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복잡성의 증가와 한계 생산성
1. 복잡성의 증가란 무엇인가?
2. 한계 생산성이란 무엇인가?
3. 복잡성의 증가와 한계 생산성의 상관관계
Ⅱ. 복잡한 사회의 한계 수익 저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Ⅲ. 붕괴의 종합적 설명
1. 붕괴의 설명
2. 붕괴를 피하는 길
Ⅳ. 서로마의 붕괴
1. 서로마의 여러 붕괴 요인들
2. 서로마의 붕괴와 한계생산성 감소
1. 복잡성의 증가란 무엇인가?
2. 한계 생산성이란 무엇인가?
3. 복잡성의 증가와 한계 생산성의 상관관계
Ⅱ. 복잡한 사회의 한계 수익 저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Ⅲ. 붕괴의 종합적 설명
1. 붕괴의 설명
2. 붕괴를 피하는 길
Ⅳ. 서로마의 붕괴
1. 서로마의 여러 붕괴 요인들
2. 서로마의 붕괴와 한계생산성 감소
본문내용
의 관리, 빈민 구호소 운영, 도로, 궁전, 창고 등을 건설하는 데 계속 돈이 들어갔습니다. 군대의 규모와 운영비는 늘어갔고 원정비용도 줄어들 줄을 몰랐습니다. 정부의 재정 지출 규모는 곱절로 늘어났을 것입니다. 계속 늘어나는 지출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세금을 더 많이 거두고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기 248년~268년 사이에는 특히나 야만족의 침공이 빈번해서 농민들은 살해되거나,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로마군도 인플레이션 때문에 필요한 물자를 현지 농민들에게서 수탈했습니다. 또 흑사병(250~270)으로 인해서 인구도 많이 감소하고 농촌은 점차 피폐해져 갔습니다.
④디오클레티아누스
이 시대의 로마 제국은 크고 복잡하고 고도로 조직화된 정부를 가지고 있었고 막강한 대규모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시민들에게 중과세를 하였고 그들의 노동력을 동원하였으며 생활과 직업을 통제하였습니다. 정부는 개인들의 이익을 억누르고 국가의 생존이라는 대명제 아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면서 강압적으로 군림하였습니다. 행정기구를 확대하고 전문화 하였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군사력을 증대 시켰습니다. 서기 235년 이전까지 30만 남짓하던 병력이 디오클레티아누스 때에는 50만에서 60만사이로 불어났습니다. 로마 제국은 전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국방력도 증대되었지만 그 만큼 비용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수많은 변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위기에 혼자 힘으로 대처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여 로마 제국을 동서로 나뉘어 통치하는 제도를 고안하였습니다. 또 기존의 속주를 잘게 분할하여 속주의수를 크게 늘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관료조직은 비대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또 이 조직을 유지하는데의 비용도 늘어납니다.
⑤그 이후
인구 감소 및 노동력 부족 현상과 함께 놀리는 땅도 예전에 비해 크게 늘어났습니다. 농지가 방치된 원인으로는 토질의 저하, 노동력의 부족, 야만족의 침입 같은 요인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 외에도 가혹한 세금이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합니다. 비대한 정부와 군대 조직의 유지비용으로 세금이 원래 내는 것보다 2배정도 더 내어야 했습니다. 또한 높은 세율 못지않게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경직된 징수 체계도 문제였습니다. 그것은 토질이나 작황의 좋고 나쁨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제도였습니다. 농지의 넓이와 거주인의 수에 따라서 일률적으로 세금이 매겨졌습니다. 국가는 본인이 세금을 못 냈을 경우 미망인이나 자식에게까지 의무를 전가시켰으며 심지어는 결혼 지참금까지 우려냈습니다. 한번 정해진 세금과 지대는 꼭 내야했으며 흉년이 들어 먹을 양식이 부족해도 칼같이 거두어갔습니다. 세금을 못 내면 집과 땅을 빼앗기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자식이 노예로 팔려 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가족이 형성되기에는 더없이 불리한 조건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아도는 땅을 경작한다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었습니다. 농사를 지어봐야 남기는커녕 세금 내기에도 모자랄 판이었습니다. 자연히 버려지는 땅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서로마 제국의 발렌티니아누스 2세는 여전히 혹독한 세금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5세기 초엽에는 서로마 각지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 군대를 동원해서야 가까스로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서로마 제국의 인적물적 자원이 위축되면서 침입자들은 간단히 제국 안으로 치고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서로마 제국의 군사적 후퇴는 다시 재정을 악화시켰습니다. 야만족의 침략을 받아 초토화된 지역에는 세금을 대폭 면제해주어야 했고, 행정망은 곳곳에서 붕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라가 혼란하고 약해진 틈을 타서 게르만족의 이동은 로마에 큰 치명타를 안겼습니다. 처음에 로마는 자국에서 군대에 지원하는 사람의 수가 적어서 그들을 용병으로 고용했습니다. 하지만 후에 발렌티아누스 3세가 사망한 후로 정부는 야만족의 군대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대가를 돈으로 치를 수 없게 되자 야만족은 이탈리아의 영토를 요구했지만, 이것이 거절당하자 그들은 반한을 일으키고 오도아케르를 자신들의 왕으로 선출하고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476년에 폐위시키고 이로써 서로마 제국은 붕괴하게 됩니다.
*한계생산성과 로마의 붕괴
로마의 팽창 정책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 중반부터 막대한 금과 은이 로마의 국고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로마는 점령 지역에서 나오는 돈을 가지고 새로운 원정에 나섰고 이러한 팽창 정책의 투자 수익률은 한동안 엄청나게 높았습니다.
그러나 높은 수익률은 영원히 유지되지 않습니다. 첫째, 이익을 크게 남길 수 있는 정복지의 수는 점차 줄어듭니다. 지리적 확대를 추구하는 국가는 자기 못지않게 만만치 않은 경쟁자를 불원간 만나게 됩니다. 영토를 확장하다 보면 그 이상 정복을 하고 수비대를 주둔시키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그런 경계선이 나타나게 됩니다. 둘째, 물자 수송과 통신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할 때 수도와의 거리가 너무나 먼 땅은 통치하기 어렵게 됩니다. 점령의 어려움과 통치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팽창 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언젠가는 옵니다. 셋째, 일단 정복한 땅에 축적되어 있던 자원을 이용하고 나면 정복자는 행정, 주둔, 방어에 드는 비용을 부담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지리적 팽창은 비록 처음에는 성공을 거두어서 아주 높은 한계수익을 기록한다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불가피하게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정복지에서 들어오는 막대한 부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된 행정 조직은 어느 정도 시일이 흐르면 농업 생산물에 기반을 둔 로마 제국의 예산으로 꾸려나가야 했습니다. 행정조직이 비대해짐에 따라 지출되는 비용은 매년 늘어나는데 국가의 수입은 농사 작황에 따라 가변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정치적 여건도 점점 로마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였습니다. 현상 유지를 하는 데만도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었고 투자의 한계 수익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재정은 약화되었고 이는 군사력의 약화를 초래하였으며 군사력의 약화는 다시 토지와 인구의 상실을 가져왔습니다. 이에 붕괴는 불가피해졌고 로마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습니다.
④디오클레티아누스
이 시대의 로마 제국은 크고 복잡하고 고도로 조직화된 정부를 가지고 있었고 막강한 대규모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시민들에게 중과세를 하였고 그들의 노동력을 동원하였으며 생활과 직업을 통제하였습니다. 정부는 개인들의 이익을 억누르고 국가의 생존이라는 대명제 아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면서 강압적으로 군림하였습니다. 행정기구를 확대하고 전문화 하였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군사력을 증대 시켰습니다. 서기 235년 이전까지 30만 남짓하던 병력이 디오클레티아누스 때에는 50만에서 60만사이로 불어났습니다. 로마 제국은 전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국방력도 증대되었지만 그 만큼 비용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수많은 변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위기에 혼자 힘으로 대처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여 로마 제국을 동서로 나뉘어 통치하는 제도를 고안하였습니다. 또 기존의 속주를 잘게 분할하여 속주의수를 크게 늘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관료조직은 비대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또 이 조직을 유지하는데의 비용도 늘어납니다.
⑤그 이후
인구 감소 및 노동력 부족 현상과 함께 놀리는 땅도 예전에 비해 크게 늘어났습니다. 농지가 방치된 원인으로는 토질의 저하, 노동력의 부족, 야만족의 침입 같은 요인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 외에도 가혹한 세금이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합니다. 비대한 정부와 군대 조직의 유지비용으로 세금이 원래 내는 것보다 2배정도 더 내어야 했습니다. 또한 높은 세율 못지않게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경직된 징수 체계도 문제였습니다. 그것은 토질이나 작황의 좋고 나쁨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제도였습니다. 농지의 넓이와 거주인의 수에 따라서 일률적으로 세금이 매겨졌습니다. 국가는 본인이 세금을 못 냈을 경우 미망인이나 자식에게까지 의무를 전가시켰으며 심지어는 결혼 지참금까지 우려냈습니다. 한번 정해진 세금과 지대는 꼭 내야했으며 흉년이 들어 먹을 양식이 부족해도 칼같이 거두어갔습니다. 세금을 못 내면 집과 땅을 빼앗기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자식이 노예로 팔려 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가족이 형성되기에는 더없이 불리한 조건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아도는 땅을 경작한다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었습니다. 농사를 지어봐야 남기는커녕 세금 내기에도 모자랄 판이었습니다. 자연히 버려지는 땅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서로마 제국의 발렌티니아누스 2세는 여전히 혹독한 세금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5세기 초엽에는 서로마 각지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 군대를 동원해서야 가까스로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서로마 제국의 인적물적 자원이 위축되면서 침입자들은 간단히 제국 안으로 치고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서로마 제국의 군사적 후퇴는 다시 재정을 악화시켰습니다. 야만족의 침략을 받아 초토화된 지역에는 세금을 대폭 면제해주어야 했고, 행정망은 곳곳에서 붕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라가 혼란하고 약해진 틈을 타서 게르만족의 이동은 로마에 큰 치명타를 안겼습니다. 처음에 로마는 자국에서 군대에 지원하는 사람의 수가 적어서 그들을 용병으로 고용했습니다. 하지만 후에 발렌티아누스 3세가 사망한 후로 정부는 야만족의 군대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대가를 돈으로 치를 수 없게 되자 야만족은 이탈리아의 영토를 요구했지만, 이것이 거절당하자 그들은 반한을 일으키고 오도아케르를 자신들의 왕으로 선출하고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476년에 폐위시키고 이로써 서로마 제국은 붕괴하게 됩니다.
*한계생산성과 로마의 붕괴
로마의 팽창 정책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 중반부터 막대한 금과 은이 로마의 국고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로마는 점령 지역에서 나오는 돈을 가지고 새로운 원정에 나섰고 이러한 팽창 정책의 투자 수익률은 한동안 엄청나게 높았습니다.
그러나 높은 수익률은 영원히 유지되지 않습니다. 첫째, 이익을 크게 남길 수 있는 정복지의 수는 점차 줄어듭니다. 지리적 확대를 추구하는 국가는 자기 못지않게 만만치 않은 경쟁자를 불원간 만나게 됩니다. 영토를 확장하다 보면 그 이상 정복을 하고 수비대를 주둔시키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그런 경계선이 나타나게 됩니다. 둘째, 물자 수송과 통신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할 때 수도와의 거리가 너무나 먼 땅은 통치하기 어렵게 됩니다. 점령의 어려움과 통치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팽창 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언젠가는 옵니다. 셋째, 일단 정복한 땅에 축적되어 있던 자원을 이용하고 나면 정복자는 행정, 주둔, 방어에 드는 비용을 부담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지리적 팽창은 비록 처음에는 성공을 거두어서 아주 높은 한계수익을 기록한다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불가피하게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정복지에서 들어오는 막대한 부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된 행정 조직은 어느 정도 시일이 흐르면 농업 생산물에 기반을 둔 로마 제국의 예산으로 꾸려나가야 했습니다. 행정조직이 비대해짐에 따라 지출되는 비용은 매년 늘어나는데 국가의 수입은 농사 작황에 따라 가변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정치적 여건도 점점 로마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였습니다. 현상 유지를 하는 데만도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었고 투자의 한계 수익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재정은 약화되었고 이는 군사력의 약화를 초래하였으며 군사력의 약화는 다시 토지와 인구의 상실을 가져왔습니다. 이에 붕괴는 불가피해졌고 로마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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