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서, 비록 당시로서는 큰 성읍이기는 하여도 사흘 동안 걸어야 할 만큼 세인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그토록 거국적인 회개 왕으로부터 마굿간의 가축에까지 모두 회개하는 그런 회개
를 한 적은 “결코”(!)없었던 악명 높은 침략제국이었기 때문에 요나가 기원전 8세기에 니느웨 선교에 나섰던 인물이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하겠다.
요나서 본문의 내적 증거(internal evidence)에 의하면, “요나”라는 인물은 에스라 개혁(기원 전 5세기)의 영향을 받아 이방 나라에 대하여서는 배타적 감정으로 굳어진 민족주의적 배타정신이 포로 후기 백성의 마음을 지배하였던 때에 선민(選民) 유대민족의 정서를 대변(!) 또는 상징(!)하는 인물로 철저히 각색(脚色)된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밋대의 아들”이라는 언급, 즉 아버지 “아밋대”에 대한 언급 이외에는 그의 캐릭터(character)를 설명해 줄 역사적 자료는 전혀 없는 인물이다.
“아밋대”라는 말은 “진리”('에멧'의 구문태)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요나”라는 인물의 각색성(脚色性)을 고려하면, 그는 이 이야기 전체에서 “진리의 아들”이라는 특별한 자부심을 가진 배타적(排他的) 선민의식의 소유자요 그런 소신이 남다르게 강한(니느웨 선교를 거부하고 니느웨 행이 아닌 다시스[스페인 동해안의 이방 땅]행 배를 탄) 자로서, 이 역할을 하기 위하여 특별히 선별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Armor D. Peisker 비콘 성경 주석 P.183 1987 보이스사
역시 ‘요나서의 저자와 연대는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본서는 요나에 관한 내용이지만 그러나 반드시 요나가 기록한 책은 아니다. 우리는 누가 기록했는지에 관해 아무런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그 이야기가 언제 처음 기록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기록은 아마도 B.C. 721년경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 이전에 혹은 B.C. 612년경 니느웨의 멸망 직전에 나타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B.C. 612년이 지나서 비로소 본서가 현재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결론은 때때로 과거시제 "-였다"(was)가 니느웨를 묘사하는데서(3:3) 사용된다는 사실에서 내려졌다.
결론 : 해석 방법의 차이는 ‘저자와 저작시기에 대한 전제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요나서에 대한 기본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신화적 접근이다. 이는 요나를 로빈슨 크루소나 「걸리버 여행기」라는 이야기에 나오는 걸리버, 혹은 헤라클레스와 같이 실제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전설적인 인물에 근거해서 지어낸 이야기라 여기는 자유로운 해석 방법이다.
두 번째는 우의적(혹은 비유적) 접근이다. 이는 요나서를 단지 넓은 의미의 비유라고 해석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요나는 실제의 이스라엘인이며, 바다는 이방 나라 전체이다. 그리고 고기는 바벨론 포로기이다. 토해냄은 에스라 시대 때의 귀환이다. 요나서의 특징은 포로기 이후 에스라, 느헤미야의 배타적인 유대적의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니느웨성은 하나님의 복음에 의한 각성을 기다리는 비유적 세계를 나타낸다. 이 비유는 죄를 회개할 사람에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묘사하고 있다.
또한 요나는 하나님의 진리를 이방에 선포하는 이스라엘의 선교적 사명과 동일시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벨론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포로로 끌어갔다. 이것이 요나를 삼켰던 큰 물고기가 상징하는 것이다. 또한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낸 것이 바벨론 포로로부터 이스라엘이 귀환할 것을 상징한다. 이방인들의 회개에 대한 요나의 불만은 귀환 후의 배타적 유대주의 정신의 발로가 된다.
"분명히 요나서는 실제의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며, 또한 그와 같은 의도로 쓰여진 책도 아니다. 작자가 시로서 쓴 것을 문자적 산문으로 다루는 것은 저자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요나의 이야기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처럼 도덕과 비유와 산문시가 들어있는 이야기" 줄리어스 뷰어, 「국제 비판 주석」
라는 입장이다.
세 번째는 문자적 역사적 접근이다. 문자적 역사적인 접근이 개혁주의적인 요나서의 해석 방법이다. 실제 인물인 요나가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일들을 직접 체험했으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을 통하여 열방이 복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을 이방에 전달하려는 이스라엘의 선교적 임무를 부분적으로 달성했다는 것이다. 이는 성경의 언급 자체가 실제의 역사를 나타낸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또한 유대인들과 초대 교회는 이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믿었으며, 열왕기하의 저자는 요나를 역사적 인물로서 언급한다(왕하 14:25). 외경에도 역시 요나의 고향과 그의 아버지의 이름 및 그의 활약 당시 왕의 이름이 나와 있으며, 그러므로 요나서는 역사적인 기록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요나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인용하신다(마 12:38-41; 마16:4; 눅 11:29-32). 그러므로 ‘요나서는 실제의 역사로 받아들여야한다’는 입장이다.
요나서의 저작자와 저작시기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요나서를 대하는 태도와 해석방법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시대적 상황과 환경을 이해하는 것은 성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성경 본문을 통하여 말씀을 이해했을 지라도 말씀이 역사적인 상황가운데서 주어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저자와 저작시기에 대하여 무관심하다는 것은 반쪽만의 성경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무오하며 오류가 없다. 그러나 오늘날 성경은 역사적인 부분에서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리 조는 본 연구를 통해 역사적인 성경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존 칼빈, 칼빈주석, (성서교제 간행사. 1992)
박윤선, 성경주석 소선지서, (서울: 영음사. 1971)
Armor D. Peisker, H. Ray Dunning, 비콘 성경 주석, (보이스사. 1993)
Joseph S. Exell, 강해설교연구대계-구약, (서울: 기독지혜사. 1984)
를 한 적은 “결코”(!)없었던 악명 높은 침략제국이었기 때문에 요나가 기원전 8세기에 니느웨 선교에 나섰던 인물이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하겠다.
요나서 본문의 내적 증거(internal evidence)에 의하면, “요나”라는 인물은 에스라 개혁(기원 전 5세기)의 영향을 받아 이방 나라에 대하여서는 배타적 감정으로 굳어진 민족주의적 배타정신이 포로 후기 백성의 마음을 지배하였던 때에 선민(選民) 유대민족의 정서를 대변(!) 또는 상징(!)하는 인물로 철저히 각색(脚色)된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밋대의 아들”이라는 언급, 즉 아버지 “아밋대”에 대한 언급 이외에는 그의 캐릭터(character)를 설명해 줄 역사적 자료는 전혀 없는 인물이다.
“아밋대”라는 말은 “진리”('에멧'의 구문태)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요나”라는 인물의 각색성(脚色性)을 고려하면, 그는 이 이야기 전체에서 “진리의 아들”이라는 특별한 자부심을 가진 배타적(排他的) 선민의식의 소유자요 그런 소신이 남다르게 강한(니느웨 선교를 거부하고 니느웨 행이 아닌 다시스[스페인 동해안의 이방 땅]행 배를 탄) 자로서, 이 역할을 하기 위하여 특별히 선별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Armor D. Peisker 비콘 성경 주석 P.183 1987 보이스사
역시 ‘요나서의 저자와 연대는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본서는 요나에 관한 내용이지만 그러나 반드시 요나가 기록한 책은 아니다. 우리는 누가 기록했는지에 관해 아무런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그 이야기가 언제 처음 기록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기록은 아마도 B.C. 721년경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 이전에 혹은 B.C. 612년경 니느웨의 멸망 직전에 나타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B.C. 612년이 지나서 비로소 본서가 현재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결론은 때때로 과거시제 "-였다"(was)가 니느웨를 묘사하는데서(3:3) 사용된다는 사실에서 내려졌다.
결론 : 해석 방법의 차이는 ‘저자와 저작시기에 대한 전제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요나서에 대한 기본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신화적 접근이다. 이는 요나를 로빈슨 크루소나 「걸리버 여행기」라는 이야기에 나오는 걸리버, 혹은 헤라클레스와 같이 실제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전설적인 인물에 근거해서 지어낸 이야기라 여기는 자유로운 해석 방법이다.
두 번째는 우의적(혹은 비유적) 접근이다. 이는 요나서를 단지 넓은 의미의 비유라고 해석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요나는 실제의 이스라엘인이며, 바다는 이방 나라 전체이다. 그리고 고기는 바벨론 포로기이다. 토해냄은 에스라 시대 때의 귀환이다. 요나서의 특징은 포로기 이후 에스라, 느헤미야의 배타적인 유대적의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니느웨성은 하나님의 복음에 의한 각성을 기다리는 비유적 세계를 나타낸다. 이 비유는 죄를 회개할 사람에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묘사하고 있다.
또한 요나는 하나님의 진리를 이방에 선포하는 이스라엘의 선교적 사명과 동일시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벨론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포로로 끌어갔다. 이것이 요나를 삼켰던 큰 물고기가 상징하는 것이다. 또한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낸 것이 바벨론 포로로부터 이스라엘이 귀환할 것을 상징한다. 이방인들의 회개에 대한 요나의 불만은 귀환 후의 배타적 유대주의 정신의 발로가 된다.
"분명히 요나서는 실제의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며, 또한 그와 같은 의도로 쓰여진 책도 아니다. 작자가 시로서 쓴 것을 문자적 산문으로 다루는 것은 저자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요나의 이야기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처럼 도덕과 비유와 산문시가 들어있는 이야기" 줄리어스 뷰어, 「국제 비판 주석」
라는 입장이다.
세 번째는 문자적 역사적 접근이다. 문자적 역사적인 접근이 개혁주의적인 요나서의 해석 방법이다. 실제 인물인 요나가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일들을 직접 체험했으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을 통하여 열방이 복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을 이방에 전달하려는 이스라엘의 선교적 임무를 부분적으로 달성했다는 것이다. 이는 성경의 언급 자체가 실제의 역사를 나타낸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또한 유대인들과 초대 교회는 이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믿었으며, 열왕기하의 저자는 요나를 역사적 인물로서 언급한다(왕하 14:25). 외경에도 역시 요나의 고향과 그의 아버지의 이름 및 그의 활약 당시 왕의 이름이 나와 있으며, 그러므로 요나서는 역사적인 기록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요나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인용하신다(마 12:38-41; 마16:4; 눅 11:29-32). 그러므로 ‘요나서는 실제의 역사로 받아들여야한다’는 입장이다.
요나서의 저작자와 저작시기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요나서를 대하는 태도와 해석방법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시대적 상황과 환경을 이해하는 것은 성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성경 본문을 통하여 말씀을 이해했을 지라도 말씀이 역사적인 상황가운데서 주어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저자와 저작시기에 대하여 무관심하다는 것은 반쪽만의 성경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무오하며 오류가 없다. 그러나 오늘날 성경은 역사적인 부분에서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리 조는 본 연구를 통해 역사적인 성경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존 칼빈, 칼빈주석, (성서교제 간행사. 1992)
박윤선, 성경주석 소선지서, (서울: 영음사. 1971)
Armor D. Peisker, H. Ray Dunning, 비콘 성경 주석, (보이스사. 1993)
Joseph S. Exell, 강해설교연구대계-구약, (서울: 기독지혜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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