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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 Ⅰ. 서론
Ⅱ. 내가 바로 세조의 여의주이다
(1) 야심 많았던 한명회, 그리고 권람과의 우정
(2) 권력을 잡다
Ⅲ. 상당 부원군 한명회의 졸기(卒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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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庚寅年)에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연 자신이 주석을 달아놓은 바와 같이, 요 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년(戊辰年)이므로 즉위 50년은 정사년(丁巳年)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반면 이승휴의 『제왕운기』, 권람의 『응제시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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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람은 그가 과거를 관장할 때 뽑힌 민물이며 한명회와는 세조 즉위직전 사돈과계를 맺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여러 요인이 집현전 학사출신 동료들을 떠나 t조편에 가담하게 된 이유가 아닌가한다.
라이벌의 입장에서 라이벌 바라보기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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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람·한명회·양정 등 43인(수양대군 포함)을 정난공신으로 책봉하였으며, 수양대군은 2년 뒤에 강제로 단종의 선위를 받아 세조로 즉위 하였다. 단종의 친위세력을 제거하고 수양대군이 실권을 쥐는 계기가 된 사건이라고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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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람·홍달손·구치관·최항·성삼문·박팽년·류성원·이개…… 모두 앞날의 재상감이고 몇 년이 지나면 치열한 감투싸움으로 조정이 나뉘게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마침 자연히 인재를 줄일만한 사건이 일어났으니 다행이었다.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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