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관][볼트만 역사관][마르크스 역사관][아우구스티누스 역사관][추연 역사관]볼트만의 역사관, 마르크스(막스, 맑스)의 역사관,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의 역사관, 추연의 역사관, 이용도의 역사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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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관][볼트만 역사관][마르크스 역사관][아우구스티누스 역사관][추연 역사관]볼트만의 역사관, 마르크스(막스, 맑스)의 역사관,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의 역사관, 추연의 역사관, 이용도의 역사관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볼트만의 역사관
1. 그의 주된 관심을 20세기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2. 그는 복음이 역사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고 본다
3. 그러기에 불트만은 신교의 전통적인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 위 에 서기로 결심 한다

Ⅲ. 마르크스(막스, 맑스)의 역사관

Ⅳ.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의 역사관

Ⅴ. 추연의 역사관

Ⅵ. 이용도의 역사관

참고문헌

본문내용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러한 상징을 \'부응\'이라고 한다. {여씨춘추}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무릇 제왕이 장차 일어나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하늘이 먼저 백성들에게 상서를 보인다. 황제의 때에는 하늘이 먼저 큰 지렁이와 큰 땅강아지를 나타나게 하였다. 그래서 황제가 \'토기가 승하다\'고 하였으니 토기가 승하였기 때문에 색은 황색을 숭상하고 일은 토를 본받았다. 우왕의 때에 이르러서는 하늘이 먼저 가을 겨울이 되어도 초목이 죽지 않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우 왕이 \'목기가 승하다\'고 하였으니 목기가 승하였기 때문에 색은 청색을 숭상하고, 일은 목을 본받았다. 탕왕의 때에 이르러서는 하늘이 먼저 물 속에서 금속의 병기가 나오게 하였다. 그래서 탕 왕이 \'금기가 승하다\'라고 하였으니 금기가 승하였기 때문에 색 은 백색을 숭상하고, 일은 금을 본받았다. 문왕의 때에 이르러서 는 하늘이 먼저 불을 일어나게 하였고, 붉은 까마귀가 붉은 책을 입에 물고 주나라의 사직에 몰려들었다. 그래서 문왕이 \'화기가 승하다\'라고 하였으니 화기가 승하였기 때문에 색은 적색을 숭상 하고 일은 화를 본받았다. 화를 대신하는 것은 반드시 수일 것이니 하늘도 먼저 수기가 승하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수기가 승하 기 때문에 색은 흑색을 숭상하고, 일은 수를 본받는다. 수기가 이르렀는데도 알지 못하면 운수가 토로 옮겨질 것이다([응동]).
이 기록은 기본적으로 추연의 역사관이다.
이러한 역사관은 당대에 매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진나라는 중국을 통일한 이후 스스로 \"수덕을 얻었고\", \"수덕으로 왕이 되었다\"고 인식하였다. 그래서 진 시황은 \'수덕\'에 따라서 사회정치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흑색을 정색으로 삼고, \"수는 육을 기준으로 하였으며\", \"일은 모두 법에 의해서 결정하고, 인정과 온화함을 없애고 삭막하게 하였다({사기} [진시황본기])\"한다. 추연 일파는 모든\'덕\'이 그것에 상응하는 사회적, 정치적 조치를 가지고 있다고 인식하였던 것이며, 그것이 바로 \"통치에는 각각 올바른 제도가 있다\"는 말의 의미이다. 이러한 역사관에서 역사는 항상 변화하는 것이며, 왕조도 영원한 것이 아니다. 역사의 변동과 왕조의 교체는 인간의 의지로써는 바꿀 수 없는 힘의 지해를 받는다. 역사의 변동은 영웅의 행동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인간의 의지에 따라 바뀌는 것도 아닌 것이다. 이것은 추연 역사관의 합리적 성분이다. 그러나 그는 \'오행상승\'을 통해 왕조의 변천을 설명하였으며, 결국 역사의 변화가 순환적이라는 것을 긍정하였다. 사실 왕조의 변혁은 역사 변혁의 표면적 현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추연은 그러한 현상을 본질적인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는 또 이러한 현상을 \'오행상승\'이라는 기계적 운동의 결과로 귀결시켰다. 이것은 완전히 자연과 사회의 영역을 혼동한 것이며, 또한 역사발전의 사회적, 경제적 원인을 도외시한 것이다. 그에 따라 그것은 역사 관념론과 신비주의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서 볼 때 이러한 역사관은 지주계급의 새로운 정권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진나라는 상왕의 개혁을 거치면서 원래부터 \"일은 모두 법에 의해서 결정\"하였다. \'법\'으로써 \'예\'를 대체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정치적 조치는 \'수덕\'과 배합됨으로써 하나의 이론적 근거를 확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관은 당시의 역사발전 추세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반면 추연의 학설은 노동인민에 대한 지주계급의 통치를 위해 법적권리의 근거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후대 봉건왕조의 최고통치자들은 모두 \'하늘을 받들고 운을 이어받은 황제\'라고 자칭하였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 \'하늘의 의지\'와 오덕의 운행을 받들어서 노동인민을 통치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추연 일파의 학설은 후에 봉건 통치계급이 노동인민을 기만할 때 사용하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Ⅵ. 이용도의 역사관
글로벌 시대의 새 천년을 맞이한 현 시점에서 우리는 일제의 식민통치 기간인 1920-30년대에 불과 5년 동안 기독교의 신비주의적 대중 운동을 이끌었던 이용도(1901-1933)의 사상, 특히 그의 사회역사관을 문제시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국인들의 전형적인 신앙유형의 형성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민족이 직면하고 있던 시대적 과제에 대한 대중들의 대응양식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한국 민족이 현재와 같은 글로벌 시대에 직면하여 대응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17세기 이후로 조선왕조 사회는 집적되어온 내적 모순과 변동, 그리고 서구 문명의 도전 앞에서 성공적으로 자기 변신하는 데 실패를 거듭해 왔다. 조선 왕조가 직면한 이러한 과제는 자신의 체제와 세계관을 서구의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근대적인 것으로 재구성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근본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러한 과제는 조선 왕조가 일본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되어 버림으로써 더욱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한국 민족은 이러한 시대적 과제이외에 이민족의 지배로부터 독립이라는 또 다른 힘겨운 과제를 떠 맞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사회제도 상의 개혁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이제까지 지배적이었던 신유교적 세계관을 획기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어떻든 이용도가 주도한 기독교적 신비주의 대중 운동은 한국의 대중 속에 새로운 세계관을 확산시켜 정착되게 하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대중들의 생활 운용과 삶의 지향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말이다.
참고문헌
1. 박동인(2009), 추연의 오행상승설과 상생설의 구조와 함의,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2. 전득주(1984),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 에 대한 비판적 고찰, 청오회
3. 전성원(2006), 아우구스티누스의 종말론적 역사관, 서울시립대학교
4. 천종희(1995), 불트만의 역사이해와 비평, 총신대학교
5. 차성환(2001), 이용도의 사회·역사관, 한국문화신학회
6. Robinson James M(1965), 볼트만과 그 제자들과의 토론, 한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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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2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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