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하기’ 전쟁
2. 에듀테인먼트의 오프라인화(化) - <마법천자문>
3. 유능한 스토리텔러들의 스토리텔링
4. 문학에서 발췌된 서사가 가진 무한한 매력
2. 에듀테인먼트의 오프라인화(化) - <마법천자문>
3. 유능한 스토리텔러들의 스토리텔링
4. 문학에서 발췌된 서사가 가진 무한한 매력
본문내용
한한 매력
서사는 기본적으로 제 2, 제 3의 결말을 만들 수 있는 변용으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서사가 언제나 문학의 그늘 아래서만 살아 숨 쉬었던 반면 변화한 사회 분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사라는 기본 개념이 가진 그 유동성에 초점을 맞추게 만들었다. 이제 서사는 문학에서 따로 발췌되어 여러 곳에서 그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칫 문학 작품으로서만 고정되고 이해될 수 있 수 있었던 ‘이야기’라는 것은 몇몇 상업적인 성공 사례를 통해 이미 그 특유의 변주성과 활용성을 인정받았다.
팔아야 할 대상인 정적이고 고정된 이미지의 상품에 특정 서사를 도입함으로써 마치 살아있고 그로써 나의 반응에 능동적으로 반응해 올 것만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역할로서의 서사, 이야기에 따른 독자들의 무한한 반응이 다시 도처에서 수 천 수 만개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그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힘으로서의 상업, 결국은 이 둘의 매력적인 조합이 오늘 날 사회를 이끌어 가는 하나의 중심축이 된 것이요 그 중 한 측면인 에듀테인먼트에 있어서의 선구자는 곧 <마법천자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마법천자문>에 대한 비판 역시 존재한다. 실제로 교육상의 효과는 거의 없다고 하기도 하고, 한 권당 한자 수를 20자로 제한한 것에 대해 뻔한 상업화의 냄새가 난다고 하는 입장도 많다. 또한 이 성공을 덮어놓고 따라하는 많은 졸속 아류작의 행태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마법천자문> 책을 중심으로 관련 한자교재, 상품이나 기획의 판매 규모가 거대해 질수록 초심의 교육적 취지를 버리고 돈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마법천자문>은 기존의 아동 학습 도서가 당연시 해오던 ‘어른들의 이야기 자체에 대한 제공’을 ‘아이들 사이에서 소통 가능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이에 따른 또 다른 이야기가 생산될 수 있도록 만드는 큰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어디에서건 콜롬버스의 달걀은 달걀이 책상에 부딪쳐 깨지기 전후로 많은 질타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종종 사람들은 달걀의 일부가 깨져 책상 위에 일자로 선 것을 보면서도 부지런히 다음 지적거리를 찾는 데 열을 올리곤 한다. 어쩌면 한국 사회는 진정한 영웅의 탄생과 그 독주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 이런 것을 통해서도 확인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법천자문>의 독주와 함께 계속해서 관련 비판이 나오고 있고, 그 대부분이 상업적 부분과 맞닿아 있는데 이는 남보다 한 발 빨리 서사가 가진 힘을 파악해서 비즈니스에 성공적으로 적용한 사실에 대한 어느 정도의 부러움이 적용했음을 부정할 순 없을 것 같다. 어찌되었든 이제 서사가 갈 수 있는 곳은 말 그대로 ‘그 어디든지 불러만 주신다면’ 이 되어 버렸다. 아동 출판계에서 그 선구자적 역할을 힘들게 치러 낸 <마법천자문>의 유쾌한 비상에 박수를 보내며, 이제는 또 어느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서사를 활용해 낼 지가 기대되는 시점이다.
※ 관련 출처는 각주로 대체함
서사는 기본적으로 제 2, 제 3의 결말을 만들 수 있는 변용으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서사가 언제나 문학의 그늘 아래서만 살아 숨 쉬었던 반면 변화한 사회 분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사라는 기본 개념이 가진 그 유동성에 초점을 맞추게 만들었다. 이제 서사는 문학에서 따로 발췌되어 여러 곳에서 그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칫 문학 작품으로서만 고정되고 이해될 수 있 수 있었던 ‘이야기’라는 것은 몇몇 상업적인 성공 사례를 통해 이미 그 특유의 변주성과 활용성을 인정받았다.
팔아야 할 대상인 정적이고 고정된 이미지의 상품에 특정 서사를 도입함으로써 마치 살아있고 그로써 나의 반응에 능동적으로 반응해 올 것만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역할로서의 서사, 이야기에 따른 독자들의 무한한 반응이 다시 도처에서 수 천 수 만개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그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힘으로서의 상업, 결국은 이 둘의 매력적인 조합이 오늘 날 사회를 이끌어 가는 하나의 중심축이 된 것이요 그 중 한 측면인 에듀테인먼트에 있어서의 선구자는 곧 <마법천자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마법천자문>에 대한 비판 역시 존재한다. 실제로 교육상의 효과는 거의 없다고 하기도 하고, 한 권당 한자 수를 20자로 제한한 것에 대해 뻔한 상업화의 냄새가 난다고 하는 입장도 많다. 또한 이 성공을 덮어놓고 따라하는 많은 졸속 아류작의 행태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마법천자문> 책을 중심으로 관련 한자교재, 상품이나 기획의 판매 규모가 거대해 질수록 초심의 교육적 취지를 버리고 돈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마법천자문>은 기존의 아동 학습 도서가 당연시 해오던 ‘어른들의 이야기 자체에 대한 제공’을 ‘아이들 사이에서 소통 가능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이에 따른 또 다른 이야기가 생산될 수 있도록 만드는 큰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어디에서건 콜롬버스의 달걀은 달걀이 책상에 부딪쳐 깨지기 전후로 많은 질타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종종 사람들은 달걀의 일부가 깨져 책상 위에 일자로 선 것을 보면서도 부지런히 다음 지적거리를 찾는 데 열을 올리곤 한다. 어쩌면 한국 사회는 진정한 영웅의 탄생과 그 독주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 이런 것을 통해서도 확인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법천자문>의 독주와 함께 계속해서 관련 비판이 나오고 있고, 그 대부분이 상업적 부분과 맞닿아 있는데 이는 남보다 한 발 빨리 서사가 가진 힘을 파악해서 비즈니스에 성공적으로 적용한 사실에 대한 어느 정도의 부러움이 적용했음을 부정할 순 없을 것 같다. 어찌되었든 이제 서사가 갈 수 있는 곳은 말 그대로 ‘그 어디든지 불러만 주신다면’ 이 되어 버렸다. 아동 출판계에서 그 선구자적 역할을 힘들게 치러 낸 <마법천자문>의 유쾌한 비상에 박수를 보내며, 이제는 또 어느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서사를 활용해 낼 지가 기대되는 시점이다.
※ 관련 출처는 각주로 대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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