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 철학 (인간과 실존의 의미,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의 가능성과 현실성, 절망, 현대신학에 나타난 실존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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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실존주의 철학 (인간과 실존의 의미,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의 가능성과 현실성, 절망, 현대신학에 나타난 실존의 문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실존주의 철학

● 인간과 실존의 의미는 무엇인가?
1. 실존주의의 이해
2. 실존의 정의와 의미
3. 유신론적 실존주의
4. 실존주의의 특징적 요소들

★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의 가능성과 현실성 - 키에르케고르
● 절망의 가능성과 현실성

●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 현대신학에 나타난 실존의 문제 (틸리히를 중심으로)
● 서론
● 인간의 실존 분석

본문내용

이는 절망한다는 것은 인간 내부에 있는 영원성과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영원성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다. 인간이 영원성을 내던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시 되돌아온다. 따라서 인간은 자아로부터 탈출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탈출하지 못한다.
●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그 종국과 결말이 죽음인 병을 뜻한다. 곧 치명적인 병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절망은 결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그 죽음이 종말인 병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절망인 것이다.
사람들이 보통 죽는다고 하는 의미로 볼 때 절망으로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 절망의 고뇌는 죽을 수 없다고 하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절망에 쓰러져서 죽어가고 있지만 죽을 수가 없다. 그래서 절망으로 죽도록 앓고 있다는 것은 죽을 수가 없다는 말이면서 동시에 살 희망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죽음이라는 최후의 희망조차 이룰 수 없을 정도로 희망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을 의미한다. 죽음이 삶의 최대의 위험일 때 우리는 삶을 바라지만, 그보다 더 큰 위험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죽음을 바라게 된다. 죽음이 희망의 대상이 될 정도로 위험이 증대했을 때 그 절망이란 죽을 수 있는 희망조차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자기 안에 있는 이 병으로 우리는 영원히 죽어야 하면서도 죽을 수 없다. 인간이 질병으로 죽는 것처럼 절망으로 죽는 것이라면, 인간 안에 있는 영원성, 즉 자아는 육체가 병으로 죽는 것과 같이 죽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절망에 의한 죽음은 언제나 자기를 다시 소생시킨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마9:48] 절망은 자기 자신을 죽이려는 열정일 뿐 자기 자신(자아)을 죽일 힘은 갖고 있지 않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죽이려는 무력감이 나타나지만 결국 그 절망 또한 자신을 죽일 수 없다. 이 새로운 무력감은 절망을 더욱 높여주게 되는 것이다.
절망자는 자기 자신을 죽이기 위해 끝없는 무력감을 나타낸다. 그는 자기 자신을 죽일 수도, 자신에게서 탈출할 수도, 무로 돌아갈 수도 없으므로 절망한다.
그는 무엇인가에 대해 절망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서 탈출하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을 이루지 못하면 그것에 대해 절망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일을 이루지 못한 그 자신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을 이루지 못한 것에 절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이루지 못한 자신에게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일을 이루었다면, 완전한 기쁨이 되어 자신에게서 탈출을 할 수 있었겠다고 생각하면서 현재의 자신에 대해 절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일을 이룬다해도 그 일로 인해 자기 자신이 되지못하고 또 다른 탈출구를 찾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에 대해 절망하는 것은, 본질적인 절망은 아니다. 아직 시작의 단계일 뿐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 여인이 애인을 잃음으로 해서 절망하고 있다. 그러나 본질은 그 여인은 그가 없는 자아가 아니면 안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여인을 보고 자기 자신을 죽이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녀는 그렇게 되는 것이 고민이라는 답을 하게 될 것이다.
절망은 두 가지 형태를 가진다. 1형태는 절망하여 자기 자신을 되찾고자 하지 않는 경우이고, 2형태는 절망하여 자아이고자 원하는 형태이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절망자는 죽을 병에 걸려있다. 이 병은 보통 병과 전혀다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자아를 침식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죽을 수 없다. 죽음에 의해 이 병에서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죽음이란 죽을 수 없다는 바로 그것이다.
이는 자신이 절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또한 자신의 자아를 철저하게 상실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영원은 그의 상태가 절망임을 드러낼 것이다.
★ 현대신학에 나타난 실존의 문제 (틸리히를 중심으로)
● 서론
현대사상은 인간은 자율적 존재로서 종교적 중심의 위치를 갖지 않고 인간 스스로의 관점에서 모든 사고를 수행해간다고 한다.
현대신학에 있어 신적계시의 중심이 인간의 중심적 행위와 인간학적 이해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이는 계몽주의 이래 뿌리깊게 박힌 낙관주의적인 인본주의적 사고, 즉 자연과학의 무한한 가능성의 길을 열어 놓은 듯한 현대적 사고이다. 여기에는 헤겔이 역사를 발전주의적 미래관으로 보고자 했던 경향이 있다. 마치 하나님의 왕국을 서구의 현대 문화와 동일시하려는 낙관주의적이며 이상주의적인 자세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상주의는 인간 스스로의 영성과 세계의 진보, 문화의 유의미성, 그리고 종교의 발전적 이해를 거쳐 하나님을 향해 나간다는 낙관주의적 입장을 갖기도 한다.
● 인간의 실존 분석
무, 절망, 죽음 등의 인간 현실성이라는 한계상황이 신학적 사유의 답변을 요구하게 되었다.
틸리히의 관계신학은 인간의 현실성과 관계하고 있으며 신학적 사고 전반에 걸쳐서 바르트의 신학적 사유 안에서의 초자연성의 강조가 현대의 낯선 주변과 어울릴 수 없다는 비평주의적 사고에 편승하여 기독교의 메시지를 오늘의 문화적 상황과 관련시키고자 하는 그의 의도로 인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실존주의적 인간이해에 있어 그는 실존은 인간의 신적 존재의 근거로부터 분리되는 존재의 순간성으로서 인간의 실제적 선택들 가운데 있는 마귀적 힘에게 빠져들어가는 것으로 이해했다. 유한한 인간성의 범주 안에서 인간은 염려와 불안을 경험하며 또한 신적 존재의 근거를 상실하게 되고, 존재의 힘을 잃게 된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을 지배하게 되면 저항과 절망이 나오게 된다. 인간은 유한한 시간 속에서의 비존재라는 위험에 저항을 하지만 저항은 절망의 구조 하에서 소용이 없게 된다.
인간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실패의 징후는 고통과 고독이다. 고통은 인간 스스로에게 관계하는 것이고, 고독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규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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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9.03
  • 저작시기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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