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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가는 곳의 정점에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십자가가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피를 흘리시면서 이루신 일이 결과가 복음의 가장 핵심이다. 여기에 어긋나는 것, 다르게 해석은 어떤 경우에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이것을 해석하는 유일한 방법은 구약과 신약을 같이 읽는 구속사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구약이 없으면 왜 피여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시면서 한 일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화목(reconciliation-관계성의 언어)’이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 ‘화목제물’을 말할 때 사용되었다.
2) 누가 화목될 필요가 있는가?[21] - 친구 사이는 화목할 필요가 없고 원수관계, 즉 망가진 관계가 화목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유지하시기 위해 세 가지 직분을 주셨고 그것이 다 망가져서 예수께서 친히 오셔서 하신 일이 결국 피흘림인데, 그 피가 왕이신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화목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백성 간의 관계의 완성은 바로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라는 화목이다. 21절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는 20절에서 나오는 만물의 일부이다.
3) 구속의 대상
ⅰ) 구속된 것은 만물이다. 창조와 관계되지 않고 구속을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조하신 것을 구속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기 그 종류대로 만드신 모든 창조물들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버리시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자신이 만드신 것을 다 원하시는 대로 그 목적을 이루실 때까지 최선을 다해 끝까지(ενεργεω) 붙잡으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의 방주에 모든 종류의 동물들을 다 태워야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노아방주 안에는 10명도 안되는 사람을 위한 공간은 겨우 몇 평 정도일 텐데, 동물들을 위한 공간은 방주의 거의 대부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웃는 상황 속에서 사람 10명만 타는 멋진 호화보트를 만든 것이 아니라 각기 그 종류대로 모든 동물들을 다 태우는 큰 배를 만들었던 것이다.
ⅱ) 창조, 구속, 구속을 위한 계획, 노아 방주, 그 속에서 구약을 이끌어가는 모든 이야기,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안에 있는 사람들, 구속하는 방법, 구속하신 결과는 창조로 관련할 때에만 설명될 수 있다. 이것이 복음의 넓은 의미이다. 그래서 만물의 으뜸 되신 창조주, 교회의 머리되신 구세주 예수는 사람만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온 우주의 그리스도(Cosmic Christ)이시다.
ⅲ) 예수님이 온 우주와 세상의 그리스도라면 우리도 ‘우주의 빛 땅의 소금’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만 온 우주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의해 구원받은 우리들도 우주와 땅에 관련되었다. ‘정복하고 다스려라’하는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일의 소명은, 물론 죄에 의해 왜곡되고 온전하게 할 능력을 잃어버렸지만, 우리가 빛으로 산다면 그 우주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주로 회복되어 갈 것이고, 땅에서 소금으로 산다면 그 땅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땅이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때부터 지금까지 분명한 사실은 창조와 구속은 함께 연결되고 같이 가야한다는 것이다.
4) 삶의 태도[고후5:17-19] - 인간은 누구인가?
ⅰ) 우리는 화목 되었고,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화목하는 직책을 주셨으며, 우리의 능력으로 화목되는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화목케 하는 말씀을 가지고 화목하게 살 것을 지시하셨다. 왜냐하면 우리는 새롭게 된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ⅱ) 창조세계, 즉 세상은 구속이 일어나는 단지 배경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자체가 구속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노아의 방주[창9, 11장],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기까지 만물들의 탄식[롬8], 새하늘과 새땅[계]이 필요가 없을 것이다.
ⅲ) 세상에 대한 인식: 동일한 단어, 동일한 저자가 사용한 이 세상이라는 인식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은 죽기까지 세상을 사랑하셨으면서 우리에게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 것처럼 들린다.
a.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요일2:15-16] - 세상을 미워하라는 말을 따른다면, 미워해야 할 세상의 공부는 왜 하는가? 미워하기 위해서 공부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구원이란 세상에서 나오는 것을 뜻하게 된다. 그것이 경건한 삶이고, 성화이다.
b. "아버지가 세상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셨다."[요일4:14, 요3:16] - 반대로 세상을 화목하게 하셨다는 말을 따른다면,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데 동참하는 삶이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나눠서 읽어야 한다. 세상을 장소로 나눠서 읽는 것이 제일 나쁜 방법일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에 속한 세상과 사탄에게 속한 세상을 나눠서 이해하는 이원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은 세상도 있고, 나쁜 세상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만물을 다 화목케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구속사 안에서 역사적인 안목을 가지고 말씀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전부다 선하게 만드셨으나 선하게 창조된 모든 것이 다 망가졌고, 모든 것이 망가진 세상 안에 있는 사람과 모든 생물에게 언약을 주시고, 그런 것이 예수에 의해서 만물이 화목되어 가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구속이 완성되어 가는 것이 구속사적 안목이다. 이 안에 구속이 만물의 화목이라고 한다면, 화목을 행할 능력이 없는 우리는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화목케 하는 직책을 가지고 화목케 하는 삶, 즉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이 세상을 화목케 하신 일이라고 한다면, 구속받은 사람으로 우리는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전공들이,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그리고 우리 자신이 세상의 일부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2) 누가 화목될 필요가 있는가?[21] - 친구 사이는 화목할 필요가 없고 원수관계, 즉 망가진 관계가 화목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유지하시기 위해 세 가지 직분을 주셨고 그것이 다 망가져서 예수께서 친히 오셔서 하신 일이 결국 피흘림인데, 그 피가 왕이신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화목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백성 간의 관계의 완성은 바로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라는 화목이다. 21절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는 20절에서 나오는 만물의 일부이다.
3) 구속의 대상
ⅰ) 구속된 것은 만물이다. 창조와 관계되지 않고 구속을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조하신 것을 구속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기 그 종류대로 만드신 모든 창조물들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버리시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자신이 만드신 것을 다 원하시는 대로 그 목적을 이루실 때까지 최선을 다해 끝까지(ενεργεω) 붙잡으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의 방주에 모든 종류의 동물들을 다 태워야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노아방주 안에는 10명도 안되는 사람을 위한 공간은 겨우 몇 평 정도일 텐데, 동물들을 위한 공간은 방주의 거의 대부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웃는 상황 속에서 사람 10명만 타는 멋진 호화보트를 만든 것이 아니라 각기 그 종류대로 모든 동물들을 다 태우는 큰 배를 만들었던 것이다.
ⅱ) 창조, 구속, 구속을 위한 계획, 노아 방주, 그 속에서 구약을 이끌어가는 모든 이야기,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안에 있는 사람들, 구속하는 방법, 구속하신 결과는 창조로 관련할 때에만 설명될 수 있다. 이것이 복음의 넓은 의미이다. 그래서 만물의 으뜸 되신 창조주, 교회의 머리되신 구세주 예수는 사람만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온 우주의 그리스도(Cosmic Christ)이시다.
ⅲ) 예수님이 온 우주와 세상의 그리스도라면 우리도 ‘우주의 빛 땅의 소금’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만 온 우주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의해 구원받은 우리들도 우주와 땅에 관련되었다. ‘정복하고 다스려라’하는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일의 소명은, 물론 죄에 의해 왜곡되고 온전하게 할 능력을 잃어버렸지만, 우리가 빛으로 산다면 그 우주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주로 회복되어 갈 것이고, 땅에서 소금으로 산다면 그 땅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땅이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때부터 지금까지 분명한 사실은 창조와 구속은 함께 연결되고 같이 가야한다는 것이다.
4) 삶의 태도[고후5:17-19] - 인간은 누구인가?
ⅰ) 우리는 화목 되었고,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화목하는 직책을 주셨으며, 우리의 능력으로 화목되는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화목케 하는 말씀을 가지고 화목하게 살 것을 지시하셨다. 왜냐하면 우리는 새롭게 된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ⅱ) 창조세계, 즉 세상은 구속이 일어나는 단지 배경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자체가 구속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노아의 방주[창9, 11장],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기까지 만물들의 탄식[롬8], 새하늘과 새땅[계]이 필요가 없을 것이다.
ⅲ) 세상에 대한 인식: 동일한 단어, 동일한 저자가 사용한 이 세상이라는 인식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은 죽기까지 세상을 사랑하셨으면서 우리에게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 것처럼 들린다.
a.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요일2:15-16] - 세상을 미워하라는 말을 따른다면, 미워해야 할 세상의 공부는 왜 하는가? 미워하기 위해서 공부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구원이란 세상에서 나오는 것을 뜻하게 된다. 그것이 경건한 삶이고, 성화이다.
b. "아버지가 세상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셨다."[요일4:14, 요3:16] - 반대로 세상을 화목하게 하셨다는 말을 따른다면,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데 동참하는 삶이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나눠서 읽어야 한다. 세상을 장소로 나눠서 읽는 것이 제일 나쁜 방법일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에 속한 세상과 사탄에게 속한 세상을 나눠서 이해하는 이원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은 세상도 있고, 나쁜 세상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만물을 다 화목케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구속사 안에서 역사적인 안목을 가지고 말씀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전부다 선하게 만드셨으나 선하게 창조된 모든 것이 다 망가졌고, 모든 것이 망가진 세상 안에 있는 사람과 모든 생물에게 언약을 주시고, 그런 것이 예수에 의해서 만물이 화목되어 가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구속이 완성되어 가는 것이 구속사적 안목이다. 이 안에 구속이 만물의 화목이라고 한다면, 화목을 행할 능력이 없는 우리는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화목케 하는 직책을 가지고 화목케 하는 삶, 즉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이 세상을 화목케 하신 일이라고 한다면, 구속받은 사람으로 우리는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전공들이,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그리고 우리 자신이 세상의 일부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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