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 김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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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관 김복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이른 작품으로 탄생하였다. 족두리에 비녀를 꽂고 한복 차림을 한 단아한 조선 여성상 ,백화>는 김복진의 난만한 기량이 흘러넘친다. 그 특징은 옷이 둔하거나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한복의 풍만함과 달리 위 아래로 길게 흘러내린 날렵함에 있다. 소매가 둥글지 않고, 치마는 주름이 쭉 뻗어 내려와 수직의 시원함이 돋보인다. 얼굴도 순종적인 여인상이 아니라 곧고 야멸차 보인다. 곧은 야멸참 그리고 날렵하고 시원스러움을 안고 있는 <백화>는 보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아낌없이 뿜어준다. 이러한 조형적 특성은 녹슨 향토성, 민족성이 어떻게 근대 민족 사회에서 되살아 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김복진의 근대적 세계관과 진보적 미학사상 그리고 동세의 미학이 바탕에 깔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복진은 식민지 조선 사회를 넘어 인류의 근대가 지향하는 진보적 역동성을 넉넉하게 체현하고 있었으며 그의 창작은 그런 세계관의 형상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 향토성과 민족성의 완성
김복진은 향토성이나 민족성을 터무니 없이 찌들고 기교적이지도 않으며 순종적이고 슬픈 것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하며 참된 향토성, 민족성이란 그 민족의 생활 및 그 감정과 미의식으로부터 그 사회의 철학적 특성이 꽃피울 때라야 제대로 드러나고 또 시대에 따라 변화 발전하면서 창조되는 것이라 하였다. 김복진에게 있어서 향토성은 감상벽을 자극하고 박제화된 과거에의 집착으로서의 토속적인 물건이나 대상에 대한 환기가 아니라 민족이 공유할 수 있는 정서적 토양을 일컫는 것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김복진의 인식은, 일찍이 청년 시절부터 비판적으로 고민해 오던 향토성, 민족성 문제를 바로 이 때 체계적인 논리로 끌어올렸음을 뚜렷하게 증명해 주는 증거인 것이다. 이시기 창작으로 그것을 증명해 보여준 것이 목조 전신상 <백화>였다. 그 <백화>는 김복진이 세상을 뜬 뒤에도 세상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부인 허하백이 작품에 검은 천을 붙여 1941년 제 20회 조선미술전람회 조각 전시실에 특별 출품을 했던 것이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은 작품 안에서 김복진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 결 론
- 여성의 아름다움에 묶여 있지 않은 예술관
- “사람에게는 각각 남이 갖지 못한 특징이 있으니까 그 특징을 발견하여 그것에 매력 을 가지면 될 것”
- 이러한 여성나체작품에 대한 예술 사상은 그의 여성에 대한 죄의식에서 비롯 되었다고 추측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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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9.23
  • 저작시기2013.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8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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