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1절 고대세계
1. 구석기․신석기 시대
2. 수메르 문명
3. 고(古)이집트 왕국
4. 그리스의 도시국가
5. 로마 공화정
제2절 로마제국과 비잔틴 시대
1. 아우구스투스
2. 비잔틴제국
제3절 중세 및 절대왕정 시대
1. 프랑크왕국․메로빙왕조
2. 중세의 봉건제
3. 왕권의 강화
4. 유럽의 절대왕정
제 4절 근대 국가의 출현
1. 구석기․신석기 시대
2. 수메르 문명
3. 고(古)이집트 왕국
4. 그리스의 도시국가
5. 로마 공화정
제2절 로마제국과 비잔틴 시대
1. 아우구스투스
2. 비잔틴제국
제3절 중세 및 절대왕정 시대
1. 프랑크왕국․메로빙왕조
2. 중세의 봉건제
3. 왕권의 강화
4. 유럽의 절대왕정
제 4절 근대 국가의 출현
본문내용
경우, 재상 리슐리외와 루이 14세(1643~1715)의 치하에서, 지사직이 창설되고 지방 행정 업무의 집권화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집권화된 힘으로써 완벽하게 작동되지는 못했다. 또한 매관 제도가 널리 퍼져서 국왕은 이들을 거의 통제하지 못했다. 관직이 상속되거나 매매되는 사적 재산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복잡한 행정 체제를 갖춘 집권적인 국가에서 필요한 것이 특별히 훈련된 관료라는 인식을 일찍이 갖게 된 프러시아의 군주들은 관료집단의 발전을 통해서 18세기 유럽에 영향을 미쳤다. 프러시아의 경우 전문성을 갖춘 관료들이 필요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잇다. 우선 지방의 자율성을 무너뜨리고, 귀족계급의 대항 세력으로서 활동하도록 하며, 프러시아의 산재된 지역들을 함께 연결시키는 강력한 고리를 형성할 필요성에서였다.
제 4절 근대 국가의 출현
근대 국가는 여러 사회 계층의 요소가 침투해 권력의 기반을 구축했으며 이러한 변화는 신민과 시민의 차이로 나타난다. 즉 신민이 국왕에게 충성심을 돌린다면, 시민은 국가에 그것을 바친다. 18세기에 경제적으로 강력하나 정치적으로는 무력했던 중산층의 정치에의 참여 요구는 근대 국가를 성립시키게 된 혁명적 과정에서 주요한 요소가 되었고 한 세기에 걸친 이른바 ‘혁명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19세기의 프랑스 관료제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관리들의 집권과 개인적 기여와 더불어, 관직에의 접근의 평등성과 관직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 창안된 경쟁시험제가 공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연고주의와 경쟁시험과 더불어 관리들의 전문화가 더욱더 진척되었다는 점이다. 영국의 채프만은 1830~1870년 사이에 행정국가가 근대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그 이후 양차 대전의 중간을 전후한 시대를 각각 주권국가와 서비스국가로 규정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행정의 합리화 혹은 관료제화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잇을 것이다. 이것을 영국의 행정사가인 글래든은 ‘행정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상 19세기에 들어서 영국을 포함한 유럽국가들에서 진행된 산업혁명과 더불어 분업을 통한 전문화는 공적 영역에도 침투했고, 도시화는 그 해결에 새로운 사회적 태도를 요구하는 많은 문제를 발생시켰다. 산업 및 사회 분야에서의 새로운 수단과 발명은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변화를 수용하고,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행정혁명이 요청되었고 이것이 정치로부터 행정을 분리하는 길로 이끌게 되었다. 요컨대 새로운 사회의 변화에 행정은 그 기능의 확대와 더불어 규모의 성장을 불가피하게 수반하게 되었다. 이러한 관료제의 성장이 다름 아닌 행정국가의 출현이다. 여기서 관료제의 성장이 정치 체제의 하위 체제로서의 성격뿐만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따른 자기 방어의 기제로서의 성격도 함께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나아가서 관료제화의 진척은 공적인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양식으로서의 생의 관료제화이기도 한 것이다.
제 4절 근대 국가의 출현
근대 국가는 여러 사회 계층의 요소가 침투해 권력의 기반을 구축했으며 이러한 변화는 신민과 시민의 차이로 나타난다. 즉 신민이 국왕에게 충성심을 돌린다면, 시민은 국가에 그것을 바친다. 18세기에 경제적으로 강력하나 정치적으로는 무력했던 중산층의 정치에의 참여 요구는 근대 국가를 성립시키게 된 혁명적 과정에서 주요한 요소가 되었고 한 세기에 걸친 이른바 ‘혁명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19세기의 프랑스 관료제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관리들의 집권과 개인적 기여와 더불어, 관직에의 접근의 평등성과 관직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 창안된 경쟁시험제가 공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연고주의와 경쟁시험과 더불어 관리들의 전문화가 더욱더 진척되었다는 점이다. 영국의 채프만은 1830~1870년 사이에 행정국가가 근대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그 이후 양차 대전의 중간을 전후한 시대를 각각 주권국가와 서비스국가로 규정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행정의 합리화 혹은 관료제화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잇을 것이다. 이것을 영국의 행정사가인 글래든은 ‘행정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상 19세기에 들어서 영국을 포함한 유럽국가들에서 진행된 산업혁명과 더불어 분업을 통한 전문화는 공적 영역에도 침투했고, 도시화는 그 해결에 새로운 사회적 태도를 요구하는 많은 문제를 발생시켰다. 산업 및 사회 분야에서의 새로운 수단과 발명은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변화를 수용하고,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행정혁명이 요청되었고 이것이 정치로부터 행정을 분리하는 길로 이끌게 되었다. 요컨대 새로운 사회의 변화에 행정은 그 기능의 확대와 더불어 규모의 성장을 불가피하게 수반하게 되었다. 이러한 관료제의 성장이 다름 아닌 행정국가의 출현이다. 여기서 관료제의 성장이 정치 체제의 하위 체제로서의 성격뿐만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따른 자기 방어의 기제로서의 성격도 함께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나아가서 관료제화의 진척은 공적인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양식으로서의 생의 관료제화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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