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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역할을 했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술공예운동이라는 용어는 1888년 미술공예전시협회(Art and Craft Exhibition Society)회원이었던 곱덴-샌더슨(Thomas Cobden-Sanderson 1840-1922)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했다.
모리스는 수공예품에서 산업 제품으로의 전환은 추한 제품만을 생산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에 수공예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술공예운동은 그러한 모리스의 생각과 그의 영향으로 형성되었던 일련의 움직임이었다. 피터 스탠스키(Peter Stansky)는 이러한 영향을 모리스주의(Morrisism)라고 말한다. 그리고 모리스는 수공예 부활과 더불어 중세에 관심을 가졌다. 왜냐하면 그는 수공예가 활발했던 시대를 중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중세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길드' 형태가 예술 제작의 모범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는 중세 로망스(Romance)를 즐겨 읽었고, 자신의 작품에 중세적인 모티프를 사용하기도 했으며, 모리스 상회 작업장은 중세 길드의 형태를 따랐다. 그런데 중세에 대한 관심은 비단 모리스만의 관심은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 건축에서 일어나고 있던 고딕 건축양식에 대한 관심과 맞물려 있다.
이처럼 모리스의 예술 사상은 당시 영국의 상황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는 사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특히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과 당시의 노동자들의 환경 개선에 적극적이었다. 따라서 그의 예술 사상 및 사회주의적 시각은 당시 시대적 상황과 관계를 맺고 있다. 어떤 이는 그의 예술 사상이 시대적 산물이라는 점을 다소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기도 하지만 필자는 많은 사상이나 이론들이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요소와 반드시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문제에 동의할 수 없다. 모리스의 모든 사상은 명백하게 시대적 산물인 동시에 그의 예술 사상은 그 시대를 넘어서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모리스의 글을 읽거나 그의 사상을 연구할 때 19세기 여러 상황들에 대한 지식이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물론 그의 예술 사상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자신의 사회에서 생산되고 있던 예술품에 불만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래서 모리스 상회(1875) 설립 이후, 1877년과 1894년 사이에 행한 많은 강연의 주제는 바로 예술과 사회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모리스는 저술 활동이라는 방법 보다 강연이라는 다소 적극적인 형식으로 자신의 예술 사상을 피력하였으며, 이런 이유로 그의 사상이 산만한 듯 보여서 그의 사상 체계가 일관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모리스의 주된 관심과 문제는 예술과 사회 문제였으며, 그것에 관한 일관된 태도로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모리스의 예술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19세기의 예술적 상황과 더불어 영국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모리스의 비판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모리스의 공예 작품이나, 디자이너로서의 활동 및 미술공예운동에 대한 언급은 제외시키고자 한다. 왜냐하면, 국내에서 모리스에 대한 연구 대부분이 이 부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예술 사상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소개에 그치고 있다. 특히 미술공예운동과 관련된 많은 연구가 전기적인 서술처럼 시대적 개관으로 되어 있어서 미술공예운동의 이념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지는 못하다. 모리스의 예술 사상에 대한 연구는 미술공예운동과 모리스와의 관계 그리고 20세기 디자인론 형성에 미친 영향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선행되어야 할 연구이기 때문에 필자는 예술과 노동에 관한 부분을 중심으로 그의 예술 사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모리스는 수공예품에서 산업 제품으로의 전환은 추한 제품만을 생산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에 수공예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술공예운동은 그러한 모리스의 생각과 그의 영향으로 형성되었던 일련의 움직임이었다. 피터 스탠스키(Peter Stansky)는 이러한 영향을 모리스주의(Morrisism)라고 말한다. 그리고 모리스는 수공예 부활과 더불어 중세에 관심을 가졌다. 왜냐하면 그는 수공예가 활발했던 시대를 중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중세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길드' 형태가 예술 제작의 모범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는 중세 로망스(Romance)를 즐겨 읽었고, 자신의 작품에 중세적인 모티프를 사용하기도 했으며, 모리스 상회 작업장은 중세 길드의 형태를 따랐다. 그런데 중세에 대한 관심은 비단 모리스만의 관심은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 건축에서 일어나고 있던 고딕 건축양식에 대한 관심과 맞물려 있다.
이처럼 모리스의 예술 사상은 당시 영국의 상황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는 사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특히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과 당시의 노동자들의 환경 개선에 적극적이었다. 따라서 그의 예술 사상 및 사회주의적 시각은 당시 시대적 상황과 관계를 맺고 있다. 어떤 이는 그의 예술 사상이 시대적 산물이라는 점을 다소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기도 하지만 필자는 많은 사상이나 이론들이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요소와 반드시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문제에 동의할 수 없다. 모리스의 모든 사상은 명백하게 시대적 산물인 동시에 그의 예술 사상은 그 시대를 넘어서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모리스의 글을 읽거나 그의 사상을 연구할 때 19세기 여러 상황들에 대한 지식이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물론 그의 예술 사상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자신의 사회에서 생산되고 있던 예술품에 불만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래서 모리스 상회(1875) 설립 이후, 1877년과 1894년 사이에 행한 많은 강연의 주제는 바로 예술과 사회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모리스는 저술 활동이라는 방법 보다 강연이라는 다소 적극적인 형식으로 자신의 예술 사상을 피력하였으며, 이런 이유로 그의 사상이 산만한 듯 보여서 그의 사상 체계가 일관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모리스의 주된 관심과 문제는 예술과 사회 문제였으며, 그것에 관한 일관된 태도로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모리스의 예술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19세기의 예술적 상황과 더불어 영국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모리스의 비판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모리스의 공예 작품이나, 디자이너로서의 활동 및 미술공예운동에 대한 언급은 제외시키고자 한다. 왜냐하면, 국내에서 모리스에 대한 연구 대부분이 이 부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예술 사상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소개에 그치고 있다. 특히 미술공예운동과 관련된 많은 연구가 전기적인 서술처럼 시대적 개관으로 되어 있어서 미술공예운동의 이념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지는 못하다. 모리스의 예술 사상에 대한 연구는 미술공예운동과 모리스와의 관계 그리고 20세기 디자인론 형성에 미친 영향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선행되어야 할 연구이기 때문에 필자는 예술과 노동에 관한 부분을 중심으로 그의 예술 사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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