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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립 등은 항복하여 포로로 억류되었다. 광해군은 자신이 애초부터 출병을 회피하려 하였고 강홍립에게 적극적으로 나서지 말고 상황에 따라 대처하라고 지시하는 등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 같은 행보도 역시 광해군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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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립을 파견하여 후금과 싸우게 하였는데, 이 때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쓸데없이 명나라 장수의 말을 따르려 하지 말고 스스로 패하지 않을 것에 있으라”고 당부하였고, 강홍립은 그 바탕 위에서 후금과 대립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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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하려고 하자 명은 조선에 원병을 요청하였다. 이때 조선은 명의 원병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강홍립에게 군대를 이끌고 출병하게 하면서 적절한 상황에서 항복하도록 권유 하였다. 강홍립은 약속대로 출병은 했지만 곧 후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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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립도 매우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정말 파란 만장한 삶을 살다 갔다. 왕위에 오르기 전 세자 시절에는 임진왜란을 맞아 분조를 만들어 임란 극복에 앞장섰고, 15년간의 재위 기간도 형인 임해군의 죽음, 인목대비의 유폐, 영창대군의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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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립을 도원수로 삼아 1만 3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명을 지원하게 하되, 적극적으로 나서지 말고 상황에 따라 대처하도록 명령하였다. 결국 조·명 연합군은 후금군에게 패하였고, 강홍립 등은 후금에 항복하였다. 이후에도 명의 원군 요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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