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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애회 [相愛會]
6. 대동동지회 [大東同志會]
7. 동민회 [同民會]
8. 조선부인문제연구회 [朝鮮婦人問題硏究會]
9. 국민의용대 [國民義勇隊]
10. 조선미술가협회 [朝鮮美術家協會]
11. 동아찬영회 [東亞讚英會]
12.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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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었다. 또 민족의 공동이익에 관한 문제에는 꾸준히 연대활동을 펴온 게 사실이다. 1925년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전개된 친일융화단체 상애회와의 투쟁 역시 한인들의 인권옹호 차원에서 공동 대처하였다.
) 『한국아나키즘운동사』, 27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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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애회와의 쟁투로 더욱 가열되었고 더 이상의 연대활동을 펴지 못한 채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후 反상애회 투쟁과 노동운동, 그리고 반일 비밀결사운동 등 독자적인 민족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이같은 재일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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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애회, 총독부 유학생 감독부 등에 조선인 약 7천5백 명이 수용되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학살 진상을 모호하게 은폐하면서 유언 발설과 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진상을 조사하려는 자유법조단 등의 단체 활동을 오히려 방해했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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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애회'란 단체도 선교사 배척운동을 지원하고 나섰다.
1920년대 중반부터 외국인 선교사들의 비행과 추문에 관련된 사건들이 계속 이어져 기독교 학교와 교회뿐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선교사 배척 분위기가 고양되었다.
일본은 1930년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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