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홍립을 파견하여 후금과 싸우게 하였는데, 이 때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쓸데없이 명나라 장수의 말을 따르려 하지 말고 스스로 패하지 않을 것에 있으라”고 당부하였고, 강홍립은 그 바탕 위에서 후금과 대립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
- 페이지 16페이지
- 가격 2,500원
- 등록일 2016.01.11
- 파일종류 한글(hwp)
- 참고문헌 있음
- 최근 2주 판매 이력 없음
|
|
격하려고 하자 명은 조선에 원병을 요청하였다. 이때 조선은 명의 원병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강홍립에게 군대를 이끌고 출병하게 하면서 적절한 상황에서 항복하도록 권유 하였다. 강홍립은 약속대로 출병은 했지만 곧 후금에 항
|
- 페이지 2페이지
- 가격 500원
- 등록일 2011.10.19
- 파일종류 한글(hwp)
- 참고문헌 없음
- 최근 2주 판매 이력 없음
|
|
강홍립도 매우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정말 파란 만장한 삶을 살다 갔다. 왕위에 오르기 전 세자 시절에는 임진왜란을 맞아 분조를 만들어 임란 극복에 앞장섰고, 15년간의 재위 기간도 형인 임해군의 죽음, 인목대비의 유폐, 영창대군의 증
|
- 페이지 9페이지
- 가격 1,300원
- 등록일 2005.06.12
- 파일종류 한글(hwp)
- 참고문헌 있음
- 최근 2주 판매 이력 없음
|
|
강홍립을 도원수로 삼아 1만 3,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명을 지원하게 하되 적극적으로 나서지 말고 상황에 따라 대처하도록 명령하였다. 결국 조명 연합군은 후금군에게 패하였고 강홍립 등은 후금에 항복하였다. 이후에도 명의 원군 요청은
|
- 페이지 15페이지
- 가격 2,300원
- 등록일 2014.01.24
- 파일종류 한글(hwp)
- 참고문헌 있음
- 최근 2주 판매 이력 없음
|
|
강홍립(姜弘立)의 왜국 정벌이 임진록에 나타나는데, 이는 병자호란 전의 사실을 차용한 것이다. 대부분의 이본에서 이러한 차용이 확인되는데 김응서와 강홍립은 작품 안에서 상당한 기능을 수행하는 인물로 부각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사
|
- 페이지 10페이지
- 가격 2,000원
- 등록일 2011.08.31
- 파일종류 한글(hwp)
- 참고문헌 없음
- 최근 2주 판매 이력 없음
|