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33
-
34
-
35
-
36
-
37
-
38


본문내용
는지 개인의 의견을 서술하시오.
2. 원초적 상태가 과연 최선의 공정함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최적의 상태인가?
3. 개개인들은 모두 상이한 의견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왜 공통된 정의관을 갖게 되는가?
4. 더 큰 부정의를 피하기 위한 부정의의 묵인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가?
5.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무엇인가?
11. 인력거꾼
1.요약
하루 벌어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아찡은 새벽부터 뚱뚱이와 함께 어둡고 불결한 식당에서 이른 아침을 때우고 창고에 있는 인력거를 한 채씩 끌고 나오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아찡의 간밤의 꿈이 수상하더니 오늘은 운이 좋다. 난징에서 온 막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많아 손님도 많았던 것이다. 큰 거리로 나가자마자 미국 해군을 만나 이십 전짜리 은전이 한 푼, 동전이 열두 푼을 받았다. 기분이 좋아진 아찡은 술을 마시다 쓰러진다. 쓰러진 이유가 술 때문만이 아닌 것은 물론이었다. 아찡은 곰보 영감의 권유로 청년회의 의사를 찾아간다.
진료는 2시부터 시작된다는 말에 할 수 없이 기다리는 아찡에게 의사 대신 뚱뚱한 한 신사가 다가와 긴 설교를 하고 나가버린다. 아찡은 그의 말을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된다. 아찡은 자신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신사의 말에 잠시 기뻐하지만 다른사람이 천국에는 인력거꾼이 없다는 말에 다시 실망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의사는 오지 않는다. 그냥 거리로 나온 아찡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본다. 아찡은 자기도 모르게 점쟁이에게로 다가 간다. 점쟁이는 가장 점잔을 빼면서 관화가 조금 섞인 듯한 영파 방언으로 점의 해석을 길게 늘어놓았다. 이러쿵 저러쿵 중언부언한 해석을 다 모아 보면 대략 이러한 뜻이었다. 아찡이가 지금은 전생의 죄값으로 고생을 하지만 인제 얼마 안 있으면 돈 많이 모으고 잘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아찡은 방으로 돌아와 인력거에만 매달려왔던 8년 동안의 세월을 회상하며 죽음을 맞고, 그의 시신은 순사에 의해 치워진다. 그가 떠올렸던 인생은 모두가 다 행복한 기억은 없고 슬픈기억 그리고 탄압과 박해를 받던 기억 뿐이다. 순사들은 아찡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뿐더러 당연하게 여긴다. 인력거꾼 8년이면 오래 살았다는 것이다. 그 다음날 그의 동료 뚱뚱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인력거를 끌고 거리로 나간다. 마치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것만같이...
2.질문답변
1. 인력거꾼은 매우 사실적인 작품이다. 귀하는 이 작품이 빈민의 삶과 이에 대한 상류계층의 무관심을 대조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어떤 부분이 그러한가? 텍스트에서 그 부분들을 찾아보라. 어떤사건을 사실적으로 서술하거나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귀하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실험해보라.
의사와 순사들이 인력거꾼의 죽음을 그저 당연하게 여기는 데에서 상류계층의 사람들이 빈민에 삶을 무관심하게 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아찡은 ‘천당’을 거부한다. 왜? 텍스트에서 해당 대목을 찾아 토론해보라.
그렇다면 양귀자들과 양복 입은 젊은 사람들과 순사들은 죽은 후에는 어떤 곳으로 가는가? 그들도 예수만 믿으면 천당으로 가는가? 만일 그들도 천당으로 간다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도 고생이라곤 아니 했으니 그것은 불공평하지 않은가? 옳다. 만일 천당이라는 데가 있다면 거기서는 필시 우리 이 세상 인력거꾼들은 아까 그 사람이 말한 모양으로 금거문고나 타고 생명과를 배불리 먹고 놀고 이 세상에서 인력거를 타고 다니던 사람들은 모두 인력거꾼이 되어서 누더기를 입고 주리고 떨면서 인력거를 끌고 와서 우리를 태워 주게 되나 부다! 그렇다. 그리만 된다면 나도 한번 그들을 ‘에잇끼놈’ 하고 소리 지르면서 발길로 차고, 동전 서 푼 던져 주고, 예수 만나 보려 대문 안으로 들어가게 될 터이지. 정말 그럴까…… 하고 그는 혼자 흥분하여졌다. 그래 그 신사가 아직 있으면 천당에도 인력거꾼이 있느냐고 물어 보고 싶었다. 만일 그렇다고만 하면 그는 이제라도 어서 속히 죽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 좋은 천당으로 한시바삐 갈 것이다. 그는 호기심에 끌려서 미닫이 칸 막은 안방에서 무슨 책인지 웅얼웅얼하면서 읽고 있는 하인에게 말을 건넸다.
“여보, 영감님, 영감님두 예수 믿수?”
웅얼웅얼하던 소리가 뚝 끊기고 잠시 가만 있더니,
“네, 왜 그러우?”
한다.
“천당에두 인력거꾼이 있답디까?”
“인력거꾼? 흥, 천당에도 인력거꾼이 있으문 천당이 좋달 게 무얼꼬. 없어요.”
눈만 멀뚱멀뚱하고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도 빙그레 웃었다. 피가 뚝뚝 듣는 부러진 팔을 들고 앉았는 사람만이 아무것도 모두 귀찮다는 듯이 그냥 물끄러미 팔만 들여다보고 앉아 있었다.
아찡이는 낙망했다. 천당에는 인력거꾼이 없다! 그러면 역시 고생하는 놈은 우리들뿐인 것이다. 돈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서나 천당에서나 늘 즐거운 것뿐이니!
이 부분에서 아찡은 천당도 자신같은 인력거꾼을 받아주는 세상이 아닌 현실의 재현인 그저 양귀자들이나 부자들만 받아준다는 데에서 천당을 거부했다.
3. 아찡은 의외의 일이 생길 때마다 전날의 꿈을 떠올리면서 기독교 신사의 말에는 콧방귀를 뀌면서도 길거리 점쟁이에게는 이십 전이나 갖다 바치며 엉터리 점을 본다. 아찡의 이런 행동을 귀하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자신이 계속해서 믿어온 신앙에는 믿음을 주지만 새로운 신앙에는 믿음을 주지 않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익숙하고 편한 것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은 일단 경계하고 본다. 그래서 아찡은 기독교 신사의 말에는 콧방귀를 뀌지만 점쟁이에게는 돈을 바치는 것이다.
4.질문개발
1. 마지막에 아찡이 죽은 것을 본 뚱뚱이도 그냥 또다시 인력거를 달린다. 이러한 모습으로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2. 이 작품은 현실주의 작품으로 분류되는데 그러한 근거는 어디어디에 있을까?
3. 주요섭의 또 다른 대표작 사랑방손님과 어머니와 이 작품은 어떤 유사성이 있을까?
4. 다른 근대 리얼리즘 작품에는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
5. 왜 리얼리즘 작품의 주인공들은 암울한 결말을 맞게 되는걸까?
2. 원초적 상태가 과연 최선의 공정함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최적의 상태인가?
3. 개개인들은 모두 상이한 의견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왜 공통된 정의관을 갖게 되는가?
4. 더 큰 부정의를 피하기 위한 부정의의 묵인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가?
5.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무엇인가?
11. 인력거꾼
1.요약
하루 벌어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아찡은 새벽부터 뚱뚱이와 함께 어둡고 불결한 식당에서 이른 아침을 때우고 창고에 있는 인력거를 한 채씩 끌고 나오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아찡의 간밤의 꿈이 수상하더니 오늘은 운이 좋다. 난징에서 온 막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많아 손님도 많았던 것이다. 큰 거리로 나가자마자 미국 해군을 만나 이십 전짜리 은전이 한 푼, 동전이 열두 푼을 받았다. 기분이 좋아진 아찡은 술을 마시다 쓰러진다. 쓰러진 이유가 술 때문만이 아닌 것은 물론이었다. 아찡은 곰보 영감의 권유로 청년회의 의사를 찾아간다.
진료는 2시부터 시작된다는 말에 할 수 없이 기다리는 아찡에게 의사 대신 뚱뚱한 한 신사가 다가와 긴 설교를 하고 나가버린다. 아찡은 그의 말을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된다. 아찡은 자신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신사의 말에 잠시 기뻐하지만 다른사람이 천국에는 인력거꾼이 없다는 말에 다시 실망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의사는 오지 않는다. 그냥 거리로 나온 아찡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본다. 아찡은 자기도 모르게 점쟁이에게로 다가 간다. 점쟁이는 가장 점잔을 빼면서 관화가 조금 섞인 듯한 영파 방언으로 점의 해석을 길게 늘어놓았다. 이러쿵 저러쿵 중언부언한 해석을 다 모아 보면 대략 이러한 뜻이었다. 아찡이가 지금은 전생의 죄값으로 고생을 하지만 인제 얼마 안 있으면 돈 많이 모으고 잘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아찡은 방으로 돌아와 인력거에만 매달려왔던 8년 동안의 세월을 회상하며 죽음을 맞고, 그의 시신은 순사에 의해 치워진다. 그가 떠올렸던 인생은 모두가 다 행복한 기억은 없고 슬픈기억 그리고 탄압과 박해를 받던 기억 뿐이다. 순사들은 아찡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뿐더러 당연하게 여긴다. 인력거꾼 8년이면 오래 살았다는 것이다. 그 다음날 그의 동료 뚱뚱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인력거를 끌고 거리로 나간다. 마치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것만같이...
2.질문답변
1. 인력거꾼은 매우 사실적인 작품이다. 귀하는 이 작품이 빈민의 삶과 이에 대한 상류계층의 무관심을 대조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어떤 부분이 그러한가? 텍스트에서 그 부분들을 찾아보라. 어떤사건을 사실적으로 서술하거나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귀하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실험해보라.
의사와 순사들이 인력거꾼의 죽음을 그저 당연하게 여기는 데에서 상류계층의 사람들이 빈민에 삶을 무관심하게 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아찡은 ‘천당’을 거부한다. 왜? 텍스트에서 해당 대목을 찾아 토론해보라.
그렇다면 양귀자들과 양복 입은 젊은 사람들과 순사들은 죽은 후에는 어떤 곳으로 가는가? 그들도 예수만 믿으면 천당으로 가는가? 만일 그들도 천당으로 간다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도 고생이라곤 아니 했으니 그것은 불공평하지 않은가? 옳다. 만일 천당이라는 데가 있다면 거기서는 필시 우리 이 세상 인력거꾼들은 아까 그 사람이 말한 모양으로 금거문고나 타고 생명과를 배불리 먹고 놀고 이 세상에서 인력거를 타고 다니던 사람들은 모두 인력거꾼이 되어서 누더기를 입고 주리고 떨면서 인력거를 끌고 와서 우리를 태워 주게 되나 부다! 그렇다. 그리만 된다면 나도 한번 그들을 ‘에잇끼놈’ 하고 소리 지르면서 발길로 차고, 동전 서 푼 던져 주고, 예수 만나 보려 대문 안으로 들어가게 될 터이지. 정말 그럴까…… 하고 그는 혼자 흥분하여졌다. 그래 그 신사가 아직 있으면 천당에도 인력거꾼이 있느냐고 물어 보고 싶었다. 만일 그렇다고만 하면 그는 이제라도 어서 속히 죽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 좋은 천당으로 한시바삐 갈 것이다. 그는 호기심에 끌려서 미닫이 칸 막은 안방에서 무슨 책인지 웅얼웅얼하면서 읽고 있는 하인에게 말을 건넸다.
“여보, 영감님, 영감님두 예수 믿수?”
웅얼웅얼하던 소리가 뚝 끊기고 잠시 가만 있더니,
“네, 왜 그러우?”
한다.
“천당에두 인력거꾼이 있답디까?”
“인력거꾼? 흥, 천당에도 인력거꾼이 있으문 천당이 좋달 게 무얼꼬. 없어요.”
눈만 멀뚱멀뚱하고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도 빙그레 웃었다. 피가 뚝뚝 듣는 부러진 팔을 들고 앉았는 사람만이 아무것도 모두 귀찮다는 듯이 그냥 물끄러미 팔만 들여다보고 앉아 있었다.
아찡이는 낙망했다. 천당에는 인력거꾼이 없다! 그러면 역시 고생하는 놈은 우리들뿐인 것이다. 돈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서나 천당에서나 늘 즐거운 것뿐이니!
이 부분에서 아찡은 천당도 자신같은 인력거꾼을 받아주는 세상이 아닌 현실의 재현인 그저 양귀자들이나 부자들만 받아준다는 데에서 천당을 거부했다.
3. 아찡은 의외의 일이 생길 때마다 전날의 꿈을 떠올리면서 기독교 신사의 말에는 콧방귀를 뀌면서도 길거리 점쟁이에게는 이십 전이나 갖다 바치며 엉터리 점을 본다. 아찡의 이런 행동을 귀하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자신이 계속해서 믿어온 신앙에는 믿음을 주지만 새로운 신앙에는 믿음을 주지 않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익숙하고 편한 것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은 일단 경계하고 본다. 그래서 아찡은 기독교 신사의 말에는 콧방귀를 뀌지만 점쟁이에게는 돈을 바치는 것이다.
4.질문개발
1. 마지막에 아찡이 죽은 것을 본 뚱뚱이도 그냥 또다시 인력거를 달린다. 이러한 모습으로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2. 이 작품은 현실주의 작품으로 분류되는데 그러한 근거는 어디어디에 있을까?
3. 주요섭의 또 다른 대표작 사랑방손님과 어머니와 이 작품은 어떤 유사성이 있을까?
4. 다른 근대 리얼리즘 작품에는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
5. 왜 리얼리즘 작품의 주인공들은 암울한 결말을 맞게 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