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과 북한사회 (북한체제의 수립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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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일성과 북한사회 (북한체제의 수립과 발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북한체제의 수립과 발전
1) 북한 정치체제의 형성과 국가수립
2) 한국전쟁과 북한체제의 변모
3) 전후 복구사업과 유일체제의 기반 형성
Ⅲ. 권력구조의 변화
1) 1972년 개정 헌법과 권력구조
2) 김정일 후계체제의 등장
3) 김정일체제의 확립
Ⅳ. 주체사상
Ⅴ. 북한사회의 이해
Ⅵ. 북한의 지도자 : 김일성(金日成)
1) 김일성 평전
2) 김일성의 정체규명
Ⅶ. 맺음말
✤ 참고문헌

본문내용

’에 동조하는 연구자는 거의 없다. 필자들의 김일성 혐오감이 그대로 표출되어 있기는 하나 기존 공산주의운동연구 중에도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김준엽·김창순 씨의 『한국공산주의운동사 5』도 현재의 김일성이 항일유격대의 유일한 김일성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두 사람의 주장은 상식을 벗어난 추리와 루머에 기초한 허구적인 것들이다.
‘김일성 가짜설’이 남한사회에 광범하게 유포되기 시작한 것은 모스크바 3상회의(1945.12.28~29) 결정을 둘러싸고 좌우익이 팽팽하게 대립되었던 1946년 초부터였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서 중 신탁통치를 둘러싸고 찬탁과 반탁으로 국내여론이 갈라지면서 이 결정에 찬성했던 좌익은 남한사회에서 우익에 의해 ‘매국노’, ‘소련의 꼭두각시’로 매도당했다. 이러한 대립되는 분위기 속에서 1945년 조선공산당 분조선분국 책임비서로 취임하고, 이듬해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된 김일성이 자연스럽게 우익의 표적이 되었다. 특히 김일성 혐오자들은 김일성의 나이가 너무 젊다는 데 착안하여 그의 신원을 의심했으며 이것은 결국 ‘가짜 김일성론’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당시 만주에서의 항일무장투쟁은 겨울이면 영하 40도가 넘는 혹한과 배고픔을 극복하고 일상적으로 계속되는 일제의 토벌에 맞서야 하는 고난의 항전이었다. 그 시기의 만주는 오직 젊고 정신력이 투철한 20, 30대의 전사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애초에 항일무장투쟁시기의 만주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장군 김일성이 존재할 땅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당시 아시아 공산주의운동의 현상을 살펴보면 30대 초반의 공산주의 지도자 출현이 보편적인 현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박고, 장문천, 왕명 주은래 등의 저명한 지도자들이 모두 20대에 최고지도자의 위치에 올랐음을 생각해 보면 ‘33세의 김일성 장군’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나. ‘김일성신화화’의 허구
과거 남한학계의 김일성 연구가 ‘가짜 김일성’이라는 유령에 매달리면서 진실을 보지 못한 것과는 정반대로 북한에서는 그의 활동을 ‘신화화’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외면해왔다. 특히 1980년대 이후 김정일에 대한 개인숭배 캠페인의 일환으로 ‘김정일 백두산 출생’이 조작되면서 북한에서 김일성의 항일유격활동은 과장을 넘어서서 날조로 치닫게 되었다. 이러한 신화화는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 이른바 ‘주체사관’에 의해서 합리화되었다. 북한의 논리에 따르면 주체사관은 “인민대중은 사회력사의 주체이며 인류력사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력사이며 사회력사적 운동은 인민대중의 창조적 운동이며 혁명투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사상의식” 박승덕, 『주체사상의 심화발전』(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84), p124
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북한의 주체사상은 인민대중은 스스로의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지도자(수령)의 올바른 지도를 받았을 때만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북한의 역사서술은 자주성 실현 관점에서 서술하되 수령의 지도와 대중이 결합되는 지점을 중심적으로 서술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서술의 특징 때문에 북한문헌에서는 수령(김일성)이 역사결정의 주체로 묘사되며, 그 결과 수령의 활동역사에 대한 극단적인 찬미 속에서 과장·왜곡·조작의 악순환이 초래되고 있다.
다. 평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역사로서의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은 허구가 아니며, ‘가짜 김일성론’이 오히려 허구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무장투쟁은 절대무비의 업적도 아니다. 물론 그가 민족의 시련기인 1930년대에 일제에 대항해서 무장투쟁을 전개하고, 1940년이라는 암울한 시기에 중대 규모의 일제토벌대를 전멸시킨 활동궤적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짜 김일성론’은 어쩌면 ‘화해할 수 없는’ 적과의 대결에서 승리해야 하는 냉전시대에 우리의 의제적으로 바랐던 희망을 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김일성은 북한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만주의 전체 ‘항일무장투쟁’을 지휘한 유일한 지도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북한이론가들은 지금까지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를 그의 유일적 지도 아래 이루어진 역사로 인식하고 그의 투쟁활동을 사실의 범위를 넘어서서 과장과 왜곡을 거쳐서 신화화하였다. 다른 곳에서는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그의 신화적 이미지도 붕괴되었지만 북한에서는 현재도 여전히 신화화된 그의 항일무장투쟁이 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Ⅶ. 맺음말
외세의 의해 주어진 불완전한 해방은 민족의 자결권을 심히 억압하였으며, 남북은 각각 미국과 소련의 영향하에서 체제와 국가의 선택을 달리하는 분단의 비극을 경험하였다. 분단은 외세의 이해관계의 작용에 의한 것이면서 동시에 한민족 내부 분열로 말미암아 가속화된 산물이었다. 김일성은 한국전쟁을 통해 무력을 통한 통일 방식을 선택했고 이 방식은 결국 실패했지만 남로당계가 축출되는 등 북한의 정치구도를 변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다. 또한 전후 경제사회의 복구를 둘러싼 당내 갈등과 김일성 유일체제의 구축과정에서 수많은 정치적 희생을 동반할 정도로 험한 난관을 겪었다. 이 난관을 이겨낸 김일성은 이후 거의 아무런 도전 없이 북한체제의 ‘수령’의 위치를 구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일체제의 형성은 그로부터 얻은 성과 못지않게 북한정치의 ‘민주성’을 탈색시킨 대가를 치러야만했다. 아직도 한반도 내에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채 두 개의 정권이 반세기가 넘도록 대결과 반목을 지속함으로써 남북한은 물론 민족 전체는 너무나 많은 손실을 겪어왔다.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국가를 형성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사의 당위이며 민족의 염원이다.
참고문헌
이종석, 『(새로 쓴)현대북한의 이해』, 역사비평사, 2000
전국대학북한학과협의회 엮음, 『북한 정치의 이해』, 을유문화사, 2001
고태우, 『(한 권으로 보는)북한현대사 101장면』, 가람기획,2000
북한연구회 엮음, 『김정일 시대의 북한』, 삼성경제연구소, 1997
박호성, 『북한사회의 이해』, 인간사랑, 2002
서대숙, 『현대 북한의 지도자 - 김일성과 김정일』, 을유문화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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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6.03.12
  • 저작시기20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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