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원자로 폭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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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 사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1절 서설

제2절 방사능오염
Ⅰ. 방사능 오염의 개념
Ⅱ. 방사능과 방사선의 차이점
1. 방사선
2. 방사능
Ⅲ. 방사능 피폭 및 방사능 오염의 영향

제3절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 사건
Ⅰ. 사건의 발생원인
Ⅱ. 사고의 경과
Ⅲ. 피해상황
Ⅳ. 사고후의 조치사항
Ⅴ. 체르노빌 사건 그 후

제4절 결어

<참고문헌>

본문내용

민들은 아무런 대비가 되지 않은 채 발전소에서 분출된 막대한 양의 방사선에 피폭되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 36시간이 지난 4월 27일 오후에야, 발전소에서 4km 떨어져 있는 도시 프리피야트의 주민 45,000명이 1,100대의 버스를 통해 도시로부터 소개(疏開)되었다. 이후 열흘 동안 사고 직후 발전소 주변 30km 반경에 살고 있던 11만 6천 명의 시민이 원래 주거지로부터 소개(疏開)되었고, 1990년부터 1995년까지 21만 명의 시민이 추가로 소개되었다.
사고가 발생했던 4월 26일 아침, 사고 지점으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1,200km 떨어진 스웨덴의 포스막 원자력 발전소에 출근한 과학자의 의복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었고, 조사 결과 이 물질이 소련에서 날아온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스웨덴 정부가 소련에 해명을 요구하여, 4월 28일 소련 정부는 사고를 공표하였다.
Ⅴ. 사건발생 그 후
폭발시, 원자로 내부의 방사성 물질 10톤(추정) 정도가 대기중에 방출되어 북반구 전역에 확산되었다. 주변지역의 가축과 농작물에 방사성 물질이 축적되어 고기와 우유 등도 오염되었다.
2000년 4월 26일의 사고 발생 14주년 추모식에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러시아 사고 처리 종사자 86만 명 중, 5만 5천 명이 이미 사망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국내(인구 5천만 명) 방사성 노출자 3백 4십 2만 7천 명 중, 작업원은 86.9%가 병에 걸려 있다. 주변 주민과 유아, 소아 등의 갑상선 암의 발생이 높아졌다.
오늘날에는, 반감기가 약 30년인 스트론튬-90과 세슘-137에 따른 토양 오염이 문제가 되고 있다. 가장 높은 레벨인 세슘-137은 토양의 표층에 있어, 그것이 식물과 곤충, 버섯에 흡수 되어 현지 식량 생산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의 실험(1997년 무렵)에 따르면 이 구역 내에 위치하고 있는 나무안의 세슘-137의 레벨은 계속 오르고 있다. 오염이 지하수나 호수나 연못 같이 수계로 이행하고 있다고 하는 몇개의 증거가 발견되고 있다(2001년, Germenchuk).
IAEA의 기록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고에 따른 방출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폭탄 방사능 오염의 400배 정도로, 20세기 중순에 발생된 대기권 내핵 실험으로 일어난 오염의 100에서 1,000분의 1이라고 한다. 체르노빌 사고는 국지적인 재해이다.
제1회 체르노빌 사고의 생물학적, 방사선 의학적 관점에 대한 국제 회의(1990년 9월)에 참석한 소련 과학자의 보고에 따르면 해당 발전소로 부터 10킬로미터 구역에서의 방사성 강하물의 레벨은 4.81GBq/㎡라고 한다. 대량의 방사성 강하물로 말미암아 고사한 '붉은 숲'이 10킬로미터 구역 내의 장소의 바로 배후 지대에 퍼지고 있다. 이 숲은 사고 후 지극히 대량의 방사성 강하물로 말미암아 고사해 적갈색으로 보이는 나무들을 가리켜 그렇게 이름 붙었다. 사고 후 청소 작업 중에서 4킬로미터 제곱인 숲의 대부분을 매립할 수 있었다. 붉은 숲이 있었던 장소는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지역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체르노빌 사고 그 자체는 4호기의 참극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내 에너지 부족을 이유로 나머지 세 개의 원자로 운전을 계속한다. 1991년에 2호기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정부 당국은 원자로가 수복 불능까지 손상되어 있다고 발표하며, 이를 전원 계통으로 떼어내 버렸다. 1호기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IAEA와 같은 국제사회의 거래의 일부로서 1996년 11월에 퇴역시켰다. 2000년 11월에 레오니드 쿠치마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3호기의 스위치를 잘랐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모든 원자로가 정지했다.
사고 당시 바로 사망한 직원의 사체는 아직 오염 구역에 있는데, 방사능 오염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석관 안에는 방사성 물질 확산 방지를 위해 특수 약재가 살포되고 있지만, 대부분이 외부로 유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체르노빌 사고는 분명히 대규모 재해였기 때문에 전 세계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다. 원자력 위험에 대한 대중 인식은 크게 증가한다. 원자력 발전 찬성측과 반대측 단체가 대중의 의견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사고 때문에 소련의 원자력 발전계획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유럽전역에서는 원자력 발전소 추가 건립에 대한 거센 저항이 일어났다.
실제 사고의 원인, 경과에 대해서는 소련 정부 수뇌부가, 또 현장 조직 등이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것은 보통 스탈린 체제 아래에서의 공포 정치를 기억하고 있던 소련인들이 자신의 '보신'을 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 체질에 대해 알고 있던 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글라스노스트(glasnost)를 철저하게 지도한다. 그러나 이 고르바초프의 움직임은 후에 소련의 8월 쿠데타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제4절 결어
지금까지 방사능오염에 대한 개념을 간단히 소개하였고, 방사능오염의 대표적인 사례인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 사건에 대해 알아보았다.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 사건은 무분별한 발전과 그에 따른 피해, 방사능의 위험성 등을 시사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핵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을 다시 한 번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핵에너지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이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피해와 또 그에 따른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그 교훈을 얻기 위한 희생은 너무나 컸으며, 우리는 체르노빌 사건을 단순히 끔찍한 사건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되돌아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http://blog.naver.com/special0721/140117187556
http://blog.naver.com/dlwhdghrk?Redirect=Log&logNo=90096054673
http://todayspictures.slate.com/inmotion/essay_chernobyl/
양명식의 환경 정보넷21 http://www.enn21.com/
http://zhukov.egloos.com/3899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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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2.02
  • 저작시기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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