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주의적 자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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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생태주의적 자연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내재적 자연과 외재적 자연의 분열
2. 서양 자연관의 역사
3. 인간과 자연의 상호 주체성을 기반으로 한 연계

본문내용

. 인간에 의한 자연의 사회화는 불가능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자연에 인간과 사회를 적응시켜야 한다. “자연 속에서의 생명의 흐름이 사회 차원에서 성립될 때”(226) 인간은 자연 속에서 살고, 숨쉬고, 활동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이런 사회가 생물학적 의미와 인간 해방이라는 의미를 갖는 ‘살아있는 사회’(226)일 것이다. 이 사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인간의 상호주체성”(228)을 존중해야 한다. 인간의 노동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3. 인간과 자연의 상호 주체성을 기반으로 한 연계
인간과 자연의 상호 주체성을 기반으로 한 연계만이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 인간과 자연에 대한 과학적 지식도 필요하지만 전통적인 민중들의 자연관을 계승하면서, 노동과 자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영어에서 자연은 ‘nature’이고, ‘자연스럽다’는 여기에서 파생된 ‘natural’이다. 이 말은 ‘자연스러운’ 생물로서의 인간이 지닌 본성을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개인에게 내재되어 있는 자연성에 대한 각성하고, 그것을 발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각성은 “인간은 자연계의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은 우위자이며, 세련된 지성이라든가 섬세한 감성 등은 인간에게만 있다”라는 편견을 버려야만 가능하다. 이것은 자연의 생명에 대한 편견이다. 차별을 하고 있다는 것은 차별받는 쪽도 억압되어 있지만 차별하는 쪽도 해방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여기서 해방되지 않고서는 인간 스스로가 자유롭게 자연과 접촉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또 다른 편견은 인간 특히, 남성은 본래 투쟁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간 본성 때문에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은 정당화된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적 자연관은 자연에 대한 인간 중심주의라기보다는 남성 중심주의이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 페미니즘 자연관이 대두되었는데, 생태주의 자연관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들은 자연관에서 여성의 성(性)을 강조한다. 그들은 르네상스 시기에 부활한 자연관은 우주를 유기적으로 살아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 시기에는 ‘어머니 대지’ 즉, 지구를 여성적인 것으로 인식했다. 이런 관점에서 예로부터 ‘어머니 대지’에 대한 “윤리적인 자제”(241)를 포함했는데, 남성 중심의 근대적 자연관은 이것마저 버렸다. 이처럼 “자연관에서 여성의 성에 대한 강조는 이성 중심으로 자연을 파악하고 인간을 반자연화하려는 남성적인 자연관”을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감성과 신체의 자연성에 의거해서” 인간을 “자연에 연결시키려고”(242) 한다. 본래 차별이 없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인종 차별이나 성 차별 등의 모든 차별은 반자연적이다. 다양성이야말로 양적, 질적 풍부함과 직결되며, 변화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자연관과 함께 생태주의적 자연관과 유사한 것은 ‘자연주의’이다. 자연주의는 삶의 방법이나 사회의 존재 양식의 원리를 제시한다. 이때의 ‘자연’은 ‘자연스러운 삶의 방법’과 비슷한 의미이다. 그러나 “자연과 동물은” 우리를 자연 속에서 “더욱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면 “자연에 의거함으로써 인간이 비로소 참다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개념에서는 생태주의와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주의는 “지금 필요한 전환을 개인적이고 정신적인 노력으로 도모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그것을 위한 생물학적 근거로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끄집어”내고 있는 느낌이 있다. 이런 생각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는 반자연적인 편견이나 여러 제도를” 개혁하기는 어렵다.
이런 개혁은 개인에게 본래적으로 내재된 자연성의 발현시키고, 사회의 변혁을 동시에 요구하기에 운동의 형태를 띤다. 그러나 현재 운동의 흐름은 그다지 집단적 성격을 띠지 않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정치 투쟁형 물론 이러한 운동의 ‘정치적 성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운동과 달리 지역성이나 개별성을 띠고 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다양하게, 극히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자기 의견을 서로 제기하면서 그 다양함을 자연스럽게 바람직한 사회를 향한 어떤 흐름”(248)을 만들고 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주된 내용은 내재하는 자연과 외재하는 자연의 통합니다. 자연을 죽이고 인간은 다른 세계에 살면 된다는 생각은, 끝내는 자연과 함께 인간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저자의 주장 중 흥미로운 것은 ‘지구환경문제’라는 용어에 대한 불만이다. 이 용어는 인간이 있고,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있다는 의미이다. 즉,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주위의 자연 조건이 지금 파괴되어 인간이 살기 어렵게 되었다.”라는 인간 중심적 발상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의 한 구성원일 뿐이다. 저자는 “지구에 대해서 인간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니까, 문제는 인간에게 있는 것”(259)라고 주장한다. 인간 중심의 사고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제기된 것이 원자력 발전이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것은 더 교묘하게 자연을 이용하는 방법일 뿐이다. 일본은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2011년 일본의 원전 사고는 인간 중심주의적 발상이 자연 앞에서는 얼마나 나약하며, 그 반대로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왔는지를 잘 보여 준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과학 기술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지구에 대한 인간의 활동을 어떠한 방향에서 다시 보는가”(261) 또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향할 것인가이다. 이런 관점이 확립되어야만 기술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공생의 개념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저자는 세 가지 공생을 주장한다. 그것은 ‘지상의 모든 생명의 공생’, ‘다른 지역의 사회, 문화, 인종 등의 공생’, ‘과거, 현재, 미래 세대의 공생’이다. 특히, 미래 세대와의 공생이 문제가 되는데, ‘지속 가능성’이라는 말이 이런 문제의식을 나타내는 대표적 개념이다. 이 시대는 공생으로의 전환기이다. 그러므로 과학 역시 기존의 과학에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그것을 ‘대안 과학’이라고 부른다.
  • 가격3,3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3.09.30
  • 저작시기2013.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49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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