등으로 특징 지워 진다. 그 이외에도 근대는 근대의 조건, 다시 말하자면 근대국가, 시민사회의 민주화, 산업화 등으로 구분되기도 하고, 최근 한 저작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현재와의 동시대적 유사성이 구체화된 문화적 정체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하지만 근대 그리고 근대적 의식이란 밑으로부터 자율적인 힘과 노력에 의해 획득되어 지는 응축된 결과물로 파악한다.
특히, 한국에서 1980년대 그리고 그 안에 존재했던 운동이 대중의식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의식이란 대상은 양화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사회 내 존재하는 주체들이 동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민주화운동이란 집단적인 주체 혹은 운동에 의해 80년대 극적인 정치변동이 일어났고, 이는 한국사회의 근대화에 있어서 ‘결정적인 국면’이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80년대는 상당 정도로 발전했던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에 비해 뒤쳐진 혹은 억제되었던 근대적 주체들의 의식이 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표면적으로 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지향했던 근대 극복의 지향은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획득, 군부 파시즘의 퇴진, 반미-반제국주의, 강제적인 산업화의 결과로 나타난 민중의 정치/경제적인 소외 극복 등이었다. 이는 국가의 구조적 개혁과 변혁을 추구했던 거대담론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지향점이 곧바로 대중의 의식과 조응해 간 것은 분명 아니었다. 대중은 주어진, 제시된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대상이 아닌, 이를 재해석하고 자신이 위치한 사회적 존재 안에서 구체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담론은 집단적인 담화 및 집단적 정체성으로 전화되는 것이다. 바로 이 정체성이 각각의 수준에서 평균적으로 반영되는 것이 의식이다.
참고문헌
1. 권혁률, 1980년대의 민중운동과 민중신학, 한국신학연구소, 1990
2. 신명순, 1980년대 학생운동의 성격분석,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1987
3. 이수인, 행위복합성과 의도하지 않은 결과 : 1980년대 학생운동, 한국사회학회, 2008
4. 장영숙, 한국 근대변혁운동 연구와 민중사학, 상명사학회, 2008
5. 정경은, 1980년대 시대의식과 민중가요, 한국역사연구회, 2008
6. 채구묵, 1980년대 민주노동운동에서 학생 출신지식인의 역할, 학국역사연구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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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2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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