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감시와 처벌 (Surveiller et punir)』 _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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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후감] 『감시와 처벌 (Surveiller et punir)』 _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감시와 처벌


신체형의 역사
신체형의 사라짐
신체형 소멸의 심층적 이유
신체형에서 감옥으로
신체와 권력
감시와 규율
공간 배치와 개인화
공간 배치
시험
가시성의 역전
판옵티콘

본문내용

받고 있습니다. 같은 시기에 죄수들은 빛도 들어오지 않는 밀폐된 지하감옥의 어둠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개처형 제도가 점점 부담스러워졌습니다. 그것은 경제적인 부담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더 정치적인 부담이었습니다. 권력과 죄수 사이의 역할의 전도가 일어났던 카니발의 광장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호사스러운 열병식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제 권력은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면서 힘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군주의 지속되기 어려운 가시성이 신하들의 불가피한 가시성으로 전환되었다고나 할까요. 이제 규율 권력은 사람들에게 가시성의 의무를 부과합니다. 이 장치에서 보여져야 할 사람은 권력이 아니라 복종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빛 속에 드러냄으로써 그들에게 행사되는 권력의 지배가 확보됩니다.
캄캄한 어둠이 아니라 밝은 빛 속에 놓았으므로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이런 상식과는 달리 어둠은 사람을 편안하게 감추어주고 빛은 잔인하게 그를 드러내 주니까요. 가시성이야 말로 예속을 극대화시킵니다. 규율의 대상인 개인을 예속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끊임없이 보여지고 있고, 또 항상 보여질 수 있다는 그 가능성입니다.
가시성이란 시선에 의해서 이루어지는것이지요. 따라서 규율의 행사는 시선의 작용에 의한 강제성의 장치를 전제로 삼고 있습니다. 바라봄을 허용하는 기술이 권력의 효과를 이끌어내는 장치입니다. 전통적인 야영지에서 통로의 기하학적 배열, 텐트 입구의 방향 설정, 가로 세로 열의 배치등은 정확히 규정되고 서로 감시하는 시선의 그물눈입니다. 군대막사는 총괄적인 가시성의 효과로 작용하는 권력의 도해에 다름 아닙니다. 그 후 오래 동안 도시계획 안에서 그리고 노동자의 공동주택지, 병원, 보호시설, 감옥, 학교등의 건설 계획 안에서 이러한 야영지의 모델이나 적어도 그것의 기초가 되는 원리, 즉 위계질서화한 감시의 공간화가 지속적으로 발견될 것입니다.
역시 18세기에 확립된 기숙학교의 식당 구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식사 도중 생도감이 자기 반의 생도 전원의 식탁을 모두 볼수 있도록 그의 식탁은 조금 높은 단상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화장실은 담당 감시원이 생도의 머리와 발을 볼 수 있게 절반 크기의 문이 달려 있고, 생도들이 서로의 모습은 볼 수 없게끔 옆쪽으로 충분한 높이의 칸막이 벽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수치심을 무시하는 수많은 장치를 통해 그 건축물은 감시에 대한 무한히 세심한 배려를 담았습니다. 그것들은 겉으로는 순수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매우 의심스러운 미묘한 현상들입니다. 하찮고 사소해 보이는 이런것들이야말로 푸코의 미시권력을 잘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판옵티콘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완벽한 감시의 장치라면 단 하나의 시선만으로 모든 것을 영구히 볼수 있는 판옵티콘의 장치입니다. 하나의 중심점이 있어, 그것이 모든 것을 비추는 광원이 되고, 동시에 알아야 할 모든 사항이 집약되는 그러한 건물체계, 그것이 바로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생각했던 판옵티콘입니다.
판옵티콘의 개념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반지 모양의 원형 건물 안 마당 중심에 탑이 하나 있습니다. 탑에는 원형건물의 안쪽으로 향해 있는 여러개의 큰 창문들이 뚫려 있고, 반지 모양의 원형 건물은 독방들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독방 하나하나는 건물의 앞면에서 뒷면까지를 차지하고 있어서 항상 빛이 통과하고 있습니다. 중앙의 탑에는 지그재그의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어서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감시인을 한 명 배치하고 각 독방 안에는 광인이나 병자, 죄수, 노동자, 학생등 누구든지 한 사람씩 감금할 수 있습니다. 중앙탑에는 빛이 차단되어 있어서 감시인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없지만, 수감자들은 역광에 의해 언제나 환하게 모습이 보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여기서 지하감옥의 원리가 전도되어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지하감옥의 세 가지 기능, 즉 감금하고 빛을 차단하고 숨겨두는 기능 중에서 첫 번째 것만 남겨놓고 뒤의 두 가지를 없애버린 형태입니다. 과거에 어둠은 역설적으로 죄수들을 보호하는 구실을 했습니다. 폐쇄된 지하감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몽테 크리스토 백작은 간수의 방해를 받지 않고 탈옥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호의 구실을 하던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들어섰습니다. 이제 감시자는 훨씬 수월하게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시성의 상태가 바로 함정이 된것이지요.
판옵티콘의 도식은 그 특징 중 어느것도 잃지 않은 채 사회 전체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규율 권력이 제대로 행사되려면 지속적이고 철저하며 어디에나 있고 또한 모든 것을 가시적으로 만들면서 자신은 보이지 않는, 그러한 감시수단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 감시는 사회 전체를 지각 대상으로 만드는 얼굴 없는 시선입니다. 그것은 도처에 매복되어 있는 수천 개의 눈이고, 움직이면서 항상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 온갖 주의력이며, 위계질서화한 그물눈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가 바로 이런 감시체제가 아닐까요? 푸코는 인터넷이 전세계적으로 확산 보급되기 이전인 1984년에 죽었습니다. 가공할만한 대량 전달의 인터넷이 우리의 삶 속에 더욱 미세하게 깊이 스며들어 우리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권력이 누구냐의 문제가 남습니다. 그것은 얼굴 없는 권력이고, 추상적인 권력이며, 익명의 권력입니다. 타인이 나에 대해 권력이고, 내가 또한 타인에 대해 권력일 수 있습니다. 학생에 대한 교수의 권력은 강의평가라는 수단에 의해 전도되고, 공직에서 하급자에 대한 상급자의 권력은 다면평가로 전도됩니다. 자동금전인출기 또는 지하주차장에서 나를 겨누고 있는 CCTV 카메라가 기분 나쁘지만 그것이 또 범죄를 막아주어 나를 이롭게 하기도 합니다.
푸코의 미시권력 혹은 앎-권력은 사회전체에 널리 퍼져 있고 또 우리가 그것을 떨쳐 버릴수 없다는 점에서 허무주의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좌우 양 진영에서 푸코가 십지포화를 받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치 정의를 독점한듯한 좌파적 독선에 대한 좋은 해독제가 된다는 점에서 푸코의 담론은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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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5.27
  • 저작시기2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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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7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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