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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정약종 누구를 더 잘 아는가?>
이 책은 주로 정약용에게 대한 이야기가 주류로 다루며, 그에 비해 정약용의 셋째 형 정약종에 관해서는 아주 작은 지면만 할애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교계에서도 순교자 정약종보다 배교자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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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인들 사이에서 그토록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는지가 잘 다루어지지 않은 점, 정약용의 학문세계가 협소하게 취급된 점, 사도세자의 죽음을 전후로 한 당쟁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 등이 정약용과 그의 시대를 이해하는 데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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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장손 대림이 태어났고, 7월에는 정약전의 아들 학초가 사망했다.
그 소식을 듣고 <형의 아들 학초 묘지명>을 썼다. 『상례사전』50권을 완성했다.
-1808년(순조 8), 47세
봄에 강진 도암면 만덕리 다산의 산 밑에 있는 윤단의 산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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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정약전은 장기와 신지도로 유배. 10월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국문을 받고 정약용은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
1803년 《주역》을 연구함.
1816년 6월 둘째 형 정약전이 유배히 흑산도에서 사망.
1818년 《목민심서》저술.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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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선생과 21세의 다산의 중형 손암(巽庵) 정약전 선생은 40일 동안 수양과 독서를 위해서 동림사에 기거했다는 기록이 있다. 동림사의 경치가 아름답고 그윽하여 정약용 선생이 남긴 글도 여러 편 전해져 내려온다.
나한산이 무등의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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