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의 정자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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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담양의 정자 문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답사 동기


2. 소쇄원과 그 주변 정자들
⓵ 소쇄원
⓶ 식영정
⓷ 환벽당

3. 가사문학관
⓵ 담양에서 지어진 18편의 가사
⓶ 면양집의 송순
⓷ 송강집의 정철
4. 답사 후기

본문내용

문시가의 방향과 발전의 지표를 제시하였던 훌륭한 인물이다. 시문집으로 면양집이 전한다.
<면양집 속편>
: 면양집에서 빠진 송순의 서문을 속편으로 엮은 책
<면양집>
송강집의 정철
정철(1536~1593)은 조선 시대 중기의 문인으로 가사문학의 대가이다. 자는 계함, 호는 송강, 시호는 문청이다.
10세 때 을사사화를 만나 가문이 사화에 휩쓸리는 풍파를 겪었으며 16세가 되던 해부터 전라도 창평에서 생활하였다. 이 때부터 당시의 석학이던 김윤제·양응정 등의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였으며 면양정·환벽당·식영정·소쇄원을 무대로 송순·임억령·양산보·양응정·김성원·기대승·고경명 등 당시의 명사들을 종유하며 장차 문인 또는 정치가로서 성공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27세에 문과 별시에 급시하여 성균관 전적이 되었고 이후 좌의정에 이르기까지 내외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는데, 한때 별슬살이의 파란 속에서 물러나 주로 담양에 있는 식영정과 송강정에 머물며 시가를 창작하기도 하였다.
그는 가사의 걸작으로 일컫는 성산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관동별곡을 비롯하여 장진주사 등 많은 시조를 제작하여 국문학상 대표적인 시가시인으로 칭송된다. 유고집으로 송강집·송강가사·송강별집추록 등이 있다.
<송강선조유필> : 송강 정철의 친필을 모은 책이다. 56세 때인 1591년 강계로 유배되어 가시울타리 내에서 살던 귀양살이 중에 독서하면서 그 횟수를 동그라미로 표시한 부분이 있다.
4. 답사 후기
광주에서 담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사문학관에서 내리며 처음 느꼈던 것은 공기가 맑다는 것이었다. 다리만 건너면 광주 북구일 정도로 가까운 곳이었지만 공기만큼은 달리 느껴졌다.
내가 소쇄원과 그 주변에 있는 정자들을 가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처음 가본 것은 3년 전이였다. 그때는 봄이라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번에 본 모습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봄에 보았던 소쇄원의 모습도 좋았으나 가을에 보니 다른 느낌을 주었다. 왜 소쇄원 안의 정자들이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또한 소쇄원 안 계곡에서 다람쥐가 있는 모습을 보고 아직도 오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이곳에서 지낸다면 공부하고픈 마음이 절로 생길 것 같았다.
소쇄원 근처에 있는 많은 정자들도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우선 식영정의 경우, 예전에는 발견하지 못하였던 ‘송강 정철 가사의 터 비’와 근처까지 가보지는 않았지만 김성원이 머물렀던 서하당도 발견하였다.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갔던 답사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태까지 갔던 답사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돈이 부족해서 식당 창문에 붙어서 가격표를 보면서 고민하기도 하고,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는지 보살 한분께서 우리에게 바나나 두 개와 과자를 주고 가시기도 하는 등 재밌는 일도 많았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길을 잘 몰라서 환벽당은 갔지만 그 근처에 있다는 취가정까지는 가지 못했다. 또한 너무 멀어 면양정은 가보지 못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번에 가보지 못했던 취가정과 면양정까지 가보는 것이 내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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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4.14
  • 저작시기2014.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13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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