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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지 않았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직도 무언가가 부족했으며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그에게는 무언가 가장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대학 시절, 외국에서 가졌던 그 모든 소망이 현재에도 그를 고뇌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인지 ‘시소이’ 신부와의 대화에서 주교라는 신분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앞둔 ‘표트르’ 주교의 삶의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도 투영되어 있다. 먼저 “그래 일라리온, 넌 바보야!”라는 표현은 ‘표트르’ 주교가 느끼는 무상감을 ‘일라리온’의 어리석음에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시소이’ 신부이다. ‘시소이’ 신부의 “외로운 고아 같은, 심지어 방랑자 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한 “과연 신을 믿는지”, “이 사람 스스로도 자기가 왜 수도승인지를 몰랐다.”라고 하는 부분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표트르’ 주교는 자신의 삶에 대한 확인도 없이 죽어 간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 “정말 좋다.”라고 말하고, 이런 그를 보는 서술자는 “새처럼 자유로우며 어디든 마음 내키는 대로 갈 수가” 있다고 표현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3인칭 서술자는 ‘표트르’ 주교의 죽음 뒤에 세상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장면을 서술하고 있다. 한 때 ‘표트르’ 주교 앞에서 두려워했던 사람들이나 그가 이룬 업적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주교였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사실을 믿지 않으면 어떨까 조심스러워 한다.
죽음을 앞둔 ‘표트르’ 주교의 삶의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도 투영되어 있다. 먼저 “그래 일라리온, 넌 바보야!”라는 표현은 ‘표트르’ 주교가 느끼는 무상감을 ‘일라리온’의 어리석음에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시소이’ 신부이다. ‘시소이’ 신부의 “외로운 고아 같은, 심지어 방랑자 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한 “과연 신을 믿는지”, “이 사람 스스로도 자기가 왜 수도승인지를 몰랐다.”라고 하는 부분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표트르’ 주교는 자신의 삶에 대한 확인도 없이 죽어 간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 “정말 좋다.”라고 말하고, 이런 그를 보는 서술자는 “새처럼 자유로우며 어디든 마음 내키는 대로 갈 수가” 있다고 표현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3인칭 서술자는 ‘표트르’ 주교의 죽음 뒤에 세상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장면을 서술하고 있다. 한 때 ‘표트르’ 주교 앞에서 두려워했던 사람들이나 그가 이룬 업적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주교였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사실을 믿지 않으면 어떨까 조심스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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