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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쿠데타의 위험이 다가오는 가운데 아옌데 대통령은 최후의 수단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결정했다. 9월9일 밤 아옌데 대통령은 피노체트 장군에게 국민투표 실시의 의향을 전달했다. 이것을 한 피노체트 장군은 14일로 예정되었던 쿠데타를 국민투표 실시를 발표하기 전으로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이리하여 9월 11일 공군에 이어 해군, 이어서 육군이 궐기했고, 대통령 관저에서의 격렬한 총격전 끝에 아옌데 대통령은 사망하고, 인민연합정부는 성립 3주년을 눈앞에 두고 무너지고 말았다.
아옌데 정권은 1970년 11월에 의회의 대통령지명을 받아 성립한 이후 1973년 9월 11일에 쿠데타에 의해 붕괴되기까지 대략 3년간 계속되었다. 이 동안 인민연합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각 선거의 동향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정치적, 사회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착실하게 증가하고 있었고, 인민연합정부의 붕과는 결코 정부로부터의 민심의 이반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인민연합정부가 3년 후인 1976년의 대통령선거 때까지 계속 진탱해 나갈 수 있었다면 제2차 인민연합정부가 성립할 가능성은 높았을 것이며 ‘사회변혁을 향한 칠레의 길’은 한층 더 확실해졌을 지도 모른다.
쿠데타의 위험이 다가오는 가운데 아옌데 대통령은 최후의 수단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결정했다. 9월9일 밤 아옌데 대통령은 피노체트 장군에게 국민투표 실시의 의향을 전달했다. 이것을 한 피노체트 장군은 14일로 예정되었던 쿠데타를 국민투표 실시를 발표하기 전으로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이리하여 9월 11일 공군에 이어 해군, 이어서 육군이 궐기했고, 대통령 관저에서의 격렬한 총격전 끝에 아옌데 대통령은 사망하고, 인민연합정부는 성립 3주년을 눈앞에 두고 무너지고 말았다.
아옌데 정권은 1970년 11월에 의회의 대통령지명을 받아 성립한 이후 1973년 9월 11일에 쿠데타에 의해 붕괴되기까지 대략 3년간 계속되었다. 이 동안 인민연합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각 선거의 동향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정치적, 사회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착실하게 증가하고 있었고, 인민연합정부의 붕과는 결코 정부로부터의 민심의 이반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인민연합정부가 3년 후인 1976년의 대통령선거 때까지 계속 진탱해 나갈 수 있었다면 제2차 인민연합정부가 성립할 가능성은 높았을 것이며 ‘사회변혁을 향한 칠레의 길’은 한층 더 확실해졌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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